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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ㅣ 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평점 :
도서관에 오정희 컬렉션을 주문해서 꽂아두고
첫 책을 <새>를 빌려왔다.
그의 책은 읽은 것들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필사 筆寫의 유혹을 느낀다.
가난한 세상.
어미는 없고 아비도 허수아비같은 누나와 앓는 동생.
차가운 세상은 그들의 방 안에 햇살 한 줌 나누어주지 않는다.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을 맞으면 살도 피도 뼈도 혀도 차갑고 딱딱하게 죽어버린다고 했다.
죽은 나뭇가지같이 비틀린 팔과 다리를 늘어뜨린 채
양지쪽에 나와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바람 맞은 늙은이들은 무서웠다.
고개를 숙이고 뜀박질하듯 빨리빨리 그 앞을 지나쳐 한참 떨어진 뒤에도,
뒤를 돌아보면 뿌연 눈빛이 머리 뛰꼭지까지 바짝 따라와 있곤 했다.(8)
별것 아닌 문장들인데,
문장들이 명료하고 정확하다.
단어들이 삐걱거리지 않고 제자리를 잡아 착 달라붙는다.
컬렉션으로 좋은 책들이다.
인생살이가 소꿉놀이 같아.
한바탕 살림 늘어놓고 재미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오지.
그러면 놀던 것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고
뿔뿔이 흩어져 제집으로 가버리는 거야.
사람 한평생이 꼭 그래.(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