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이 말을 들었을 때_ 우선 정희진 선생님 강연회에서 자기 검열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떠올랐다. 자기 검열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선생님이 하시는 동안, 난 한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검열에 관한 질문을 한 그 분도 물론 그런 질문을 하신 까닭이 글을 쓰고 싶은데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_ 했는데 왜 자기 검열을 하는지 그걸 캐보면 결국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가, 이렇게까지 솔직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는가, 괴물 같다 바보 같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_ 그 측정을 먼저 하게 되니까 자기 검열이 더 강화되는 거 아닌가 싶다. 남 부러울 거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한 친구가 말한 적 있다. 나도 솔직하게 다 쓰고 싶어_ 그래서 그럼 네 본명을 숨기고 써, 그리 말했는데 난 아직 자기 검열 필드 안에 있어. 그래서 공적인 글만 쓸 수 있어, 그렇게 20년 이상 살았어. 그 말을 듣고 네가 쓰지 못한 글을 읽지 못할 생각에 가슴이 아프구나 과장되게 흑흑 흐느낀 척. 물론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려면 더구나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겸 누나 이 페르소나를 버리기란 어렵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아름다워서, 그 사람이 경제력이 있어서, 그 사람이 똑똑해서, 그 사람이 다정해서 등등 그 조건을 보고 마음이 혹 한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부자가 아니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똑똑하지 않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다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조건들. 최근 수년 동안 들은 말 중에 가장 상처가 된 말은 망한 집안 딸_ 이었다. 듣고서도 귀를 후벼팠다. 설마 설령 내가 망한 집안 딸이라고 해도 그걸 대놓고 내 앞에서 말하겠는가 싶어서. 말이 화살촉이 되어 심장 한가운데 와서 박혔다. 피가 질질 흘러 심장이 저릿거리는데 웃음만 나와서 웃었다.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차마 이게 내게 일어난 일인가 싶을 때 그때마다 나는 웃었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망한 집 딸이니 별 볼일 없다 이건가, 그래서 망한 집 딸이라 대놓고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건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뱉는다는 게 얼마나 모욕인지 모르는 건가, 대체 뇌가 있는 건가. 대체 심장이 있는 건가. 뇌와 심장이 있는데 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망한 집안 딸이니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화장실 안에서 꺼이꺼이 울면서도 우리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싶었다. 우리 엄마는 망한 집안 딸이 되고난 후에 백과사전을 팔러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낯선 집 대문 앞 초인종을 누르고 눌렀는데 나는 망한 집안 딸이 되고난 후에 그냥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네_ 싶어 눈물을 훔쳤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제 자기 검열 끝낸다_ 했다. 그러니까 글 쓸 때 자기 검열 말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검열. 밟았냐? 좋아, 꿈틀거려주지. 밟았니? 좋아, 꿈틀거려주지. 나도 모르게 반복하면서. 그때부터 서서히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건가. 어떤 조건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자기 검열 버리고 막 쓰면 어쩐지 손해일 거 같은데 득 되는 게 많다_ 하실 때도 고개 끄덕끄덕.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또라이 소리를 들었고 나이 먹고 관습에 젖는 시간이 축적이 되면 또라이 기질이 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엣센스라는 건 나이 먹고 시간 흐른다고 해서 감해지지 않더라는. 조건들이 모아지면서부터 난 쌍년이 될 거야, 그랬다. 우리 아빠가 살아계실 때 자주 한 이야기, 아빠가 자주 했던_ 최대 모욕적인 말은 쌍것들_ 이었는데 어렸을 때도 양반은 뭐 별 거 있나, 위선적인 것들 투성이면서_ 속으로 투덜거리곤 했는데 집에 돌아와 돌아가신 아빠 사진 앞에서 소리내어 말했다. 아빠, 난 이제 쌍년이 될 거야. 그러니 봐줘. 얼마나 내가 쌍년이 되어 잘 살아가는지. 자기 검열이란 단어를 들으면 그래서 나는 반사적으로 쌍것들_이 단어가 떠오른다. 우아하고 지적인 쌍년이 되어줄게. 자기 검열 따위 비웃으며. 이건 그나마 좋아하는 언니들 보고 다짐한듯. 엄마에게도 말했고 딸아이에게도 말했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쌍년 딸은 또 쌍년? 웃음으로 답하며 그 기개로 살아가렴, 아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지만_ 쌍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래도 꿈틀거리면서. 꿈틀거리면서 할 말이라도 속 시원하게 내뱉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 싶은 마음에 내 아가에게도 엄마는 이제 쌍년으로 살래_ 그런 거고. 자기 검열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여성의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줄게_ 이건 아니 에르노 언니 덕분이고. 정희진의 문장으로 또 마무리.

