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기쁨
금정연.정지돈 지음 / 루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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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기쁘지 않은 부분은

해설 부분을 읽어야 할 때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문학에서 기쁨을 느낄 때는 이렇다.

시집을 읽는데, 마음에 박히는 시가 몇 편 확 달려드는 때,

그런데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다가 시집을 다시 읽으면,

완전히 다른 시들이 또 고개를 들 때,

 

소설을 읽으면서도 인물의 생생한 삶이 오롯이 마음을 울리고,

그가 지구 위에서 나와 같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존재의 비애를 느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이렇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반면, 기쁘지 못할 때는,

시집 한 권을 다 읽었는데도,

유명한 이의 소문난 시집인데도,

마음을 끄는 시를 한 편도 만나지 못했거나,

도대체 이 작자가 뭔 소리를 하려는 건지를

아예 생각조차 맞추어볼 수 없을 때...

 

어린 시절에는 해설을 읽으면서 어떤 것을 느껴야했던지를 돌아보았지만,

이제 해설을 붙인 것 자체를 가증스럽게 생각하고 염증을 낸다.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한줌의 사람들만 듣는다는 것,(28)

 

그런 글을 읽으면 안타깝다가 화가 나기도 한다.

김현의 글 같은 데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울분,

아름답고 쉽게 적혀있는 문장론, 이런 것에 반하게 되는가 하면,

어떤 이의 문학론~인체 하는 해설에서는

서양의 어떤 어휘들을 끄집어 들여서

억지로 시를 해설하려 틀 속에 욱여넣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난다.

더더군다나 국문학과를 나와서

그런 일 자체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아름답지 않은 글을 자주 만나면...

 

외국의 경우

잡지에 실린 단편이나 출판사 출간 소설은

모두 투고를 통해 선정됩니다.

한국처럼 상을 받으며 등단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아요.(48)

 

연고 주의가 문학에도 파고든 것이다.

외국이 어떤가는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기다려지는 작가가 점점 드물어지고,

멋진 작품도 귀하게 되는 풍조는 아쉽고 안타깝다.

 

지금은 사막에 창비, 문동 같은 오아시스 몇 개 있고

그 부근에서 지지고 볶는 느낌.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사막을 가로질러서 사람사는 도시로 가는 것.

오아시스 부근 생태계에 머무는 건 작가의 임무도 아니고,

좋은 전략도 아니다.

문단 권력 논쟁은 오아시스 너머를 안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막을 건너고 싶다.

내가, 누군가 사막을 건너고 나면

지금의 문단 권력 논쟁은 되게 웃기는 거였다고 알게 될 거.(65)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의 장강명이 한 말이다.

 

그는 올해 이것을 '계급'으로 명명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멋지다.

 

 

 

<관료제 유토피아>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나눈다.

 

관료주의에서 결정적인 특징 하나는,

특정 개인과 무관한 공식적 기준 - 필기시험 - 에 따른 선발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그들은 실력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 시스템이 수천 가지 다른 방법들 중에서 타협 줄충된 것임을 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의 첫번째 기준은 공범이 되는 것이다.(152)

 

멋진 구절을 가끔 만나기 위해

금정연과 정지돈의 이야기를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내가 꼼꼼하게 다 읽지 않았지만,

그들이 떠드는 위상수학을 빌려 말하자면,

장강명이 목소리 높여 외친 원기둥이나

그들이 떠드는 내용이나 같다는 것 아닌가 싶다.

 

지들은 도너츠나 츄러스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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