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춘의 편지 2006/11/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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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총과 전교조는 파업이나 연가투쟁을 위해 회사에 나가고 학교에 나가는 사람들 같다. 본업이 파업과 연가투쟁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조직의 말로가 무엇인지, 또 이런 조직의 행패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과 울분이 어떤지를 똑똑히 보고 절절이 느껴 왔다.”

  <조선일보> 11월21일치 사설의 맺음말입니다. ‘민노총·전교조의 말로와 국민과 나라의 고통’이란 사설 제목도 ‘장중’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주노총이 11월 22일, ‘민중 총궐기의 날’에 총파업을 벌이고 전교조도 연가투쟁을 벌인다는 게 전부입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 총파업이나 전교조 연가투쟁은 내부 호응도 별로”라며 조롱합니다. 이어 집행부를 겨냥합니다. “조선·동아일보나 교육부에 굴복해선 안 된다며 밀어 붙인다”고 ‘고발’합니다.

  같은 날 <동아일보>사설 제목은 “전교조 연가투쟁 법대로 처리해야”입니다. 이 신문이 전교조만 ‘특별대우’한 까닭은 마지막 단락에 나옵니다.

  “전교조가 12월 23일까지 벌이겠다는 ‘대중매체 바로 읽기’ 계기수업도 우려를 자아낸다. 좌편향 이념단체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전교조는 이런 수업을 할 자격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해 온 전교조가 이 수업을 통해 한미 FTA 문제를 다루겠다니 의도가 의심스럽다. 학생들에게 대중매체를 바로 보게 하겠다는 구실 또한 뜬금없다. 당국은 이 수업을 제지해야 한다.”

  도대체 이 나라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없는 신문들이 추측과 예단에 근거한 천박한 주장을 서슴지 않고 사설로 내보냅니다. 공화국의 여론을 끝없이 색깔과 저주의 틀로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저 가방끈 긴 윤똑똑이들의 기름진 ‘사설’보다 노동현장에서 기름 묻히며 지며리 일해 온 한 ‘철의 노동자’ 호소가 더 돋보이는 까닭은. 그 호소가 실린 <금속노동자>는 전국금속산업연맹이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부자신문들만큼 많이 발행되지 못하기에 여론 형성력은 약합니다. 하지만 오늘 미약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김종석 노동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부터 회고합니다. 1987년 그는 “전경 3천명과 2천명의 구사대와 싸우면서 죽기로 싸우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투석전을 하다가 전경과 구사대에 밀려 공장안으로 쫓겨 들어가 2박 3일의 공장점거농성투쟁을 할 때, 산소통 20개를 정문 앞에 쌓고 기름을 부었답니다. “돌에 맞아 흐르는 피를 한 손으로 막고 싸우는 동지를 보며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싸우다 죽자’라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과는 “구속자 하나 없이 우리 요구 100%를 따냈다”고 증언합니다.

  철의 노동자는 그로부터 10년 후를 회고합니다. 1996년 연말에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버스를 타고 국회에 들어가 노동법을 7분 만에 날치기 통과”한 만행입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되새기며 토로합니다.

  “도심을 투쟁의 물결로 채웠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 위대한 투쟁 다시 만들어 5%도 안 되는 가진 자들의 세상을 바꿔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철의 노동자는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또 10년 후. 2006년 노무현 정권은 민중의 삶을 파탄시키는 한미FTA협상을 추진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법안, 그리고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확산법, 로드맵의 칼날은 우리 정규직 노동자 가슴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비정규직으로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내치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도 노 정권과 한나라당, 언론이 한 목소리로 노동운동을 매도해온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절박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FTA와 비정규법, 로드맵 법안들이 현실화된다면 20년 전 산소통을 쌓았을 때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될 것이 너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조선일보>가 살천스레 조롱하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하지만 철의 노동자는 결코 싸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이틀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다부진 결기를 세웁니다.

  민주주의는 투쟁 없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 되레 낯선 이 허울뿐인 ‘공화국’에서, 한 철의 노동자 글을 읽으며, 기자로 살아가는 게 더없이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2020gil@hanmail.net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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