“억압받는 정체성과 이에 저항하는 정체성 사이에서,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사랑의 힘이든 인류애든, 그것은 못 건널 강이 아니다. ” 정희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2-07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억압받는 정체성과 이에 저항하는 정체성’….. 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에요, 수이님…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수이 2024-02-08 21:27   좋아요 0 | URL
스스로를 억압하는 게 가장 안 좋은 거 같아요. 제일 좋지 않은 방향. 하지만 뭐 이거야 다 각자 생각이니까. 하지만 정희진 샘 말이니까 또 한번 더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거려보는.

독서괭 2024-02-08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떤 써글 인간이 그딴 말을 한대요? ㅡㅡ^
자기검열은 저도 많이 하기 땜에 공감합니다~~

수이 2024-02-08 21:30   좋아요 0 | URL
아 누구인지는 차마 ㅋㅋㅋ 자기 검열 적당히 하세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독서괭님!
 


























 조끼 좀 벗어주세요.......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묘하게도 마리 루티의 [가치 있는 삶] 북커버랑 비슷하네, 라는 생각을 또 했다는. 2023년 그가 읽은 수많은 책들 중 최고의 책으로 꼽힌 [가치 있는 삶]을 읽다가 나는 이혼을 새삼 결심했는데 오늘 아침 딸아이와 아침을 먹으면서 아이가 한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게 내 눈에도 너무 뻔하게 보여서 언젠가는 이혼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라는. 어린아이들은 다 본다. 문장 하나가 무슨 인생을 바꾸게 만들겠냐고 그런 소리들 하지만 마리 루티를 읽다가 아 그래, 결국 나는 타이밍을 보는 거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해일처럼 닥치는 그 순간은 언제란 말인가, 라고 마리 루티 안에 써넣었다. 사랑했고 상처를 주고 받았고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깨졌고. 짧은 연애와 기나긴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수많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야기로 풀어낼 가능성이 있을지도. 다른 여자들도 어리석게 당하고 산다는데 내가 볼 때는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던데 나는 계속 당하면서 살아야 하나. 행복한 척, 즐거운 척, 지적인 척, 모든 것을 가진 현대 중산층 여성의 표본을 나 스스로 이미지화하면서. 그러다가 문득 정희진의 문장들을 읽다가 억압받고 당하고 슬퍼하고 도망치고 싶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도망친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해서 정말 행복해질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고 그렇게 사는 일이 진실로 가능할까_ 묻고 또 묻다가 이내 주저앉아버리고 마는 수많은 여성들의 지난 삶을 마주했다. 나도 그 안에 있었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나의 친구들도 그 안에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처럼 보였어_ 라고 지금 나와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말을 했다. 모든 것을 가진 우아한 중년 부인. 그 말을 듣고 나는 포복절도했다. 상처 없는 삶은 없다. 관계는 생성되고 이어지고 때때로 환멸로 끝나버리거나 매듭을 아름답게 맺는 걸로 끝날 수도 있다. 너와 나_ 라는 관계가 있으니 상처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싶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로 다짐했고  아마도 상처를 주고받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이성적으로는 한다. 물론 그러고 싶지 않지만.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껏 호르몬 작용은 3개월에서 6개월 갈 뿐인데 그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을 오롯이 쓴다는 건 너무 손해보는 장사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내 가치관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또한 깨달았다.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임경선 편이다. 