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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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이 책을 읽어야쥐~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퇴근을 하고 있는데, 남구청 앞에서 2.5톤 트럭으로 하나 가득 캐비닛을 싣고 가더라. 폐기 처분되는 캐비닛들. 그 속에 13호 캐비닛이 있을 지도 모르고, 거기엔 내 파일이 376번째로 기록되어있을는지도 모를 일인데... 이런, 젠장. 권박사가 어디로 보내는 거야~~~

근데... 왜 캐비닛이라 한 거쥐? 보통 사람들이 캐비넷이라 하지 않나?
직업 근성을 버릴 수 없어,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어라~ 캐비넷이란 단어는 수록되어있지 않았다. 캐비닛이 표준어인 거다. 이거 세상이 나를 버리고 단어 표기법을 바꾼 거 아니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을 때.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수십 년간 지식이라 외우고 살았는데, 거기 뭔가 덧붙여 졌다면 모르되 명왕성을 지웠다는 이야기나,
사람들이 다 안다는 유명한 사건을 나는 딴세상 사람처럼 듣도보도 못할 때,
입을 다물고 있어서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죽 둘러보면 남들은 다 아는 눈치다. 이런~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속내는 모두 다르다. 다만 비슷한 체 하고 살 뿐.
김언수의 '캐비닛'은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좀더 써프라이즈~하게 이끌고 가긴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을 갖고 살고, 끈적한 관음증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에게 산다는 건 '모욕적인 것'이다. 다만...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의 소설은 완벽한 <허구>다.
성탑에 갇혀 있다가 화산재가 쌓인 뒤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남은 인간에서부터, 다양한 심토머들의 세계를 실제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의 구라를 따라 읽다보면, 과장 속에서 읽히는 '삶의 진실'은 평범한 소설에 비해 훨씬 파장이 크게 내 심장을 건드린다. 간혹 불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기도 한다. 별 미친놈, 소린 잘 안 나온다.

완벽한 '허구' 속에서 '삶의 모욕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남자 또는 여자로 삶에 대하여, '폭력적인 이분법의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테제를 발하며,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이 은행잎을 둥글게 감아올리는 것을 보고'있는 사람을 '이 새끼가 돌았나?'하며 패는 세상의 패러독스를 드러내고,
혼자 고민을 말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무슨 말인가 속내를 조금 드러내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알지. 어렵게 사는 사람들 많은 거, 하지만 저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허공에서 살고 있는 기분인데, 누구도 몰라주는 사람들이 세상엔 가득하다는 걸 그는 안다.

그렇지만 세상은 부비트랩의 세상이고, 우리 일상엔 상냥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매일 아침마다 출근해서 성실하게 만드는 부비트랩들이 일상의 도처에 불행의 이름으로 깔려있다. 그게 삶이다. 이 정도면, 부처님도 '너 그만 하산해라.' 하실 레벨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이외에도 아주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무모해 보여도 그것이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필연적인 질서라는 것을 모른다. 모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다.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삶의 궁극적 의문에,
글쎄 꼭 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자네의 시간을 견뎌봐.
인생이란 그저 시간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한 거니까...
캐비닛처럼?
그래, 마치... 캐비닛처럼.......

이 인간 정신 병원에 가서 환자들에게 들이밀면, 환자들이 '나 여기서 퇴원하겠어요.' 할 인간이다.
기대된다. 김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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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9-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대되는 작가예요.^^/

글샘 2007-09-0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