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외국서적을 번역한 놈을 읽기 전에 원제목이 뭔가를 꼭 살핀다. 원래 붙인 제목이 내용을 훨씬 더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제목이 원제목을 능가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 책도 그렇다. 20인의 사람들이 시대의 양심인 것 까진 그렇다 쳐도,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에선 좀 그렇다. 원제목이 더 옳다. Louder than Bombs : The Progressive Interview 프로그레시브 인터뷰 폭탄소리보다 더 큰 소리들... 그 울림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닿는다.

바사미언이란 유명한 미국의 인터뷰어가 있는 모양이다.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중요하다. 그가 누구를 왜 인터뷰하는지가 그 내용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면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 노암 촘스키 같은 유명인들이다. 역시 그 분들의 이야기는 많이 듣던 이야기여서 '진실'을 말하곤 있지만 놀람은 없었다.

오히려 처음 듣는 사람들의 처음 듣는 이야기에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이티와 푸에르토리고 사람들의 고통처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미국인들의 만행은 정말 아메리카를 증오하게 만든다.

'반다나 시바'라는 행동주의자와의 인터뷰는 정말 멋지다.

인터뷰어 : 당신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흥겹게 지내는 듯 합니다.
인터뷰이 : 나는 즐겁게 살려고 합니다. 투쟁을 할 때는 그 투쟁을 즐기려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기분을 돋궈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자연을 보호하며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내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나를 재충전시켜주는 활력소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대기업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한없이 공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감마저 느낍니다.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꾸준히 걸을 것입니다. 그 풍선들을 하나씩 터뜨릴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풍선을 터뜨렸습니다...

읽는 내가 다 통쾌하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에드워드 사이드는 테러의 근원을 "이슬람 세계, 산유국, 아랍세계, 중동, 요컨대 미국의 이익과 안보에 직결된다고 여겨지는 지역의 사건들에 미국이 오랫동안 개입해온 탓"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오죽하면 미국 내에서 9/11테러조차도 자체조작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 나올까? 징그러운 것들... 에드워드 사이드는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근조.

범죄의 나라 미국. 현재 재소자 수가 200만 이상이란다. 70%가 유색인이고 50%는 아프리카계고, 17%가 라틴계... 게다가 인구당 비율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장 많다. 이런 감옥 산업의 나라. 안젤라 데이비스는 감옥 폐지를 주장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마나'가 많이 필요하다. 하와이 말로 '힘'이란 뜻이란다. 하와이는 미국의 한 주가 되기 싫단다.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국을 냉소적으로 미국의 51번째 주라고도 하지만, 지금처럼 졸병 국가인 것과 51번째 주인 것과의 차이는 얼마나 클 것인가. 하와이는 꿈의 휴양지로 불리지만, 그 땅의 원주민들은 땅값이 비싸지는 거기서 추방당해야 한다. 얼마전 인터넷 뉴스에 에버랜드 외국인 노동자들(공연 전문가들)의 눈물을 다루었는데, 그들은 그나마 남의 땅이니 그렇다 쳐도 하와이 사람들은 자기네 땅에서 그런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놈을 선택하든 '차선'이 아닌 '차악'이라고... 누구는 이런 현상을 <두 사악한 쓰레기>라고도 하는데, 랄프 네이더는 '정치를 쇄신하고 싶다면 작은 씨가 싹틀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한다. 승자 독식은 안된다는 것. <지지후보 없음>칸을 만들자는 그의 의견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명바기를 찍겠니? 박공주를 찍겠니? 지지후보 없음! 그러면 투표율이 확 높아지지 않으려나?

촘스키 선생님, 조지 오웰의 말을 빌려 '지식인은 잘 훈련된 개'란다. 한국의 학자란 것들이 뉴스 시간에 나와 떠드는 짓들을 보면, 정말 개같다. 그 똥개들은 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득실댄다.

나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를 좋아한다. 아, 그의 <수탈된 대지 : 라틴아메리카 500년사>는 아직 안 읽었다. 그의 책은 거꾸로된 세상의 학교를 읽었을 뿐인데, 그의 문체가 시원시원해서 좋다. 그는 <난쟁이>와 <어린이>를 혼동하지 말자는 말을 한다. 개발도상국을 말하면서 어린이처럼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 살고 있는 듯이 말하면 안된다고. 사실은 개발도상국은 발전 도상에 있지 않고, 개발의 결과이고, 500년 수탈의 역사이며 이미 늙어가는 난쟁이란 비유는 섬뜩하다.
미국인은 겸손해져야 한다. 뉴욕이 건설되기 수백 년 전에 바그다드가 100만 시민이 사는 대도시였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를 지닌 도시였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미국은 늘 악역을 만들어내는데, 펜타곤이 그 주역이다. 싸워야할 사탄이 없으면 하느님이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ㅍㅎㅎㅎ 이렇게 뒤죽박죽인 세계에서 가장 큰 패러독스의 하나는 평화를 지켜야 할 다섯 나라가 무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나라. 세계 무기의 절반을 미국이 만든다. 영,불,러,중이 그 뒤. ... ㅋㅋ 그러면서 이라크와 북한에게 무기를 만드는 <악의 축>이라고? 퉷, 옛다. 엿이나 먹으셔~ 갈레아노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냥 이야기 듣는 기분이다. ㅎㅎㅎ
소련의 붕괴에 대한 그의 탁견 " 나는 소련에서 주장하던 사회주의에 공감한 적이 없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는... 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관료 정권에 불과했으며, 국민을 경멸했습니다. 말로는 국민을 찬양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소수집단, 어린아이느 어리석은 양처럼 취급... 따라서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사회주의가 죽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련이 그처럼 쉽게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붕괴 과정에서 피도 없었고 눈물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회주의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니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언젠가 인류가 사회주의를 발견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 사랑스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아브리가르 에스페란자스... 에스파냐어로 '희망을 지키다'란 뜻. 희망은 지키고 보호해야하는 것. 깨지기 쉬운 것. 그러나 끈질기게 살아있는 것.

하워든 진은 1960년 그리스보로의 연좌농성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행동'이 나아갈 길을 상징하듯 보여준다.

이 사건은 어떤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않은 채 뭔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해야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의 행동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뭔가를 꾸준히 반복해서 해야만 합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바지직대고 꺼지더라도 실망해서 행동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불이 확실하게 켜질 때까지 계속해서 불을 붙여야 합니다.
...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소극적 인내여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 행동을 중단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
무엇인가를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즉각적 성공이라는 기대감을 버릴 때 작은 결실이라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각적 성공이란 기대감을 버리고 끈기있게 버틸 때 우리는 뭔가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상 제약은 있어서 하나의 줄기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미국이란 국가가 저지르는 죄악과 그 아래서 휘둘리는 민중의 한 명으로서, 삶의 길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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