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시선 19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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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로부터 그미에게 매혹되어, 급기야는 그미의 시집까지 배달시켜 읽고 있다.

예전에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가득 빌려다 놓고는 아랫목에 배를 밀며 좁은 창틀에서 들어오는 사각형 네개짜리 햇살을 가득 받으며 읽어대둔 기억이 나는데, 요즘엔 택배로 내 자리까지 배달되어 오는 맛은 좀 꺼칠허다.

이 책은 오래 전 것이라, 내 손에 들어오는 데 오래 걸렸다.

김선우가 처음 쓴 시집이라 그런지, 요즘 쓴 글들에 비해서는 글들이 왠지 깃털에 양수도 덜 마른 새끼새들처럼 보이지만, 그미의 말 부려 쓰는 솜씨가 그대로 살아 있다.

서러워서 서른 살, 서른이 되는 해 이 책을 묶어 내면서 혼자서는 나름대로 서정에 겨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내 시집이 나온다면, 그 날 혼자서 이불 뒤집어 쓰고, 한참을 엉엉 흐느껴 울게 될지도 모르겠고.

서른이다. 공중에서얼어붙곤하던꽃들이부빙을이루며흘러갔다.나의혁명이몽환임을깨닫게되기까지,나의몽환을사랑하게되기까지오랜시간이걸렸다.그리고생각건대내가진실로사랑한것은모든생명이품고있는독기였으니,부디이시들이세상의소란에독이되기를...

이것은 그미의 후기다.

아, 태어나서 처음 쓴 시집에 후기를 쓰는 마음은 얼마나 떨릴 것인가?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마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 망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도질 않고(양변기 위에서, 11쪽)

그의 시를 하나 베끼는 것으로 우리말을 푸지게 잘도 쓰는 그미의 능력을 찬양한다.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세상의 순환이 내 몸을 타고 돈다. 칠판에 콕 찍힌 한 점처럼 작은 우리 별에서, 나는 먹고, 싸고, 자는 사소한 존재이며, 내 어머니의 몸을 타고 난 내 몸은 다시 이 땅으로 들어갈 것인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할 따름임을, 그렇게 순환하는 <circle of life>을 세포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 고마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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