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비? 아빠나 아버지도 아니고?

이런 단어를 찾아 썼을 땐,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인간의 언어는 ‘어휘 목록’과 ‘문법’을 추상화할 수 있다.
이 양자는 뚝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목록이라면 형식이 문법인 것이다.
어휘들이 쓰이는 양태를 연구하면, 그것이 문법의 범주에 들어와 의미론을 이루기도 하지만, 어휘는 필요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지만 문법을 그닥 잘 변하지 않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일은 ‘결핍’의 문법 구조를 재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아프고 외롭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의 쓸쓸함을 감지하게 한다.

그는 결핍의 문법구조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삶의 목록’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는 날마다 편의점에서 갖가지 사물들을 삶을 확인하듯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이고, 옆방의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을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또 그는 편의점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고, 똑같은 방의 ‘목록’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래서 그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온 방을 물고기 비늘처럼 소설의 어휘들로 가득 메운다.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잔인함이 있다.

이 말만큼 결핍의 문법을 강하게 표출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결핍’의 눈으로 보면, ‘가진자’들의 부드러움은 ‘잔인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결핍의 근원은 ‘아비’로 보인다. 차마 아버지로 부르기도 싫은 ‘아비’
어느 날 문득 나타나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고 앉은 ‘아비’

그러나 그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아비’

그래서 그에게 아무리 많은 목록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쳐 나가다 자동차에 부딪치고 마는 인생처럼 ‘결핍’은 목마름은 충족되기 힘든 근원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김애란의 소설은 '가슴아림'으로 기다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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