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상) - 다석사상전집 1
박영호 지음 / 두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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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간 논란이 되던 고액권 지폐가 곧 발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반쪽의 나라에선 그 지폐에 새길 인물상에 대해 논란이 심하다.
가장 큰 스승의 이름을 이 사람들을 문맹에서 벗어나게 하신 '세종대왕'에게 돌린 것은 일견 옳으면서도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이이, 이황, 이순신... 모두 이씨 일족 일색이었던 것은... 역사의 부정이자, 회귀였으리라.

대한민국의 지폐에 당연히 '대한민국'을 이끌어낸 인물이 새겨져야 함이 당연한 일이거늘...
이승만을 국립현충원에 모신 것조차도 부끄러운 일임을 알기에 하는 짓들이 아닐까?
그렇다고 다카키 마사오를 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우리에겐 '스승'이 없을까?
나는 그 이유를 '이승만 독재와 군부 독재'의 탓이라 생각해 보았다.
옳은 정신 가진 사람을 몽땅 감옥에 집어넣어버리던 일본에게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대문 형무소는 마찬가지 반정부주의자들로 가득했다.
말 많은 사람은 빨갱이였고, 추잡한 사바사바가 판을 치는 친일파의 후예들이 권좌를 잡았다.
이 나라는 '정통성'을 상실한 나라였던 것이다.

북한 지폐에 '김일성'이 당연히 들어 앉고,
중국 지폐에 '마오 선생'이 당연히 들어 앉고,
미국 지폐에 '워싱턴'이 당연히 들어 앉는데...
한국 지폐엔... 애석하게도... 대통령들이 앉아있지 못한 과거와 현실...

다석 류영모 선생에 대해서는 함석헌만큼도 알려져있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김구' 선생에 대해서 정말 무식하게 존경했듯이,
함석헌 선생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이 좋아했던 것 같고,
그건 비유하자면, 내가 박정희 영정을 보면서 <평생 들을 레퀴엠을 1979년 10월 끝자락에 몽땅 들어버린> 그런 슬픈 무식함과도 상통했던 것 같다.

올바른 가르침을 결코 줄 수 없으니, 여운형 선생처럼 진실로 진실로 통일을 원했던 이는 파묻혀 버리고, 김구처럼 어정쩡한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생겼으니... 이 나라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사는 날수를 헤아린다. 다석이란 호도 多夕... 여러 저녁을 살았다는 뜻이니, 백범 김구 선생의 흰옷 입은 평범인이란 호만큼이나 평범하다.

나도 휴대폰의 디-데이 기능을 이용해서 살아온 날 수를 헤아려 보니 15035일을 살고 있다.

선생이 33200날 살고 이 땅을 뜨셨으니... 나는 절반 가량 산 셈일까?

살아온 날 수를 셈하는 일은... 하루하루를 그만큼 깨인 정신으로 살아보란 의미로 새긴다.
아무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이 지나가버리는 날들이 얼마나 많던지...
고3 아이들이 하루하루가 아쉬워 칠판에 D-95일 이렇게 표시하는 정신으로 매일을 살아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배운다.

다석 선생은 정치가도 특별한 사상가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니지, 유명하지 않을 따름일는지도...

그렇지만... 선생의 전기를 읽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 속에선 예수의 혁명적 삶을 읽을 수도 있었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형형한 눈빛도 배울 수 있었다. 노자의  정신도 느낄 수 있는 선생을 읽는 일은 나를 돌아보는 큰 계기가 된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이 육신 하나, 이 육신에 새겨진 정신 하나.
나의 마음이 오로지 <일체를 만들고> 이 육신 없이는 내 존재도 없으니 노자의 <다투지 말라>가 살아온다. 한 호흡 한 호흡에 내 삶이 있고, 올바른 정신이 있음을 꼬장꼬장한 삶을 통해 보여주는 큰 스승이 될 만한 분이 아닐까?

나고 죽는 <몸나>를 여의고 <얼나>로 솟나신 석가와,
멸망의 <몸나>에서 영생의 <얼나>로 옮기신 예수를 보고 배우지 못한 나는,
그이들을 보고 배우신 다석 선생을 만나 제대로 <얼나>를 생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썩어버릴 육신, 어버이가 낳은 <제나>의 사람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이 삶일진댄,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술을 멀리하고, 색욕을 불러올 일을 피하고, 육신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데 온갖 신경을 쓰는 <제나>를 늘 <관찰하고> <얼나>로 옮길 일을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리라...

우리 삶이 <시>가 되고, <음악>이고 <숭고 정정한 종합적인 예술>인데,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하고(선생의 말로 솟나게 하지 못하고) 늘 <몸나>와 <제나>에 얽매인 채, 하루하루 고뇌할 가치도 없는 일들에 온 정신을 빼앗겨버리는 나를 발견한 일은 감사, 또 감사할 일이다.

성경을 몇 번 읽었지만, 혼자서 읽어서는 뜻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 땅의 교회들이 올바른 성경 읽기 보다는 솟구친 예배당 짓고, 우상 섬기기에 치우친 탓도 크지 않을까? 성경을 언젠가 공부해보고 싶단 생각도 들게 하는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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