임경선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이 언니가 하는 사랑을 과거에 했네. 지금도 하고 있고_ 깨달았다.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몸을 트는 일조차 귀찮아 한다. 그걸 옳다 나쁘다 보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이들이 주변에 하도 많아서 기이하게 여기기는 했다. 귀찮고 번거로워 사랑 같은 거 하지 않는다고 하는 젊은 MZ 세대부터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을 하겠다고 모임 같은 데 나가냐고 독거 노인 생활이 좋다고 하는 X세대 친구들까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지 않나, 사랑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물고빨고 서로 미친듯 좋아 어쩔 줄 몰라 해도 관계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진다. 그건 필연이다. 비단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이건 내가 한 말 아니라 내 베프가 한 말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관계라면 또 마주하고 얼굴을 보면서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약도 발라주고 반창고도 붙여주고 그래도 다시 잘 지내보자_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든다면 그들은 또 봄에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이 마음을 거둬들인다면 이제 쟤랑은 딱 겨울까지다_ 내년 봄부터는 보지 않겠다_ 한다면 그 관계는 끝난다. 상처는 마음을 닫는 이도 그 마음 닫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에게도 생기는 거고. 그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밖에서 그 관계를 응시하는 이들에게도 상처가 된다. 기껏 그 정도로 사랑을 주고 그 정도로 상처를 주려고 애쓴 거냐_ 라고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만다. 그들은 겨울에 모두 헤어지고 만다. 때마침 매서운 겨울 바람은 곧 끝난다. 나는 봄을 말하고 싶다. 친구의 유투브를 보는 동안에도 그랬다. 잘 견뎠다. 겨울 잘 보내고 이제 봄이다. 하고싶은 말과 읽었던 문장들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평화롭게 겨울을 잘 보냈다, 말했다. 상처들을 직시하는 삶. 정희진의 문장들 읽으면서 느꼈고 마리 루티를 읽으면서도 느꼈다. 인간의 언어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상처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니 그 상처들을 직시하고 그 상처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입들도 제각각이다. 하여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내 상처와_ 그 기나긴 겨울날들_ 다른 이들은 모두 봄이라 여겼던_ 그렇게 사람들을 모두 착각하게 만들었던_ 내 이중성에 대해서도_ 그 상처를 두 손가락으로 벌려 다시 한번 헤집어보고 싶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입춘을 맞이해서 폭설이 내렸다. 한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어쩐지 봄 같다 느꼈다.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해서 그 이전까지 상처들을 한없이 받았다고 해서 다시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다 다시는 내 인생에 봄 같은 건 오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편보다는 방향을 틀어 몸을 움직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두려움과 두려움이 사방팔방으로 한가득한 건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정희진의 문장 하나 덧붙이는 걸로 마무리. 


"관계의 향방이 사랑을 구속하지 않게 하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2-06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7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2-06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앍.... 조끼... (지금도 입고 있다...)
앞으로는 분홍색 옷은 입지않도록 하겠습니다...!!!
발전하는 공쟝쟝되겠습니다!! ㅋㅋㅋㅋ

수이 2024-02-07 17:39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잘 받는 색깔이 있을 거예요, 쟝님. 흥하십시오. 응원합니다.
 




