미안한 마음
함민복 지음 / 풀그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엔 '착하다'는 말의 의미가 변질되어, 성적 매력이 있으나 난하지 않다는 뭐 그런 의미로 쓰인다. 세상에 착하다는 말에 그런 야릇한 의미가 가미될 줄이야...

함민복을 읽고 있으면, 참 착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쩜 그렇게 착할 수 있을까?
뭐, 순박하고 순수하고 착실하고 그런 거 다 집어 치우고, 그냥 착하디 착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말을 건넨다.
노을이 번져가는 하늘을 보면 착한 함민복의 마음은 그저 노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노을 번지는 해변에 '노을 식당'이 들어서면 눈에 꼬부장해 진다.

강화도를 '길을 잘못 들어도 억울하지 않은, 오히려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땅'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는데, 함민복이 본 강화도는 그렇지만도 않다. 행락객들 폭죽 소리에 놀라 부엉이 울음 소리도 주 5일 근무로 돌아섰다는 유머는 쓰디 쓰다.

저그 떠 있는 섬 이름들이 뭐당가?
하는 질문에,
저 섬들 떠 있는 거 아니에요. 뿌리내리고 있는 거고요. 시도, 신도, 모도, 바가지섬, 장봉도...라는 말을 주워섬기는 작자. 섬들을 사랑하면, 그들이 부유하는 모습을 넘어서서 그들의 뿌리를 볼 수 있는가?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가득 차...

아무리 달려도 다져지지 않는 뱃길.
굳은살 하나 없는 말랑말랑한 생살로 된 길.
먼지가 나지 않는 길.
물고기 다니는 길을 쫓아다니는 물고기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걷는 배.

그런 그가 마음 속에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이다.
그의 고향 사모곡은 이렇다.

고개 들어 사방 어느 쪽 하늘을 쳐다보아도 새 세 마리는 날던 곳.
이슬에 젖은 벼 익는 찬 향기, 황금색 파도에 벼 낟알 부딪히는 소리,
어른들이 줄 서 벼를 베어나오면 논가로 쫓겨 몰려나오던 메뚜기들 살오른 뒷다리.
곡식 중에 키가 제일 큰, 장수같은 수수들의 묵직한 인사.
지푸라기 허리띠 꽉 묶고 노란 고갱이 채우던 배추 가시의 깔끄러운 감촉,
고구마 밭에 떨어지던 홍시의 달콤함.
물 밑 자갈을 읽으며 흘러내리던 개여울의 반짝임.
내 마음의 고향...

불과 두어 시간이면 갈 고향을 그리는 시인의 망막엔 이슬 한 점 고였으리라.
개여울의 반짝임 만큼, 이슬에 젖은 벼 향기 찬 내음 만큼...

모내기하는 마을 사람들이 '팔무리'로 나른다는 말을 듣고 그는 정감을 엮는다.
쭉 서서 옆사람에게 전달 전달 하는 걸 팔무리라고 한단다. 좋은 말이다.

그가 이쑤시개 겸용 성냥, 신발 깔창에 우산 그림으로 우산 챙기게 하기,
세로막으로 된 투터치 캔, 여자들 혁대 끝에 가짜 버클 하나 달기...
이런 실없는 특허 농담을 던질 때,
그만둬라, 이 친구야, 그렇게 사람들이 무엇을, 만든 이 세상이 뭐가, 얼마나 더 좋아졌냐. 만드는 게 능사가 아냐.

화들짝 놀라 술이 다 깨게 하는 이야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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