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이 전하는 마음의 평안 정(靜)
틱낫한 지음, 허문명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2001년 9월 11일, 지구가 깜짝 놀랐다. 그 테러는 아직도 누가 일으킨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미국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오사마 빈 라덴의 범행으로 일축했다. 그리고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전쟁을 일으켜 피폐한 아프가니스탄으로 쳐들어가서 람보처럼 마구 총질을 해댔다.

틱낫한 스님께서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고, 세계 여러 곳에서 연설한 글을 모아본 책이다.

인류가 잃은 것, 그래서 가장 먼저 얻어야 할 것이 바로 <靜>이란 것이다.
고요하게 침잠할 줄 아는 것. 수행자의 자세로 무엇이든 천천히 할 줄 아는 것.
밥먹을 때는 밥먹는 데만, 차를 마실 때는 차마시는 데만 몰입할 것. 그것이 '정'이다.

인간이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화'라고 한다. 이놈은 동글동글 미끈미끈해서 잘 잡히지도 않는데, 처치하려고 걷어차면 점점 커진다고 한다. 이놈을 다스리려면 차분하게 앉아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한번 화에 휩싸이게 되면, 온몸의 피가 역류하면서 용서나 평안이란 말은 사전에서 사라져 버린다. 생각해보면, 별로 화낼 일도 아니었구만...

인터뷰에서, 테러범은 정말 나쁜 놈들이 아니었나요?하고 묻지만, 결국 틱낫한 스님은 그들에 대한 연민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미국의 베트남에 폭격을 무자비하게 가한 것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았듯이 말이다. 미국인들은 일본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본인들이 2차대전때 동아시아 전체를 얼마나 유린했는데, 스스로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도 마치 테러에 대한 피해자인 양 굴고 있다. 그래서 화를 증폭시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 경제적 실리를 얻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국 내에서 9.11 테러 자작극설이 나돌 지경이겠는가. 누구도 미국을 상대로 그런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작극이어야 가능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을 정도지만, 미국인들을 스스로 반성할 줄 모름을 스님을 꾸짖지 않으신다. 그들에게도 무한한 연민을 보내시는 것이다. 연민을 가르치는 이는 연민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이 평화롭지 않으면 이어져 나오는 행동도 옳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신 스님. 자국 동포들이 미국의 네이팜탄에 숯덩이로 화해가는데도 그것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평화로워지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과 눈물로 넘긴 고비들이 많았으랴...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 있음을,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쟁도, 미국과 이라크의 석유 전쟁도, 모두 인류의 평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수행을 통해 깨우쳐야 한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잘못이 크지만, 의사는 환자의 병을 없애는 사람이지, 환자를 없애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곱씹어볼 만 한 비유라 생각한다.

미국은 남들보다 훨씬 돈과 무기가 많지만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 나라이기에 세계에서 가장 불안에 떠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새로운 시각이다. 미국의 제국주의를 하루 아침에 폭삭 망하라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계가 함께 공영의 길을 찾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남의 이야기를 듣는 훈련. 이는 곧 관세음보살이 되는 길이란다. 천수천안의 관음보살님... 천개의 손으로 타인의 고통을 어루만지시고, 천개의 눈으로 고통을 들으시는 분. 전화, 팩스, 이메일, 메신저, 휴대폰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통신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인류는 과연 얼마나 상호 소통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마음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인지... 통신 수단이 많다는 것이 곧 그만큼 단절의 공간과 시간이 많다는 반증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는 스님의 글들은 한 순간도 '나'를 잊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씀과 하나로 닿아 있다.

무지와 오해는 악의 뿌리다. 한 순간이라도 삶의 순간을 경청하고 연민을 갖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을 이해하는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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