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심리학 -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샌디 호치키스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르시스란 녀석이 연못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물에 빠진 자리에 수선화가 피었대나 어쨌대나... 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후로 제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을 나르시즘, 또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라고 한댄다.

심리학의 많은 부분이 신화와 연관된 무의식의 안갯속을 헤매는 항해처럼 막연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개념들로 인간의 모습을 규정한다는 면에서 사회 과학의 한 방식이 되었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설명 양식의 하나가 되었다. 심리학의 연장선에 있는 정신의학도 마찬가지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애라고 할 수 있는데, 과도한 경우를 일컫는다. 나르시스처럼 죽음에 이르도록 위험한 지경의 일종의 정신적 장애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나르시시즘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피곤하게 하고 곤란하게 한다. 국가의 측면에서 나르시시즘이 작용하면 군국주의나 파시즘이 될 수 있고, 개인의 측면에서도 경영자가 나르시스트일 경우 정말 사표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나르시스트일 경우 아이가 바르게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심리학이나 정신 의학, 상담 심리 책을 읽다 보면, 이거 나도 정신병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내 경우와 흡사한 말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인간의 심리가 갖는 보편성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이런 공부도 해 볼만 하다.

이 책은 제법 두껍지만, 그닥 어려운 편은 아니다.

세상에서 이기적이기 그지없다고 동료들의 술자리에서 안주로 톡톡한 기능을 하는 인물들의 많은 특성이 나르시시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고 이 책 한 권을 독파한다고 해서 오징어보다 맛있는 뒷담화 까기를 충족시킬 수 있단 것은 아니다. 뒷담화는 오징어보다 땅콩보다 질긴 생명력으로 착취에 대응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술자리 문화가 <연장 근무> 선상이라면, <2차> 문화는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뒷담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2차에는 대부분 부서장들이 빠져주는 이유가 그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르시스트는 사람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자기를 치켜 세워주는 사람과 자기를 깎아 내리는 사람. 전자는 살아 남지만 후자는 언젠가 제거된다. 끝없는 갈등의 연속이다. 직장에서 나르시스트가 상사일 경우, 조금만 잘난 체하는 후배를 보면 용서하지 않는다. 온갖 권위와 치사한 술수를 써서 제거에 몸을 바친다.

나르시시즘이 지배하는 가정에서는 한 편에선 주기만 하고 한 편에선 받기만 한다. 이것이 병이다. 완벽한 엄마는 자기의 기준을 세워 두고 아이가 거기 도달하기만을 바란다. 자기 아니는 언제나 완벽해야 하며, 분명히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은 지켜져야 한다. 반면 아이가 왕자나 공주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부모는 완벽한 시종이 되지 않으면 가정은 파탄이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들.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들.
이들에게 권력은 수치심을 보상해주는 더없이 좋은 약이기 때문에 나르시스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권력을 추구한다. 권력을 놓치는 일은 인생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직장에서 정말 미치고 폴짝 뛰게 만드는 상사와 매일을 보내야 하는 사람.
자기 자식이 공부를 좀 잘 하고, 착실하게, 부모 맘에 딱 들면 좋겠는데 아이가 영 아닌 사람.
세상은 왜 나에게 늘 맞춰주지 못하고 이모양 이꼴일까... 하고 늘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을 한번 읽어볼 만하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별이 넷인 이유는, 사례가 생생하지 못하고 좀 강의 식이어서 지루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