 친구가 책 사줬다. 자랑질이다. 자랑질하는 맛에 올리는 것도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온전하게 100퍼센트 완벽한 인생도 없고 100퍼센트 행복한 삶도 없지만 아 온전하게 즐겁고 온전하게 행복하고 그런 찰나들이 존재한다. 막 투정 부렸더니 사줄게 사줄게 사줄게, 이런 친구의 반응을 볼 때도 즐겁다. 진짜 사줘 이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투정부리는 순간은 좋다. 그래서 친구가 책을 사줬습니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정오가 될 무렵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 와서 하는 말이 자냐? 그래서 새벽 다섯시 반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바람에 이야기를 했더니 이야 갱년기 제대로 시작이구만 이라고 해서 확 엎어버릴까 했으나 감기 걸려 콜록거리는 동생에게 차마 그럴 수 없어 흐흐흐흐 웃기만 했다. 동생이랑 통화하고 라떼 마시고 초콜릿 먹었더니 잠이 완전히 깨서 이제 운동하러 나가야겠다. 매니악은 솔직히 책띠지만 봐도 엄청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친구가 읽어! 했으니까 읽어야겠다. 아침에 친구가 오슬오슬 좀 춥더라 해서 춥다니까 그럼 내가 웃겨줘야지, 웃으면 체온이 올라가니까, 싶어 좀 웃겨줬다. 제대로 웃은듯 싶어 잘 웃겨줬네, 좀 쪽팔리지만, 했다. 너 엄청 읽어야겠다_ 친구가 그래서 뭐 이 상태로라면 대학원에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킁, 물론 대학원은 그냥 하는 소리다. 영어만 좀 잘했으면 아이 갈 텐데, 싶기도 하다. 


 지난 주에 정희진 선생님 강연회 다녀오고난 후에 느낀 건데 인생 짧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 사는데 그래도 좀 진실되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선생님 목소리 듣는 동안 했더란다. 선생님이 웃으면 나도 웃고 선생님이 막 분노하면 나도 막 분노하고 그런 것들을 한 공간에서 느끼면서 나 선생님 좋아하네, 내 친구들만큼은 아니지만, 느꼈다. 애인이랑 통화하면서 내가 선생님 좋아하더라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니까 그럼 가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그랬어, 라고 애인이 대꾸해서 하지만 내가 선생님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하려면 선생님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그래야지 나는 선생님 책 제대로 읽지도 않았는걸 했더니 꼭 알고 사랑해야 하나 사랑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더 알고 싶고 그러는 거지, 라고 애인이 이야기해서 그래서 다음에 강의 들을 기회 있으면 그때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얼마나 요란법석하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려나, 선생님이 부담스러우시겠다 해서 흐흐흐 웃었다. 언제나 사랑 고백은 요란법석하게 한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걸 상대방도 알지 않겠는가. 나는 이 시대에 나무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_ 그래서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는 어떤 문장을 읽었다.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당신이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을 그런 영원한 사랑을 줄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사랑과 관계에 대한 맹목성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 누가 그렇게 변하지 않을 마음을 쉬이 주겠는가, 라고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냥 관뒀다. 그냥 나나 잘 하자, 이런 마음이 들어서. 그가 나무와 같이 듬직하게 계속 변함없이 다정하게 나를 사랑해준다면 좋겠지만 그 또한 인간의 마음이니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거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봤을 때 그 변화의 폭은 더 넓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데 요따만큼 사랑해야지 한다고 하면 그 요따만한 사랑이 얼마나 뭘 그렇게 바뀌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따만큼 이따만큼 사랑해야지 한다. 내가 얼만큼 보고 싶은지 말해봐_ 나는 그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럼 그는 벼룩의 간만큼 보고싶지, 벼룩의 간만큼 사랑하지, 라고 대꾸한다. 그럼 나도 모르게 이씨, 하고 욕설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그 다음 나오는 말이 벼룩의 간만큼 보고 싶고 벼룩의 간만큼 사랑하는데 잠도 잘 못 자지, 밥도 잘 못 먹지, 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흐흐흐흐 웃는다. 측량하고 규격을 정해서 꼭 사랑을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어차피 딱 우주의 먼지 그 정도 존재고 그만큼 살아가는데. 


