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순대로 이 책은 시작한다.

라일락은 곁가지고, 순대는 가난한 대학 시절의 5백원짜리 안주였다.

한번은 하숙 선배랑 5백원짜리 순대에 고춧가루 섞인 소금을 놓고 소주를 마시는데,

주인 아저씨가 다음날 잔칫집에서 돼지 한 마리를 맞추어 잡았다며,

돼지의 온갖 부위를 뜨끈한 상태로 숭숭 썰어주시는 호사를 맛본 일이 있다.

내 살면서 가장 맛있었던 술안주였다.

5백원 아니라 50만원 준대도, 그맛을 되돌릴 수는 없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에 홀려서,

그의 소설집을 몇 권 읽었다.

'안, 주'의 목이 메는 맛이 역시 최고였다.

이 책은 주정뱅이에 비하면, 외도이고, 곁가지다.

 

처음에 쓴 몇 가지의 글은

읽으면서 술맛을 부르게 했다.

왕짱구의 만두가 눈앞에 보이는 듯 했고,

대학 시절의 막걸리 잔들 사이로,

취하지 않던 고통스런 날들의 거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뒤로 넘어가면서는 혼밥하는 여성의 반찬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어쩔 수 없이 소주를 한 병 곁들이는 것처럼 보여,

칼럼의 한계가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림동 매캐한 연탄냄새 가득한 '신림부페'의 순대볶음을 보면서 까탈을 부렸던 사람.

그런 권여선을 이런저런 맛의 세계로 부른 것은

어쩌면 소주의 알싸한 매운맛이 아닌가 싶다.

 

상대방의 손바닥에 담뱃불을 지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지닌

'이모'의 삶을 되돌아보는 그의 소설을 떠올리면,

산다는 일 자체가 허망하면서도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의 연속임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결국 단식을 하든, 맛나게 포식을 하든 간에,

살아있는 지금이 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일에는

먹는 일이 뗄 수 없는 동반자가 되는 모양이다.

 

추억과 기억을 안주삼아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청주라도 한잔 들이키고 자야겠다.

술을 부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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