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1318 문고 1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링카에게...

할링카, 안녕. 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독일에서 살고있는 소녀더구나. 엄마와는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너는 여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엄마의 언니인 로우 이모와 편지를 나누고 로우 이모네 집에 놀러갈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로우 이모가 가끔 남기는 말들을 네 비밀 공책에 적기도 하는 예민한 사춘기 소녀였더라.

나는 너랑 비슷한 사춘기 소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가 되었지만, 할링카가 살던 시기는 독일이란 나라도 아주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겠지. 나는 할링카 네가 모금한 돈에서 얼마간을 빼내는 대목을 읽으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단다. 너처럼 가슴 졸이기야 했겠냐마는 네가 촛농을 떨어뜨려 가는 철사를 이어서 내고 무사히 넘어가는 것 같아서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지.

할링카가 상을 받아 즐겁게 성을 구경할 땐 내 마음도 상쾌했고, 네가 조각상을 감상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마치 조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들었어. 그러다가 선생님이 '너 왜 모금함을 열어봤니?'하고 덜컥, 물어볼 때 내 마음도 큰 바윗돌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단다.

할링카가 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마음과 배고픔을 나름대로 잘 견뎌주고 있어서 나는 참 고마웠어. 그리고 마지막에 친구와 함께 이모네 집으로 가려는 생각도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몰라.

몸도 마음도 남들보다 멍들기 쉬웠던 할링카. 그래서 가슴 속이 쓰면 입안에 아무리 설탕을 넣어도 소용 없다는 말도 일기에 쓰곤 했지. 네가 이모에게 <그리움도 배고픔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그리움은 영혼이 허기진 것 아닌가요?>하고 마음 속으로 질문할 때면 내 마음은 그저 먹먹해 지기만 했단다.

할링카는 자라서 무엇이 되었을까? 내 생각엔 멋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남들이 읽을까 두려워 상징적인 말들로 일기를 적었던 그 지혜로움을 잘 발전시켰다면 분명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거야.

나는 네가 재수없는 아이 엘리자벳과 용감하게 싸우고 난 후에 레나와 친구가 되고, '남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하고 생각할 때 너의 성장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단다.

네가 성장하면서 네 마음이 점점 너그러워지고 넓어져서, 네 마음 속에 행복이 깃들 의자가 놓일 자리가 점점 넓어 지는 것을 선생님은 참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단다.

이 이야기는 할링카라는 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작가 선생님인 미리암 프레슬리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는지도 모르지. 선생님이 40년에 태어났으니 너만할 나이에 여학생 기숙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적은 거란 생각이 들어. 선생님의 뚱보 이야기, '씁쓸한 초콜릿'도 재미있겠지?

사랑하는 할링카.
너의 이야기를 읽는 한 시간 남짓은 정말 책에 폭 빠져들었단다. 원래 소설은 처음 부분을 읽을 때, 집중해서 골똘히 읽어야 주인공의 성격을 놓치지 않는 법이어서 열심히 봐야 하는데, 너의 이야기는 금세 너랑 한마음이 되어 글을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

할링카, 너의 이야기들을 틈나는대로 들려줘. 나도 가능한 한 찾아 읽을게.

이젠 어른이 되었을 할링카, 지금은 행복이 찾아와서 의자를 내줄 자리가 마음에 넉넉하겠지? 나도 늘 행복이 찾아와 깃들 자리를 남겨 두도록 노력할게. 너의 멍든 영혼이 이젠 멍이 다 지워졌기를 바래. 내 마음 속의 멍도 마찬가지겠지.

나도 간혹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멍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런 것이 어른이 된 내 마음에 행복이 들어올 의자 놓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에 든 멍자국을 보면 나는 눈을 돌려 버리곤 했단다. 그렇지만, 이젠 알았어. 아이들의 멍자국을 내가 낫게 해줄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멍자국이 풀리려면 너처럼 비밀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는 것을 말이야. 할링카, 고맙다. 이런 저런 것들을 가르쳐 줘서. 행복하게 지내기 바래. 멍 따위에 의자를 빼앗기지 말고...

                                               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선생님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