 늦은 밤 버스 타고 집 앞에서 내려 걷는 동안 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선생님 많이 좋아했네, 내가. 사실은 선생님 보면 샘, 글쎄, 제 꿈에 이틀 동안 연이어 나타나셨더라구요. 그래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몰라요,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여러모로 바빠 보이셨고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해서 뭐 어쩌라고 이런 선생님 반응이 나올지도 몰라서 자제했다. 근데 뭐 하러 자제했나 그런 생각도 들긴 들었다. 선생님이 웃으시니까 저도 웃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좀 선생님 책 읽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쏘쿨하게 이야기하면서 말야. 벼룩의 간만큼 선생님을 좋아해요, 그만큼 사랑해요, 그래서 좀 읽어보려구요, 이렇게 쏘쿨하게 말야. 그날 막 투정부렸더니 친구가 사서 보낸 책들을 펼쳐놓고 뿌듯해한다. 내 친구가 책 사서 보냈다, 하고 자랑질해야지 알라딘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2-05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이님 글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인데요. 진짜 인생은 짧은 거 같아요. 아무 것도 아끼지 말고 (원래 잘 안 아끼는 편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지금, 현재만 생각하고 살아야겠어요.

사랑에 대해서라면 말이에요. 전 인간 종에 대한 기대가 낮은 사람이고,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크게 신뢰하지 않는 목석 같은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갈구하는 게 그런 사랑인 거 같아요. 변하지 않는 사랑, 결국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랑.... 그니깐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사람들은 그런 사랑 받기를 원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수이님처럼 내가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 저한테도 사랑 좀 ... 좀 주세요!

수이 2024-02-07 17:44   좋아요 1 | URL
인생이 짧다는 걸 알게 되는 건 그때 강연회에서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이미 먼저 간 사람들,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들, 그들이 알려주는 거 같아요. 저는 사랑에 있어서는 좀 자린고비 같은 타입이라고 여겼어요 저 스스로를. 그러니까 득이 될 만한 그런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예를 들어 나보다 더 똑똑하거나 나보다 더 다정하거나 나보다 더 능력이 있거나 그런 조건들. 물론 이 선조건들이 있어서 호감이 있고 또 그 이후 관계가 생성되고 그런 거지만 말이죠. 자린고비나 목석이나 어쩐지 비슷해 보이는걸요 ㅋㅋㅋㅋ

단발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인간이라면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랑을 원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본능 아닐까 싶은. 그래서 제가 이제까지 그런 사랑을 주고받았는가 따지고 보면 그건 엄마가 저에게 주시는 사랑이나 제가 딸아이에게 주는 사랑 말고는 없는듯 싶어요.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는 그 경계를 넘어서서 그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듯 해요. 바운더리를 넘어서고 고유하고 고유해서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한없는 사랑을 원하는 거 같아요.
 

오늘 밑줄

에로스, 투사, 마법 같은 타자

그리스인들이 전하는 에로스는 신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으며 생명력의 원시적 표현 속에는 언제나 등장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매 순간 변모하는 가장 젊은 존재이기도 하다. 에로스라는 이름은 욕망desire을 뜻하며, 욕망이라는 단어는 ‘별의, 별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de sidus에서 왔다. 그러므로 에로스에는 유한한 존재든 불멸의존재든 타자를 향한 갈망이 들어 있다. 목표지향적이며,
마치 길잡이 별처럼 타인을 향한다.
헤시오도스Hesiodos에 따르면, 에로스는 카오스Chaos*로부터 나왔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던 원시의 상태에서 형태를 이루고 서로 이어지며 생명체를 형성하려는 에너지가 솟아난 것이다. 하지만 신화에 따라서는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라면 둘 다 욕망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라틴어에서 에로스가 아모르Amor와 큐피드Cupid로 문화적 변형을 거쳤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 P57

투사가 걷히면서 두 사람 모두 권력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실제로 권력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권력은 근본적으로 에너지의 교환 또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힘을 콤플렉스가 뺏어갈 때, 또는 힘을 사용하는 대가로 타자를 희생해야 할 때 문제가 된다. 권력의 문제를 일으키는 은밀한 역동은 언제나 공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자신의 공포가 어디에 있으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선뜻 나서서 깨달으려 하지 않으며, 공포는 어디 - P127

