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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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문맹이라니... 아니, 소설가의 '문맹'이라는 작품이라니...

아고타의 '세 가지 존재의 거짓말'은 과할 정도로 강렬했다.

주인공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쓰는 일에 대한 감동도 잊히지 않는다.

 

크리스토프의 삶을 건너뛰기하며 적어낸 글이다.

모국어를 버리고 적의 언어로 글을 쓰기까지,

통역도 번역도, 원서로 하는 읽기도 아닌,

전혀 다른 언어로 쓰는 일이란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기도 힘든 경지를

그를 통해 조금 상상해 본다.

 

외국어로 책을 읽는 일은,

표지와 경계가 뚜렷한 해수욕장을 벗어나

저 멀리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어를 읽는 동안

나는 가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그곳에 있는,

누군가의 모국어와 내 발을 묶고 있는 내 모국어 사이 어딘가에서

대양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물고기처럼 자유롭다.(118)

 

이건 옮긴이의 말이다.

 

문맹은

독서와 서사를 사랑했던 한 여자아이가

작가가 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사회적,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한 안 인간이

언어를 배우며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124)

 

이것도 옮긴이의 요약이다.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73)

 

이 책은 짧고 가볍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간단하다.

다만, 읽는 이의 마음 속에는 한없이 무거운,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심연의 깊이와 무게를 남긴다.

 

아주 좋은 책이라고는 못하겠다.

재미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문맹>은 모국어와,

외국어 독서와,

글쓰기라는 자유자재와 부자유의 간극을 고통스럽게 잇닿게 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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