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세탁소 - 정미경 소설집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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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작가의 작품집을 읽은 것은 처음인데, 무척 인상적이다.

툭 던지는 한 마디는 대체로 '화두'에 가깝다.

제목도 생뚱맞다.

원래 삶 자체가 생뚱맞고 당황스런 것이니,

게다가 나이든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야...

회의 중 방귀를 나뉘어 조심조심 뀌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210)"

소리를 듣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정미경 작가는 쉰 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뜬다.

삶은 그렇게 부정교합의 연속이다.

 

'남쪽 절'이라는 작품에서는 캄캄한 어둠을 걷는 설치미술을 만난다.

삶이 그런 것이라는 듯...

 

휘어진 모퉁이에서 핸들을 꺾을 때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숲이 팔을 들어올려 휘청,

얼굴을 가렸다.(63)

 

운전하다 보면,

밤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치는 세상은 현실과 다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작가처럼 적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삶의 속살을 만나는 일이 잦은 사람은 삶이 더 고단할 것 같기도 하다.

 

탈북한 예술가가 남한에서 겪을 생경함은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겪는 곤란과도 오십보 백보다.

 

"그 사람은 외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외로움을 무척 좋아하지."

외로움이란 고독과는 달리 취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이는 느낌일 텐데.(178)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그린 부분도 일품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통계 내기 좋아하지.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걸 알려주는 통계는 없어.

그건 각자의 몫이겠지.

일생동안 행복했던 순간, 사랑 때문에 가슴 조였던 순간,

혼자 눈물 흘렸던 시간, 그런가.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인 순간이 얼마나 될까.(180)

 

'남쪽 절'에서나 '프랑스식 세탁소'에서나,

그 제목들은 뜬금없는 상관물(오브제)들일 뿐이다.

나, 라는 존재 역시 다른 자들에게는 그렇게 하나의 오브제일 뿐이라는 듯...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달리는 말의 등에 채찍질하며 그 귀에 속삭였네.

말아, 제발 천천히 달려 다오.(작가의 말)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달려가버릴 것임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것임을 작가는 예감했던 것일까.

스스로 파괴하는 줄 알면서

그 풍요로움의 단맛에 집착한 삶에 대하여...

이런 작가가 가버렸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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