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공감 - 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정혜신의 글을 읽으면 뭐랄까, 국물 맛이 푹 우러난 뜨끈한 콩나물 국을 '어, 시원하다'하면서 쭉 들이키고 나서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채 정말 속이 시원해 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어디 쓴 칼럼들을 모은 글 같은데, 사람, 관계,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란 파트로 나누어 두었다.

정혜신을 읽다 보면, 표지 날개에 드리운 어여쁜 사람의 얼굴 위로 강한 <페르소나>가 중첩된다. 그 페르소나의 색깔은 <남자>라는 색깔이다. 그 자신이 정신과 의사니 이 글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는지 모르고, 또 이 글을 읽을 확률은 1/100도 안 되겠지만(전에 이랬다가 저자가 글을 읽고 뭐라고 댓글 단 적이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 맘대로 느낀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물론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의 달라야 한다는 것은 편견일 수 있지만, 크게 구분하면 그렇다는 거다. 내가 남자면서 뒤집어쓰는 페르소나는 <여자>이듯이.

그의 표현들은 적나라하고, 시원시원해서 공감이 가는 측면이 많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영역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
사이코패스란 정신병질자란 의미로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 심지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기제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나는 국보법 관련 발언 중 이렇게 시원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국보법 폐지 반대에 올인하는 듯한 놈들의 행동을 정치적 관점이 아닌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강박적 행동>의 일정으로 본다. 툭하면 그들은 <국가의 정체성> 운운하지만, 홍세화 님 말대로 한국의 정체성은 반공국가가 아니라 <민주 공화국>이다. 임금만 없으면 되는 나라가 아니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나라란 뜻이다.

그는 지역 감정을 '감정'의 차이가 아닌 '망상'이라고 규정한다. '망상'은 잘못된 신념으로 평소의 인품이나 교육 정도와도 전혀 관계없이 나타나며 어떠한 논리적 설득에도 망상을 포기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지역감정 문제가 바로 그런 체계화된 망상이란 것이다. 지역 감정이 아니라 사고 장애를 일컫는 <지역 망상>이란다.

'진도간첩단 행방불명자가족사건'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채고향까지는 너무나 가하지 않읍니까. 넓으신 마음으로 못난 소인을 한번 살려 주세요. 판사님 형법에 의한 벌만 주싶시요. 판사님... 1984년 11월 15일 피고인 김정인...> 이런 소장을 올렸으나 이금해 김정인은 47세의 나이에 사형을 당한다. 이미 죽은 그에게 명예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 이땅에 수백만에 달하지 않겠는가... 정말 공감하며 읽게 된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마술적 사고>란 개념을 들이댄다. 마술적 사고란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이러한 알 수 없는 힘을 달래기 위해 동원하는 원시적 사고를 일컫는 정신과 용어다.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를 둔 아이가 '내가 하루에 책을 백 페이지 읽으면 엄마가 죽지 않을 거야'하고 생각하듯.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같은 극단의 불안이 마술적 사고를 불러온다.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마술적 사고...

파병에 관해서 또 이런 예를 든다. <오빠 믿지?>하는 장면. 열차도 끊어진 외딴 마을에서 오빠는 말한다. '오빠 믿지?' 망설이던 여자가 새끼손가락까지 내밀며 오빠의 다짐을 받아내지만, 그날 밤은 날 샜다. 이렇게 말해야 한단다. '오빠, 나를 꼭 지켜줘야 해요...' 가 아니라, <아주 지랄을 하세요.>라고. 미국한테 해 줘야 할 말이다. 나를 지켜줘야 해요... 가 아닌, 아주 지랄을 하세요! 하고 말이다. 공감의 수준을 넘어 통쾌한 구석이 있다.

정혜신의 글들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을 낯설지 않게 해 준다. 그러면서 그 분석의 틀들을 적절하게 들이대서 한국 사회와 거기서 설치는 남성들을 '공감'가게 해부한다. '사람 대 사람' 이 그랬고, '남자 대 남자'가 그랬다.

이런 책들이 갖는 한계가 있다. 그 시점에서 읽지 않으면 시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파병도 벌써 했고, 탄핵도 우습게 됐고, 노무현도 우스운 대통령이 되어버렸지만, 그 시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틀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므로 그의 글을 읽는 일은 유쾌하면서도 교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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