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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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사'책은 정조의 죽음(1800)가 마지막이다.

한민족의 역사 흐름은 정조가 죽으면서 '세도 정치'로 일컬어지는 혼란기와 '개화기'로 일컬어지는 근대화 실패의 시기, '식민지 시대'로 불리는 암흑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폐기,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독재 정치의 시기까지 그야말로 각종 불합리한 정치 기제는 한반도에서 실험되지 않은 바가 없을 정도로, <부조리 정치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또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개화기의 선각자들'과 '식민지 시대의 독립 투사들',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참으로 존경의 염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국사책'이 얼마나 반쪽의 비루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데, 아직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이승만의 흉상이 선 곳도 있고, 박정희의 딸은 수구꼴통을 규합하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황우석이 나오면 난자를 와르르 기증하고, 무식한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다면서 파병을 결정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두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얼싸안고 뜀을 뛰고 발광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기제인데, 이런 것들을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설명한 빌헬름 라이히란 젊은이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이 책은 지루한 부분도 많고, 라이히를 잘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조합되어 있어 읽는 데 두어 달이 걸린 책이다. 사진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보게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파시즘이 판을 치는 그 1930년대에 출판한 것은 그가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쇼 국가들의 특수한 현상이나 히틀러, 무솔리니의 정신병적 행동이 아닌,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 구조의 표현>으로서의 파시즘을 설명하는 그는 다분히 과학자적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론을 장황하게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의 말들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도 많지만, 공상적 이론을 펼치는 그를 보면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아닐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인류 현대사의 두 천재인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두 사람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성정치'란 개념을 만들기도 한다.

성적 억압과 가부장적 구조화된 사회경제적 억압이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한국 사회야 말로 성적으로 강하게 억압된 사회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성경험이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창가에서 군대가기 전에 총각딱지를 뗀다.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은 처녀들도 숱하게 많은 것이 한국 사회다. 그렇지만, 돈을 주고 여자를 사기에 한국처럼 편리한 국가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밤거리에는 유리창 안에 전시된 아름다운 여인들과, 보도방에서 제공하는 중고 아줌마들의 도우미들은 돈만 주면 '꿈의 궁전' 모텔로 입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가부장적 구조도 아직 파괴되려면 한참 멀었다. 아직도 추석과 설 명절엔 시댁에 가서 찌짐을 뒤집어야 하고, 친정이 멀면 못 가는 경우도 생긴다. <시>자만 봐도 욕이 나오는 희한한 풍토병인 '화병'도 공인된 국가.

이런 억압적 국가이다 보니 <비합리적 대중>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라는 신비화된 권위에 기반하여 '우리'와 '너'를 구분하고, 우리가 아닌 모든 것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획일적인 공격성을 가진 나라에 사는 일은 참 피곤하고 괴롭기도 하다.

한국에서 '적'을 만들기는 아주 쉽다.

박정희 욕하면 세상에 적이 수두룩 하다.
노무현 칭찬하면 요즘엔 적이 더 많아지려나.(난 노무현이 좋다. 아무 것도 못하는 대통령이 한국엔 정말 많이많이 나와야 한다. 한 50년은 무능한 대통령이 권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발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명박은 유능하다. 그는 다시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탄압하고, 수치적 발전을 꾀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과 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앞으로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노무현보다 더 무명의 무지렁이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김근태도 정동영도 너무 잘 났다. 유시민도 안 된다. 정말 멍청한 대통령이 자리를 잡아도 되는 나라에 살면 좋겠다. 결정적인 것은 박정희나 전두환을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신문들이 대통령을 욕해서 그가 폄하되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 때, 그 공을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몇백원 만들고 꿰맨다는 이야기 꺼내면 적이 쉽게 생긴다.
학교에서도 '전교조' 교사라면 백안시하고, 특히 인터넷에서 전교조 교사라고 말하면 적은 빽빽한 리플을 달아 준다.

이주 노동자들은 그 피부색으로 이미 한국에서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시골에 다니다 보면 '베트남 처녀와 결혼' 하라며 몇백 만원만 있으면 처녀를 부를 수 있다는 프래카드가 수두룩하게 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혼혈화되는 현실에서 <순수, 순결한 혈통>을 중시하는 파시스트적 인종 이론이 한국에서 판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치의 두려움을 미국의 인종주의자들도 갖고 있었다는데, 한국은 그런 것도 수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한 사진에서 <나는 발정난 암퇘지라서 유태인과 정을 통했다> <나는 독일 여자를 침실로 끌어들인 유태인이다>는 팻말을 목에 걸고 길거리에 서있던 두 남녀를 보았다. 이것이 인간들의 생각일까? 정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까?하는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는 이주 노동자를 돕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이들도 많으며, 베트남 처녀와 알콩달콩 잘 사는 농촌 총각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는 아이는 여성을 구속하는 구조에 불과함을 극명하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래의 해방된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체를 만들어 노동 민주주의의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라이히의 공상적인 생각은 참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 장으로 그의 이 책은 동화가 된다.

자주적 공동 생간과 공동소비,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 구조의 대중을 형성하고, 어떠한 정치나 사실에 어긋나는 불합리한 선동도 거부한다는 그의 글은 어쩌면 잭 런던이 강철 군화에서 그리던 <형제 인류애 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요즘 자주 꿈을 꾼다. 억압이 없는 세상, 순수함을 따지지 않는 세상. 아름다움은 모든 것에 들어 있을 수 있는 세상... 어쩌면 이 책은 사회 과학 서적 코너 보다는, 존 레논의 <이매진>과 함께 공상 과학 미래 소설 코너에 있는 것이 더 어울릴는지도 모르겠다.

소유도 없고,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는... 나를 꿈꾸는 사람이라 여길는지 몰라도... 너희도 우리와 함께 할 거라고...

Imagine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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