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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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란 시트콤이 있다. '도시 여성들의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고, 리모컨을 돌리다가 만난 적은 있지만,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그 제목의 강렬함으로 제목은 알고 있다. 발칙하게도, 섹스란 말을 제목으로 쓰는 드라마라니...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오래 본 듯 하다.

처음 책의 표지를 떡하니 넘기니, 정이현이란 작가의 새침한 얼굴이 뺀질거리며 날 쳐다본다. 갑자기 뭔가가 들킨 것 같아서 얼른 페이지를 넘기고 말았다. 난 그런 눈빛이 늘 불편하다.

이 작가, 조금 잘 쓴다... 싶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줄거리가 너무 지겨웠다. 오은수가 십년 어린 태오를 만나는 일은 순정 만화를 많이 본 탓이지 싶었고, 우거지상을 하고 나타난 친구들은 사랑과 전쟁을 많이 본 탓일 듯하며, 가정에서 의미를 잃은 엄마는 박완서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 것 같고, 편집자 오은수는 그미의 이력을, 신발 끌며 걸어온 역사를 보여주는 인물인 듯 하고, 태오 말고 김영수는 그미의 주변에서 늘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숱한 '선보기용 남자'의 더도 덜도 아닌 익명성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간혹, 김광석의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를 흥얼거리는 부분에서 제법이다가도,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는 '피터팬'의 독백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스무살, 그런 나이가 나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괜히 칼칼해진다...고 했는데, 나는 어제 저녁, 문득 길거리에서, 비내리는 도로 한 복판에서 이십 년도 더 된 <지랄탄> 냄새를 맡고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칼칼해지는 이유와 내가 칼칼해지는 이유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지랄같은 칼칼함은 같다. 그미라면 같이 마주앉아 쐬주 한 잔, 나눌 만 하겠다.

압구정까지 동행하기엔 거추장스런 반찬싼 보따리 짐같은, 그래서 가족 사진에서 자신을 오려내고 싶은, 가족이란 이름의 굴레와,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착취인 <결혼>에 대하여 저항하지만... 결국 중력은 모든 존재를 지구 가까이로 끌어 당기지 않는가.

"남들처럼"을 캐치프레이즈로 사는, 이름도 밋밋한 김영수, 한자로 써도 밋밋한 金永洙. 아, 그가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삶이, 다만 "남들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란 대목에선 목울대가 먹먹해진다.

서울 여자, 2006년의 서울을 사는 오은수가 그토록 멸시하던 <남들처럼>이 김영수 아닌 김영수는 그토록 살고 싶은 모토가 아니었는가.
그래, 모든 기준은 <헛것>이다.
아, 정이현이 좀더 쓰면 무시무시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마라톤이 인생을 닮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란 구절을 쓰는 30대는 가엾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마라톤에는 예정된 결승점이 있지만, 인생엔 없다. 마라톤은 뛰다 말 수도 있지만, 인생은 그게 안 된다. 다음 경기는... 없다.

여기든 저기든, 누구든 똑 같다. 인간은 제 누추한 육체가 머무는 바로 그 곳에 환멸을 느끼도록 세팅된 존재임은. 그래서 언제나 인생을 한 템포 지울 수 있는 <--- Backspace 버튼, 다른 키보다 자주 눌러야 하기 때문에, 두배쯤은 큰 그 버튼 위에 한 발을 올리고 살고 싶은 존재들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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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11-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제 누추한 육체가 머무는 바로 그 곳에 환멸을 느끼도록 세팅된 존재임은"
우와.....너무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예요.

excel을 처음 배웠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1. 엄청난, 그 파워풀한 기능에 놀랐고,
2. "undo"에 반했어요. 인생에도 updo가 있다면!

글샘 2006-11-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이런 점에서 정이현이란 작가는 왠지 호감이 가더군요.
잘난 체하지 않고, 몸으로 느낀 것들을 쓰는 것 같애서... 그래도 아직 만화같은 이야기들이 많긴 했지만요. undo... backspace... 하느님께서 이런 것을 우리에게 주셨더라면, 세상이 더 엉망이었지 않을까요?ㅋㅋ

22zero 2006-12-13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달님 말에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 리뷰 읽으면서 마치 청량음료 한 잔을 들이킨 것 같아요 ^^

글샘 2006-12-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은 감사합니다.^^ 근데 청량음료는 몸에 안 좋대요. ㅋ
닉네임이 쥑입니다. 된장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