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독자들께서 판단할 일이긴 하지만, 나는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중립'을 지키고자 무진 애를 썼다.

안쓰럽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논객, 강준만이 이런 어쭙잖은 글을 서문이라고 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처럼 대학생들에게 전문적 글쓰기를 시키는 사람은 아니지만, 국어 교사로서 학생들의 글쓰기를 담당하는 나의 '판단'은 그가 무진 애를 쓰고 있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애초에 글쓰기라는 것은 '중립'에 설 수 없다.
글을 쓸 때 이도저도 아닌 마음이어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중립'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은, 내용에 앞서 <논리>나 <표현>의 정확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논술 시장의 시대>가 되었다. 어느 멍청이라면 <논술 공화국>이란 발언을 하겠지만, 홍세화 씨의 말마따나 공화국은 공공성의 개념이 만든 말이므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입시에 적당한 논술은 공화국과 어울리지 않겠다.

온갖 잡스런 신문들에서 <논술 바이블>을 만들고, 뉴스들에서는 마치 문제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광고해주고 있다. 미쳐도 한참 미쳤다. 그래가지고 대학들어가 봤댔자, 서울대에서 할 말은 뻔하다. <요즘 아이들 학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알라딘에 글을 올리다 보니, 나도 글쓰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저자의 '글쓰기로 세상보기'라는 관점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쓰는 이는 결국 편집자이기도 하다는 말도 그렇다. 결국 글은 스타일 중심이 아니라 메시지 중심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글을 쓰다보면, 세상에 대해 본의든 아니든 논평을 붙이게 되어있고, 자기 메시지가 들어가게 된다.
스타일은 비꼬기든, 추억 되새기기든...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는 <포지셔닝>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나는 리뷰를 쓸 때, 어떤 위치에 내 글을 놓을 것인지를 생각한다.
별표는 거기 따라 다르다.
책의 메시지가 내 맘에 꼭 들었다면, 적극적인 예찬의 <포지션>에 리뷰가 놓일 것이고, 별은 꽉찬다.
그렇지만, 책의 메시지가 너무 허술하거나 상업적이라면 내 리뷰의 포지션은 찬바람이 휭~~ 도는 쪽에 가고, 별은 하얀 별이 더 많이 뜰 것이고...

아이들의 글에는 분명히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책에서는 그 내용의 측면보다는 <전략의 부재에서 오는 허술한 글쓰기>, <극단적이거나 도식적인 글쓰기>, <감정에 치우친 글쓰기>, <어법에서 딸리는 글쓰기>에서 오는 논지 전달의 오류를 극복해 보자는 측면에서 많이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왜 글쓰기 전략을 못 세우고, 극단적으로 치달으며, 어법에서 딸리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 문제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작년에 내가 본 일본 연극 <청춘>에서도 '글쓰기 교육'을 적대시하는 교육부가 비판받고 있다.
독재 시대에는 '글짓기'라는 것이 있었다. 글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지어내는 것이지, 표현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 함축되어있다.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고, 표출하게 하는 교육이고, 할 말은 하게 하는 교육이다.
그 속에는 '토론'이 들어있고, '회의'가 필수 과목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배우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다.
토론하려 드는 자는 <빨갱이>이며, 회의란 회의적이게도 상명하달의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루한 자리가 아니었던가. 학급회의 마무리는 장엄하게도 <선생님 말씀>으로 막을 내렸으니...

문제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메시지>의 부재, <컨텐츠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이리라.
그가 글쓰기는 연애와 같다고 했듯이, 연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 말 없으면 듬직해서 좋고, 재재거리고 이야기하면 풍부해서 좋은 것이 사랑의 말이다.
신영복 선생님처럼 종이는 없고 할 말이 많으면 명문이 나오게 마련인 법이다.

아이들에게 1500자 원고지를 턱 던져 주고, 써라! 하고 명령하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사망선고와도 같아 보인다. 아이들은 수능을 대비하여 암기하는 기능을 극대화하는 교육을 받아왔을 뿐이지, 이해한 것을 종합하여 분석하고 비판적 지능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결국, 형식에 매달리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시사 논쟁의 이해>라는 컨텐츠의 장으로 엮은 것은 아이들 머릿속에 든 것이 없는, 아니 잘못된 지식만으로 가득한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는 것은 나뿐은 아니리라.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즐겁게 누리지 못하고, 국수주의적이고 극우적인 시각으로 가득한 <국정 교과서>로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연병장과 사열대가 갖춰진 군사교육시설에서 획일적인 군복을 입고, 색깔도 지정된 가방과 신발, 양말을 신으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논술>로 대학을 가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는 강교수 같은 분이라면,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기법을 강의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의식화' 방법이나 커리큘럼을 짜 주는 것이 도와주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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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6-12-0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에 공감합니다. 수능 끝나고부터는 연일 신문에서 논술 때문에 난리를 치고 있지요... 대중매체가 더 무섭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말 한마디에 또 부화뇌동 자기들끼리 난리치는 걸 보면, 분명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통찰도 깊을텐데 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지요. 우리나라 글쓰기는 단 하나의 결론만을 이끌어내는 틀에 짜인 또 하나의 암기과목인 셈이지요... 너무 슬픈네요.. 아..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뭐, 확실한 건 님의 리뷰가 가슴에 와 닿아다는 거...^^

글샘 2006-12-0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매체를 가진 자들은 자본입니다. 돈이 되니깐 그런 거지, 통찰이 깊어서 그런 것들은 아니라고 봐야죠. 제 리뷰가 가슴에 와 닿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꼬마요정 2006-12-0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향기로운 2007-01-1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는게 즐거운 분들이 부러워요^^;; 글 읽는 것조차 힘겨울때도 있는데 즐겁게 쓰는 분들은 더더욱요..^^ 리뷰도 잘 보고 또 담아가요^^

글샘 2007-01-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가에 자기 생각을 몰입하여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단 건, 참 든든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맨날 읽은 책에 리뷰도 남기고 하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