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강유원 서평집
강유원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국어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면 아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점이 많다.
국어 교사는 글을 잘 쓸 거야. 책을 많이 읽을 거야... 이렇게.
나는 진지하게 "교과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농담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간혹 아이들이 진지하게 '어떤 책을 읽을까요?'하고 묻는다.
지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면 되지, 그건 왜 묻는담? 하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진지하다.
왜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고르지 못하고 물으러 다닐까?
그 이유는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은 없고(안 읽으면 읽고 싶은 책이 없는 법이다.),
책을 읽어야 인간이 된다는 말에 따라 왠지 뭔가 교양을 쌓고 싶을 땐,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해 보는 것일게다.

나의 독서는 주제 독서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찾으려는 '순수이성비판'쪽의 마음 공부도 읽고 있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찾으려는 '실천이성비판' 쪽의 사회역사 책들도 읽고 있다.
그리고 직업에 따른 연구로 문학 작품이나 언어학 연구 서적들도 읽고 있으며,
동양의 철학이랄까. 그 기본이 될 법한 책들도 간혹 읽는 법이 있다.

이 책은 스스로 '비정규직 철학박사'라고 일컫는 강유원의 주제독서다.

그의 주제는 책과 교양, 역사, 근대, 파시즘, 전쟁, 한국과 동아시아라고 나누고 있는데, 뭐 내가 읽는 책들도 이런 범주와 많이 겹쳐 보인다.

아무래도 서평집이다 보니 강유원의 시니컬하고 시원시원한 욕지거리를 듣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깊은 독서를 하는 방법에 대해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부분도 많다. 너무 수준이 높다고나 할까.

다치바나의 '교양'을 읽는 그는 다치바나가 쌓아올린 지적 탐구를 보면서, 그 탐구가 '주제'가 없었음을 비판한다. 그의 내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연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나도 단테의 신곡을 기회를 봐서 읽으려고 하고 있는데, 푸른숲의 '단테', 서해문집의 '신곡'을 소개해 준다. 고맙다.

한스위르겐 괴르츠의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뿌리와 이파리, 2003 도 좋은 책이라고 극찬이다. 가만있자. 강유원의 이 책도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책인데... 음. 그렇군. '그동안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어온 사람들은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일단 중간 정리를 한 다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독서의 질적 변화와 공부의 진전이 느껴질 것이다.' 매력적인 추천사다.

모 교수의 책을 비평하면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핵심적인 것들... 이어서 올바른 동기와 나무랄 데 없는 전개 구도...를 칭찬하는 체 하다가, 갑자기 내용은 한마디로 '학부학생 리포트'라고 힐난한다. 책값 싸다고 막 주문할 일이 아니란다. 욕도 이런 욕이 없다. ㅎㅎㅎ

벌린의 마르크스 비평에서 그가 우파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일제 군국주의 찌꺼기인 유사-파시스트적 한국 우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아, 이 땅의 '일군찌유-파우파'여! 짜증나게 좀 살지 말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병호의 '실용 독서'를 그도 어지간히 씹는다.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의 창출'이 그의 독서 목적인데, 그는 속도감을 어지간히 좋아한다. 강유원은 그런 '지적인 사업가'를 <마름>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통쾌하다. 그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언선들이 끼치는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신경 바짝 써서 경계해야 할 무리들은 바로 이들인 것이다. 음, 자본의 <마름>. 자본가는 말이 없다. 다만 그 중간관리자인 마름들이 설치고 다닐 따름. 시니컬하면서도 날카로움이 드러난다..... 또 다른 글에서 그는 '인간의 노동력의 가치'를 은폐하기 위해 공병호와 같은 '쓰레기 지식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자기계발 뷔페를 차려놓고 노동자들을 현혹함으로써 자본가에게 기여한다. 고 쓴다.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좋아하는 민족애... 뭐, 그런 잡스런 쓰레기같은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동의어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한국적'이란 관형어가 바로 '파시즘적'이란 말이었다. 그 조상은 아까 이야기한 '일군찌유-파우파'였던 것이다. 카미카제들이 죽었는데, 그들이 꽃으로 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딱 하나. 그들의 죽음이 개죽음이었다는 것 뿐이다. 이런 말들은 근질근질 한 데를 확 긁어주는 느낌이다.

한국 현대사를 읽으면서, '명백한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이 모두 다 그것을 알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행동하리라 생각하는 건 순진한 착각'이라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어준다. 맞다. 노동자가, 그리고 진보 세력이 옳다라고 알아 봤자, 사람들은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포를 맛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를 열심히 나가고, 선거에서 가진자들의 당을 찍는다. 그래야 공산당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폭력적 세뇌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승만은 '인간 백정', 독재자 박00, 살인자 전00라고 쓰는 강유원의 독서는 이미 '중립적일 수 없는 독서'이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중립은 폭력을 기만하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한 방법이었음을...
그래서 그가 주류 학계로 들어갈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공부는 분명히 또 하나의 좋은 학문의 길임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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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6-2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살면 좋은 게 그런 거죠. ^^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그런 것. 하긴 저도 서울 한 10년 살았지만, 대학로에서 연극 본 거 10번도 안 되겠네요.^^ 그때는 한창 마당극이 유행이어서 그런 것들이나 보곤 했죠. 음, 변강쇠같은 사람의... 시니컬한 강의라...ㅎㅎㅎ 재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