에나 있음을 인정하고 자기방어 없이 이를 경험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포를 자연스럽게 무의식 속에 숨겨두는쪽을 택한다. 따라서 우리의 감수성을 뒤덮고도 모자라 타자에게까지 전가되는 에너지의 흐름은 공포에 기반하지만, 정작 그 공포는 수많은 방식으로 교묘하게 치환되어 숨어 있는 상태다.
버림받는다는 공포, 억눌린다는 공포, 그리고 무의미할지 모른다는 공포. 이러한 공포는 모두 존재론적이며 보편적이다. 이런 공포를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공포들에게 말하자면 자신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공포를 막으려는 우리의 정교한 자기방어 시스템, 그리고 우리의 실제 성격을 구성하는 촘촘한 반사신경은 늘 다른 사람의 온전함에 기대어 작동한다. 우리 자신의 모습대로, 불가피하게 기벽과 취약점까지 다 포함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자에게 해가 된다.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애정관계에서 사용하는 전략이 우리 내면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 P128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선택지가 ‘투쟁 또는 도피 fight or flight" 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방법은 타자에 대한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며, 그 정도는 우리가 타자에게 느끼는 공포와 비례한다. 상대를 통제하거나 학대하는사람은 실은 자신이 상대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 자신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대상을 직면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 중 16퍼센트가 반려자를 심하게 학대한다고 한다. 경찰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그 비율이 40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경찰은 남성중심적이며 무력 사용을 위한 복장을 갖춰야 하는 등의 이유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특히 매력적인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연구에서는 학대를 저지르는 사람에게심리치료를 실시했더니, 치료 대상자들이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더 폭력적이 되는 역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불량배들 역시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과 맞닥뜨리는 걸 겁낸다.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만 심리치료에서 긍정적 예후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학대를 저지르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심리치료를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선뜻 나서지 않는 사람은 심리치료 예후가 절대 좋을 리 - P130

없다. 반려자를 통제하는 사람의 경우 고쳐질 확률이 가장 낮은데, 타자가 주는 공포에 대한 자기방어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수동공격성passive-aggression은 그 자체로 연구의 영역인데,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타자가 가진 권력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타자가 권력을 행사하지 않도록은밀하게 행동해야 한다. 수동공격적 성격은 우물쭈물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보인다. 어떤 일을 하거나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만 보일 뿐 절대 실천하지 않거나, 누군가 자기 말에 반박하면 중간에 말을 끊으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고 되묻는다. "농담도 못해?"
타자가 주는 공포에 대한 세 번째 방어전략은 회피나 고립, 또는 물리적으로 존재해도 감정적으로 숨기는것이다. 이 전략은 널리 퍼져 있는데, 본인은 내향적이며 티를 안 내는 성격이라거나 지금은 다른 데 집중하고 있다는 식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서 공공연하게 깨닫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다. 타자에게 마음을 열고 나누려 하지 않는다거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거나 친밀감을 거부하는 일은 일반적인 회피의 형태이며, 이런 유형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 자신이 약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 있다. - P131

사랑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사례는 공포를 이겨낼 때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에 사랑은 없다. 공포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공포에서 사랑으로 옮겨가는 일은 만만찮은 도전이다. 자신의 공포를 마주하며, 애매함 및 양가감정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타자를 사랑할 힘을 얻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커플은 이미 서로 상처를 엄청나게 입은 상태다. 서로를 덮고 있던 투사는 이미 닳아 없어졌다. 낙원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이 표면으로 드러났지만, 두 사람은 몽상에서 깨어나 얻은 환멸과 분노가 뒤섞인 채 사랑의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정당하고 옳다고 믿으며, 공정한 제삼자가 그 사실을 확인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로를 공격할 때마다 치료사가 마치 권투 심판처럼 각자의 공격 횟수를 하나하나 세어가며 점수를 매겨 승자의 - P138

