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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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란 푸른 별에서 인간이란 종이 하는 짓은 참 해괴하기 짝이 없다.
하느님께서도 연구 대상일는지도 모르겠다.
요놈들 노는 꼬라지를 갈데까지 가라고 두고 보시는지도...

독일의 절멸수용소에서 생존했고, 증언 문학을 남겼지만 1987년 4월 11일 자살하고 만 쁘리모 레비의 묘소를 찾아서 가는 서경석의 단상들을 레비의 글들과 잘 섞어 쓴 멋진 책이다.

이 멋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은 심난하고 처참하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을 동물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성 때문에 또한 인간은 상처받고 버림받는다.

아우슈비츠만 만행이었나? 미국의 베트남은? 일본의 위안부는? 이런 질문이 반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성의 긍정적 측면일 수 있지만, 아리안족의 잘난 점을 자랑하던 게르만족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일은 우울한 일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서경식이 던지면 우울함이 배가되는 것 같다. 그는 재일 조선인이다. 더군다나 다카키 마사오의 시대에 간첩 양산 정책에 서승, 서준식 형제는 조국을 배우러 왔다가 그놈의 조국에 배반당하고 간첩이 되어 참혹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서경식은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이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고, 그의 형제들은 아우슈비츠의 만행에 버금갈만한 조국의 감옥 생활을 버텨 냈다. 그에게 쁘리모 레비는 곧 그의 형제들에 다름아닌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흐르고 흘러... 21세기의 한복판으로 치닫고 있지만,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의 형제들은 감옥에서 나왔고, 그 서간집들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긍정의 눈길을 담그기에는 지구별이 너무도 추악하고 초라하다. 그래서 레비의 죽음이 더욱 섬찟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추악한 삶과 비교해 본다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

레비의 아내의 강한 거부감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I'm very alone... can't receive anyone...  레비의 죽음이 가진 의미가 그런 것 아닐까? 그의 죽음은 개인적인 목숨을 끊은 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를 살게 한 것은 인간이 떨어질 수 있는 나락의 최악의 현장을 증언해야한다는 필사의 이성이었다면, 그를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인간의 무관심과 무책임, 그에 따른 시대 정신의 실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종족에 대한 희망을 버린 것이 곧 그의 추락에 담긴 의미가 아닌지...

쁘리모 레비, 또리노 등의 경음이 등장하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는 틀린 것이지만, 재일 조선인 서경식을 다소 낯설게 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고 그럴 의도였다면 어딘가 한 마디 적어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님 표기법에 좀 맞춰 주든지...(그렇지만... 싯점, 댓가처럼 그닥 복잡하지 않은 맞춤법도 틀리게 표기한 것은 창비사 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책값은 열라 비싸게 매겨 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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