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꽃말을 읽다
안상학 엮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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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 '밴드'가 깔려있는데,

초등, 고등학교 동창회, 반창회 소식을 간혹 전해듣는다.

초창기엔 꽤나 열심히 글을 올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요즘 시들하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꼭지 하나가 '모까'라는 밴드다.

 

꽃이나 나무, 풀의 이름을 몰라 사진을 찍어 올리면

온갖 전문가, 고수들이 그 이름을 알려준다.

처음 듣는 외국종 풀들도 많고, 이름도 다양한데,

간혹 아름다운 이름들도 알게 되고, 궁금증이 풀려 유익한 밴드란 생각이 든다.

 

요즘 한창 피고지는 핫립세이지나, 황금달맞이꽃,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떠오르게 하는 클레우스란 식물도 만났다.

아파트를 돌다가 찍어올린 태산목 꽃에도 사람들이 금세 이름을 붙여 준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꽃만한 것도 없다.

다양하기가 그럴 수 없고,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가 그러하고,

묵묵히 웃지도 말씀도 없으나 생김이 다른대로 모두 향기롭다.

 

황홀한 절정은 오르는 과정이 출실하고 내리는 과정이 성실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인생은 화병에 꽂아둔 꽃이 아니다.

꽃이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알뜰하게 살피는 마음이 동반될 때 향기와 빛깔을 더욱 소중하게 보듬게 되는 것.(133)

 

그래서 시를 갈무리하고

멋진 생각들을 첨언한다.

좋은 글들이 많다.

 

시는 겨울을 건너가는 방식에 대한 깨달음이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처했을 때

자가 격리와 자발적 소외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그러안는다.(139)

 

엄원태의 '강 건너는 누떼처럼'을 읽으며

'이 시는 전폭적이다'라는 글을 덧붙였다.

고통스러워보이는 현실 역시 삶이므로,

그것을 그려 보여주는 것이 전폭적인 지지의 이유다.

 

아주 좋은 난해시는

문자와 문장 앞에 진퇴양난이고

아주 좋은 이해시는

속뜻과 여백에 들어서는 속수무책이다.

난해시는 길이 보이지 않는 무중이고

이해시는 여러 갈래 길이 저마다 뚜렷해 아연하다.(103)

 

신문에 연재한 글들이라는데,

신문에서 이런 글을 만나면 하루는 행복할 게다.

 

난해시든, 이해시든 간에 '아주 좋은'이 조건부다.

 

유홍준의 '오므린 것들'을 읽으면서 그의 시를 '상형 문자'라 부른다.

 

유홍준의 주특기인 '상형 문자'가 빛나는 시다.

형상을 보고 삶의 숨결을 끄집어내는 솜씨가 참으로 유감없다.(87)

 

둥글다는 건/ 공 같다는 것이 아니라/ 툭,/ 트였다는 것.(오서산, 장철문)

 

김해자의 '데드 슬로우'에 덧붙인 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큰사랑의 탄생 지점이 나타난다.

바로 지배이데올로기의 반대쪽에서 태어난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을 제거해온 것이 지배쪽이요,

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움직여온 것이 지배를 받는 쪽.

시에 큰사랑이 깔린 것을 보면

시의 생산 지점을 알 수 있다.(25)

 

서안나의 '병산 서원'의 첫구절은 멋지다.

 

지상에서 남은 일이란

한여름 팔작지붕 홑처마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일.(16)

 

사는 일도 그렇고,

자연의 일도 그렇고,

시를 읽는 일도 그렇다.

 

꽃은 매번 피는 것 같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한 결과이고,

금세 지는 듯 하지만, 열매맺음에는 변함이 없다.

 

꽃을 보면서 즐거워만 할 수 없듯,

자연을 보면서 읊은 시들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졸기도 하면서 한나절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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