손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상대가 자기한테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끼면서 괴로움과 증오가 흘러넘친다. 두 사람 다 대체로 무의식에 지배되는 상태라서 상대를 책망하기보다 자신을 분석하도록 초점을 옮기기가 힘들다.
결국 우리는 연애관계의 기본 원리 몇 가지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 변화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한쪽은 이 과제를 받아들이나 다른 쪽은 여전히 막혀 있을 수도 있다. 이때는 과제를 받아들인 쪽이 독립성을 얻어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 언약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 수준을 넘어 아예 관계 그 자체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 - P139

실제 성격operative personality은 자기와 타자에 관한 행동수칙, 그리고 이상과 실제의 괴리를 오가는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한 반사전략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반사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불안을 관리하는 일이며, 애정관계라는 맥락에서 불안은 타자가 우리 내면의 경계를 넘어오거나 우리를 버릴 때 우리가 받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론적 스트레스를 말한다. 그러므로 애정관계에 정말로 해가 되는 건 우리가 살면서 피할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상처가 아니다. 우리가 타자에게 강요하는 개인의 이력을 통해 형성된 행동수칙과 전략이 애정관계를 해치는 범인이다. 우리는 타자를 사랑하고 타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력을 타자에게 전달한다. 안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이력이 온통 고통의 대서사시는 아니며 우리가 타인과 절대 결속할 수 없 - P144

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애정관계에서 좋은 부분은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만, 나쁜 부분이 꼭 관계를 오염시킨다는 얘기다.
게다가 타자를 향한 갈망은 우리의 본성이다. 우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원초적 타자와의 분리를 경험하기 때문에 타자와 다시 이어지기를 평생 갈망한다. 우리 시대에는 갈망이 문화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숨어버린 신을 갈망하며, 이어짐을 갈망하며, 고쳐지길 갈망한다. 우리는 모두 중독 상태이며, 화학물질이나 돈이나 권력 따위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법 같은 동반자‘를 통해 결합을 추구한다. 또한 우리는 양육을, 피난처를 완벽을 갈망한다.
인간 역사에서 언제나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우리 문화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심하다. 가족과의 유대가 줄어들었고, 아주 예전에 신화를 보존함으로써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던 부족 관습과의 연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들 연결 조직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면서 우리는 자기애의 좁다란 통로에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져 자기에만 몰두한 채 타인을 통해 구원받기를 갈망하면서 말이다. - P145

커플이 권력의 문제를 겪으면 상대를 비판하기가 아주 쉽다. 갑자기 성격의 단점이, 짜증나는 행동거지가 눈에 띈다. ‘마법 같은 동반자‘라는 해묵은 욕구가 솟아나는데 리비도libido*가 다른 쪽을 향하기 때문에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바람을 피우기도 쉬워진다. 이런 원초적 욕구의대상을 발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계약한 ‘낙원으로 돌아가기‘ 계획에 반려자가 도움이 된다면 실제로 바람을 피우려는 욕구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반려자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탓에 우리는 이 해묵은 욕구를 다른 타자에게 투사하여 에너지와 사라진 희망을 되찾으려 한다. 바람피우는 사람 중에 결혼생활을 끝내거나 현재 반려자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히려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이는 해묵은 무의식 속의 ‘에덴 프로 - P152

