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온 편지 - 2003 바그다드, 전쟁과 평화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에서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포화가 퍼붓는 동안 이라크에서 <인간 방패,  휴먼 쉴즈>로 활동했거나 <이라크 평화 위원회>로 참가했던 분들의 편지글들이 처연하게 펼쳐진다.

사진도 렌즈를 깨끗이 닦아 연출된 각도에서 찍은 것들이 아니라, 급히 뚜껑을 열고 철컥철컥 찍어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오랜 전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라크 사람들의 건조한 삶이 오히려 더 슬펐던 책.

이 책을 왜 그렇게 두꺼운 종이로 찍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누워서 보기엔 무거웠던 책.

이미 이라크는 함락되었지만, 아직도 자이툰 부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머무르고 있다.

난 연속극을 잘 안 보지만, 내가 좋아라하는 강유미가 나온다기에 '칠공주'를 보게 되었다.

설칠이로 설치는 이태란이 군인인데, 연애가 삐끗하자 돌연 <이라크>로 파병을 지원하겠다는 말을 했다.

순간 난 "저런 미친 년" 하면서 마구 욕을 퍼부었다. 아들 녀석과 아내가 나를 오히려 미친 놈처럼 쳐다봤지만, 욕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이라크가 연애질하다가 도망갈 정도로 안전한 데란 말인가?

그래서 지금 레바논에도 파병을 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에 주면 얼마나 준다고 <퍼주기> 논란을 벌이는 것들이,
미국에 그저 <바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국익이라고 하면 '자발적 복종'의 정신이 철컥, 생겨서 <자기 계급을 배반한 의식>이 발동되는 것일까?

그 국익에는 가진자들의 이익은 들어갈는지 몰라도, 한국 민중의 이익은 없다.
설칠이가 이라크를 가든 지옥을 가든, 연속극 보는 사람들은 알 바 아니지만, 80년부터 이란-이라크 전쟁을 7년인가 했고, 애비 놈 부시가 걸프 전때 '사막의 폭풍' 작전을 펼쳤고, 아들 놈 부시가 '충격과 공포' 작전을 펼치는 데가 이라크야.

<폭격의 역사>란 책을 보면, 유럽 놈들은 지들 사는 땅에는 그렇게 지랄같은 폭격을 하지 않는다지.

일본도 황인종이 사는 땅이어서 원자탄이 떨어졌던 거야.

그리고, 이라크도 아시아기 때문에, 황인종이 사니깐 무차별 폭격이 가능하단 거지.
동남아시아와 베트남, 북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야.

어떤 이는 편지로 징그러운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도 썼어. 파병할 경우...
그런데 벌써 파병은 끝났으니깐, 한국 국적을 포기했을려나?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을까?

남의 나라 전쟁에 이런 저런 이익을 앞세워서, 그리고 무뇌아같은 군인들을 돈 준다고 꼬드겨서 보낼 수 있는 쪽팔리는 나라에 사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나를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게, 왜소한 영혼으로 만드는 외로운 책이었다.

주인 잃은 손 하나엔 아직도 온갖 힘줄, 핏줄들이 길게 엉겨 있었지만, 쌍꺼풀 깊어 인상 좋아 보이는 이라크 아이들, 그 소년 소녀들의 티없는 웃음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끈적거림이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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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1-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고 나서 보니 이런 기사가 보인다. 성당에도 안 다니는 내가 성호를 그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분신자살로 이라크 전에 대항한 미국 예술가
[온라인비] “우리를 용서하시오” 홈페이지에 자살노트와 부고 남겨

▲ 길에서 시위 중인 말라치 리처. 그는 2003년 3월 20일 반전 시위 중 체포되기도 했다.

(서울=OnlineBee) 이승은 기자=미국 중간 선거가 치러지기 4일전인 11월 3일 아침. 시카고의 오하이오 스트리트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사망했다. 현장에 남겨진 쪽지에는 "살인하지 말지니라(Thou Shalt Not Kill)"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쓰여 있었다.

경찰은 닷새가 지나서야 그의 신원을 밝혀냈지만 ‘로컬 재즈와 즉흥 뮤직 커뮤니티(local jazz and improvised music community)’의 회원들은 그 사람이, 그들의 커뮤니티의 오랜 후원자인 ‘말라치 리쳐(Malachi Ritscher 52)’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음악가인 말라치 리처는 그 지역에서 실험 재즈 공연 기록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훌륭한 공연이나 예술작품, 사진들을 요약해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예술가였다. 특히 그는 반전 항쟁에 자주 참여했으며 지난 2003년 3월에는 길 모퉁이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가 경찰에 체포가 되기도 했다.

말라치 리처의 웹사이트(Chicago Rash Audio Potential www.savagesound.com)에는 분신 자살 현장에서 발견한 쪽지보다 훨씬 긴 글들이 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직접 써서 올린 장문의 자살 노트(www.savagesound.com/gallery99.htm)와 부고 (www.savagesound.com/gallery100.htm). 두 글 모두 그가 이라크 전쟁으로 깊은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이 자살의 동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명 선언(Mission Statement)’이라는 이름의 자살 노트를 통해 그는 “소위 우리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그자야말로 진짜 테러리스트이며 오사마 빈 라덴보다도 더 많은 죽음을 몰고 왔다”고 역설하면서 “우리가 당신들에게 한 짓을 사과한다. 우리 나라가 일으킨 폭력과 혼란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라는 말로 속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또한 “나라와 신의 이름으로 전쟁에 보내져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는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무너진다”면서 이라크 전쟁에 대해 느끼는 괴로움에 대해 호소했다. 글의 마지막에서 그는 “나는 이제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로 갑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오늘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라고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전했다.

3인칭의 시점으로 직접 써 내려간 자신의 부고에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의 본명은 마크 데이빗 리쳐(Mark David Ritscher)로 1954년 디킨슨에서 태어났다. 말라치라는 이름은 80년대 초반에 시카고로 온 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왕래를 끊고 사는 아들과 두 손자가 있고, 지인들은 많지만 친구는 거의 없다. 자신의 부고를 직접 쓰는 이유도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말라치 리처의 죽음은 ‘시카고 인디 미디어(chicago.indymedia.org)’ 등의 비주류 매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음악 전문 사이트, 각종 토론 사이트, 그리고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네티즌들은 이런 사건을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순교”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반대로 “단순한 정신 병자의 비극적 말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라치 리처의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알려진 지금까지, 그의 이름 앞에는 순교자, 테러리스트, 영웅, 정신병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왔다. 하지만 말라치는 자신을 ‘영적인 전사’로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다.

▶말라치 리처의 홈페이지의 게시된 두가지 글

Mission statement (http://www.savagesound.com/gallery99.htm)
Malachi Ritscher - out of time (www.savagesound.com/gallery100.htm).

dongurang@onlinebee.net 입력날짜 : 2006-11-16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