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 - 우리시대 마이스터 3
최민식 지음 / 예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빌릴 때만해도 최민식의 사진집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최민식의 자서전이었다.
실망한 것이 아니라, 잘 됐다는 심사였다. 최민식의 사진을 보고는 꽤나 리얼리즘 작가인데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문이란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 마이스터라고 시리즈물을 찍는 모양인데, 그 1권이 배한성이고 2권이 이현세다. 3권으로 최민식의 자서전이 나온 셈인데...

글을 읽어나가면서 차라리 자서전으로 하지 말고 대담 형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최민식 이름 말고, 글을 정리해 낸 사람을 명기하든지... 지난 번 유명짜한 아나운서가 정말 읽을 거리도 없는 책을 번역했다고 베스트 셀러에 올렸다가 dog망신을 당한 적이 있던 사건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 글은 80세나 되신 최민식 선생이 쓴 글이 아님이 분명한데, 왜 작가가 최민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무리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렇고 그런 대필 작가의 손을 거친다손 치더라도 책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할 병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차적인 생각에 몰두하느라 본문의 내용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자주 범하는 것이 또한 나의 독서법이니 내 병폐도 그들 못잖다.)

막연하게 일본 유학 중, 헌책방에서 우연히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본 것이 최민식을 50년간 <휴먼, 인간>에 집착하게 만든 계기였다. 인생이 180도로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다. 중요한 것은 그 강렬함이 얼마나 진한 농도였는가가 문제일 뿐.

유신시대 반공 이데올로기에 침윤된 시골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렌즈를 부착한 커다란 카메라를 든 그를 간첩으로 오인하여 신고한 일이 백번을 헤아린다 하니 이 나라의 문화 불모지는 애국이 만든 것이다.
반공 방첩으로 애국하자! 하고 학교마다 붉은 글씨로 써붙였던 그 시절엔 독일어로 국가를 뜻하는 Nation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안면몰수의 인면수심의 세상.
대학 출강 시절에도 작업복을 입고는 수위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니 반공의 시대가 물러가고 드디어 물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온몸으로 느끼셨을 것이다.

그가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세상에는 언제나 정의가 모자란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흑백 사진 역시 현실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강렬한 채도를 삭제하고 무채색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실제 이상으로 명도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현실이 변형되는 예술의 한 꼴인 것이다. 그렇지만 최민식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못살아서 얼굴 표정에서 삶의 진실이 뚝뚝 떨어지는 휴먼'들의 사진을 찍어 냈다. 외다리 외팔로 부산 일보를 파는 청년의 얼굴은 가난하지만 삶의 의지로 넘치지 않는가. 그의 흔들리는 옷깃과 조금 흔들린 초점은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춥고 배고프고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람만이 온기를 피우고, 사람만이 의지의 대상이던, 사람이 곧 세상의 모두였던 시절, 물질적으로 너무 부족하여 오히려 물질에 휘둘리지 않던 휴먼의 시절. 그 시절을 기록하기 위하여 그는 숱하게도 자갈치 시장을 넘나들었지만, 이젠 번듯한 신식 건물 안으로 자갈치란 이름에도 어울리지 않게 변해버린 세태에 그는 인도와 네팔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돈의 노예일 뿐인지... 브레송이 사진은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했다는데, 요즘 인터넷 카페들에는 빛도, 구도도, 감정도 없는 푸짐한 먹을 거리들이 사람들의 미각을 돋우며 물신의 강림을 축복하기 위하여 넘치고 넘치고 또 넘쳐날 따름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풍경이나 각종 먹을 거리들이 대치된 삶의 현장, 잊혀져가는 것에는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인간이 들어간다는, 주객전도의 역설이 허허롭기만 함을 보여주는 '스스로 서술하지 않은' 자서전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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