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카를 마르크스 지음, 임지현.이종훈 옮김 / 소나무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이 책을 사서 힘겹게 읽은 적이 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사라는 역사적 팩트를 차용하여,

혁명이란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것인지를 밝힌 책이라고 하는데,

당시 역사에 밝지 않은 나로서는 전체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현 세대가 자기 자신과 만물을 개조하고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무엇인가를 창출해내는 데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도,

바로 그와 같은 혁명적 위기에 시기에도

그들은 자기의 일을 도와달라고 노심초사하면서

과거의 망령들을 주술로 불러내어 이 망령들로부터

이름과 전투구호와 의상을 빌려

유서깊은 분장과 차용한 언어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190)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는 감탄할 따름이다.

촛불이라는 국민의 힘을 감당하는 기구가 없다.

국회가 저지르는 패악들을 보면서 분노한 국민들은 선거에서 자유당에게 참패를 안겨 주었다.

문제는 찍을 당이 민주당 뿐이라는 데 있다.

대통령의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지, 행정부라는 도구는 이미 관성이 붙어 있다.

모든 이전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우리 머리를 짓누른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는

항상 외국어를 일단 모국어로 번역하지만,

새언어를 사용할 때 모국어를 떠올림이 없이 그 언어 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찾고

자신의 모국어를 망각할 정도가 될 때에만

그는 새로운 언어의 정신에 동화되고,

그래서 그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191)

 

민주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촛불 국민의회를 만들어 저 개새끼들의 국회를 해산하지 못한 이상,

민주당과 청와대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2년이나 남은 총선에서도 당연히 자유당은 폭망할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자유당과 정치적 입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삼성과 손잡고 최저시급 변칙 처리에 도장 찍는 개새끼들이다.

그런 자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병신같은 집단이다.

 

그들의 무릎 위로 열매가 떨어지긴 했으나

그 열매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

지혜의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207)

 

생명의 나무는 영생을 얻는 나무지만, 지혜의 나무는 선악과였다.

다시 인간을 파멸로 몰아 넣은 열매.

촛불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힘, 대중의 지능이,

새로운 언어의 정신을 얻을 때까지,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서 세습군주정에 대한 믿음을 떨쳐내고

민주공화정을 맹신하게 되었을 때

이미 아주 힘차게 과감한 일보를 앞으로 내딛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는 실제로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에 대한 탄압 기관에 불과하며

이는 군주정 못지않게 민주 공화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여건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모든 국가적 폐물과 결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국가의 최악의 여러 측면을 코뮌처럼 가급적 신속히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348)

 

박근혜 세습정치를 몰아냈다고, 진보된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은 아직 없다.

대통령의 개헌안도 무산되었고, 그것을 통과시킬 힘도 촛불에겐 없었다.

 

코뮌의 조치들은

인민에 대한

인민 정부의 성향을 예시했다.

고용주가 잡다한 구실로 자기 고용인으로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관행의 금지 등을..

그러한 관행은 고용주가 한몸에 입법가, 재판관, 집행인의 역할을 결합시키고

돈을 좀도둑질하는  한 과정인 것.(418)

 

지금 이 땅의 민주 공화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의 종복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 보장안을 삭감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고용주가

국회를 움직이고, 재판관의 판결문을 움직이고, 행정부와 결탁하는

좀도둑질하는 과정을 언론에서조차 알리지 않는 무서운 공화정...

결국 이것은 공화정이 아니라, 삼성의 군주정이다.

 

역사책을 읽는 일은 무섭다.

수백년 전의 일들에서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들이 벌어졌고,

인민들은 늘 실패해왔다는 것을,

권력과 자본은 늘 웃는 낯으로 칼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고,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날을 맞는 것은

우리가 죽기 전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하다.

신념은 미약하다.

짧은 인생을 신념과 싸워나가기엔 역사 공부는 힘겹다.

그렇지만 공부가 필요한 것은,

유한하다고, 미약하다고 꺾이지는 않았던 인간들을 역사가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 복잡한 사태들을 마르크스나 레닌처럼 꿰뚫어 맥락을 보여주는 혜안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공부를 접을 수는 없다.

 

자유당의 폭망에는 쓴웃음을 날리지만

민주당의 독식에는 좋은 기분이 아닌 복잡한 여러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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