젝트‘가 다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보기에충분하다.
따라서 권력의 문제는 모든 애정관계에 암시적으로 존재하며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 문제가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존재론적 상처가 그만큼 보편적 문제라는 얘기다. 우리는 자기 욕구에 고분고분하게따라줄 타자로 눈을 돌리며, 좌절된 욕구는 이를 부채질한다. 폭력적인 상대는 의식적인 자기성찰이 거의 불가능하며, 상대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하게 공포를 느낀다. 상대가 이전에 그랬듯 또다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삼켜버린 다음에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폭력은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상대를 학대한다면, 이는 자기 정신 내부를 치유하기 위해 원초적 상처를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상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대 역시 우리와 같은 개인임을 부정하고 상대의 영혼에 침범하여 우리로부터 밀어내는 것이다. 모든 커플은 결국 권력을 향해 비틀대며 이끌려간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회복하여 상처를 치료할 뿐 아니라 부담을 줄이고 현실성을 더함으로써 관계를 더 만족스럽게 재건하는 이들도 있다. - P153

심리학자 프레드 한 Fred Hahn은 이를 강력하고도 유려하게 설명한다.

심리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지성화intellectualization와 합리화rationalization 같은 저항의 반동을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향함으로써 온전한 깨달음이 주는 고통과 공포를 발견하는 동시에, 자신이 거기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완전히 부조리하고 예측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마술 같은 수준의 궁극적 자기방어가 존재하지 않는 한 때로는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아픔을 겪어야 함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환상의 대상뿐만 아니라 환상과 망상 자체를 두고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나면 망상 없이 비교적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간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덧없고도 소중한 경험임을, 우리가 환상을 갖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기 삶의 의미를 직접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대와 요구가 들어섰던 자리를 희 - P157

망으로 채워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동성의 자리에 적극성이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넓히고 성장시키는 쪽으로 희망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슬픔도 기쁨도 더 풍부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어릴 적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통하는 문은 이미 닫혀버렸으며 불칼을 든 천사들이 그 문을 막고 있음을, 우리와 이어져 있던 어머니는 영원히, 영원히 우리에게서 떠났음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이 말로 거의 모든 것이 요약된다. 프레드 한이 마지막 문장에서 말하는 "어머니" 는 어머니 콤플렉스, 곧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채 안정과 원조, 안식처를 갈망하는 에너지를 가리킨다. 에덴동산에서처럼 의식이 자리잡기 전 타자와 한 몸으로 합쳐 있던 상태는 영원히 우리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다. 게다가 이런 용기를 부르는 요청에 답하는 일은 반려자를 가장 크게 돕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현 불가능한 에덴 프로젝트에서 놓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룰 수 있 - P158

는 최상의 모습을 반려자와 나눈다는 건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여정을 계속하는 동안 반려자에게 자기 삶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는 일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일지 모른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사랑이라 부르는 이질적 현실에는 별개의 명칭이 있어야 하지만, 이 말은 대중의 관념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서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사랑은 ‘영웅적 사랑‘이다.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고 퇴행적이지 않으며 변화의 힘을 가진 사랑이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이 이 정도 수준까지 다다르기는 매우 힘들긴 하지만, 일단 이를 성취하고 나면 우리의 여정에는 깊이와 밀도가 생긴다. - P159

융 심리학에서는 흔히 말하는 ‘중년의 위기 midlife crisis‘를 기점으로 그전을 최초 성인기, 그 후를 2차 성인기로 가른다. 개인차가 있으나 보통은 12세 전후인 사춘기에서 40세 정도의 시기를 가리킨다 - 옮긴이. -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월에는 좀 체계적으로 읽을까 싶지만 그건 2월이 되어봐야 아는 일. 

한 것도 없는데 1월이 다 흘렀다. 2월에는 정신 좀 단단히 붙들어매고 살아볼까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2-01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눈에 띄는 건, 저 책이네욬ㅋㅋ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2-01 06:50   좋아요 1 | URL
🤪💋🥰♥️🌊🥹😝

은오 2024-02-01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머리....머리 식힐 때 읽을 책은 어딨죠 수이님?? 😱 저놈들 읽다가 전 머리 터질 것 같은데....

수이 2024-02-02 21:41   좋아요 2 | URL
소설이랑 시는 따로 있죠 ㅋㅋㅋㅋㅋ 은오님 귀엽습니다 알라디너들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성장하시는 모습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