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성적표 - 고등 학생, 우리들이 쓴 시 보리 청소년 6
고등 학생 81명 시, 구자행 엮음 / 보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교지 담당이라 다른 학교의 교지들을 읽어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교지를 펼쳐서 휘리릭 넘기다 보면, 아이들이 쓴 글을 반가워라 하고 읽게 되는데, 그 교지를 만든 선생님의 취향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학교 교지에 실린 시들은 겉으로 번지르르 하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글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학교 교지는 가슴을 퉁~ 치고 가는 짧은 글들이 있기도 하다.(개인적으로 이 비싼 교지를 확 폐지하고 싶지만, 학교 전통을 이야기하는 관리자 앞에서 매번 만들고 만다.)

이 책은 부산에 사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쓴 시다.
부산상고는 대통령의 모교지만 95% 이하의 아이들이 가는 학교고,
부산고등학교는 30년 전까지는 부산, 경남 최고 성적의 학교였지만 지금은 일반계 최하위 성적을 유지하는 못사는 동네, 도심 공동화 현상이 빚어낸 학교고,
강서고등학교는 부산시는 부산시지만, 김해공항보다 더 외진 데 있는 농어촌 학교다.

이런 데로 다니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나는 실업계와서 숨이 턱턱 막히는데...

이 책에 담긴 아이들의 시를 보면 지도하고 엮으신 선생님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아이들의 삶이 그대로 표현되는 글이 좋은 글이고,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오롯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중학교 1학년 입학하면 배우게 되는 김지하의 <새봄>이란 시가 있다.

벚꽃 지는 걸 보니/푸른 솔이 좋아./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벚꽃마저 좋아.

이 시는 감옥에서 나온 시인이 <중심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사쿠라마저 좋아하는 오묘한 정신세계를 그린 것인데, 이걸 중학교 책에서 배워야 하는 내 아들이 가엾다. 이게 무슨 시냐.

우리 학교 벚꽃은/ 소나무 옆에 서있다./ 아이들은 벚꽃만 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소나무는 서운해진다.

이게 훨씬 생동감있고, 올곧은 정서의 시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을 보니 20일 수요일이라고 되어있다. 좀전만 해도 25일 화요일이었는데, 하루를 마친 시각이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다. <학원 수업 마치고>

이런 글을 읽으면, 한국의 학생들을 정말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가엾은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가엾다고 느낄 줄 아는 아이들.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장애자, 독거 노인, 외국인 노동자들 처럼 낯선 이들에게서도 곧잘 동질감을 획득하는 순수한 젊은이들.

이 아이들은 파업을 하는 이들의 정당함에 쉽게 <연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날마다 패배만을 가르치고 있는 거나 아닌지...

학교에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6시간 50분 후엔 다시 학교에 와야 하는 비극을...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