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책 사줬다. 자랑질이다. 자랑질하는 맛에 올리는 것도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온전하게 100퍼센트 완벽한 인생도 없고 100퍼센트 행복한 삶도 없지만 아 온전하게 즐겁고 온전하게 행복하고 그런 찰나들이 존재한다. 막 투정 부렸더니 사줄게 사줄게 사줄게, 이런 친구의 반응을 볼 때도 즐겁다. 진짜 사줘 이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투정부리는 순간은 좋다. 그래서 친구가 책을 사줬습니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정오가 될 무렵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 와서 하는 말이 자냐? 그래서 새벽 다섯시 반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바람에 이야기를 했더니 이야 갱년기 제대로 시작이구만 이라고 해서 확 엎어버릴까 했으나 감기 걸려 콜록거리는 동생에게 차마 그럴 수 없어 흐흐흐흐 웃기만 했다. 동생이랑 통화하고 라떼 마시고 초콜릿 먹었더니 잠이 완전히 깨서 이제 운동하러 나가야겠다. 매니악은 솔직히 책띠지만 봐도 엄청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친구가 읽어! 했으니까 읽어야겠다. 아침에 친구가 오슬오슬 좀 춥더라 해서 춥다니까 그럼 내가 웃겨줘야지, 웃으면 체온이 올라가니까, 싶어 좀 웃겨줬다. 제대로 웃은듯 싶어 잘 웃겨줬네, 좀 쪽팔리지만, 했다. 너 엄청 읽어야겠다_ 친구가 그래서 뭐 이 상태로라면 대학원에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킁, 물론 대학원은 그냥 하는 소리다. 영어만 좀 잘했으면 아이 갈 텐데, 싶기도 하다. 


 지난 주에 정희진 선생님 강연회 다녀오고난 후에 느낀 건데 인생 짧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 사는데 그래도 좀 진실되게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선생님 목소리 듣는 동안 했더란다. 선생님이 웃으면 나도 웃고 선생님이 막 분노하면 나도 막 분노하고 그런 것들을 한 공간에서 느끼면서 나 선생님 좋아하네, 내 친구들만큼은 아니지만, 느꼈다. 애인이랑 통화하면서 내가 선생님 좋아하더라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니까 그럼 가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그랬어, 라고 애인이 대꾸해서 하지만 내가 선생님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하려면 선생님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그래야지 나는 선생님 책 제대로 읽지도 않았는걸 했더니 꼭 알고 사랑해야 하나 사랑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더 알고 싶고 그러는 거지, 라고 애인이 이야기해서 그래서 다음에 강의 들을 기회 있으면 그때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얼마나 요란법석하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려나, 선생님이 부담스러우시겠다 해서 흐흐흐 웃었다. 언제나 사랑 고백은 요란법석하게 한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걸 상대방도 알지 않겠는가. 나는 이 시대에 나무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_ 그래서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는 어떤 문장을 읽었다. 고개를 갸우뚱 움직였다. 당신이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을 그런 영원한 사랑을 줄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사랑과 관계에 대한 맹목성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 누가 그렇게 변하지 않을 마음을 쉬이 주겠는가, 라고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냥 관뒀다. 그냥 나나 잘 하자, 이런 마음이 들어서. 그가 나무와 같이 듬직하게 계속 변함없이 다정하게 나를 사랑해준다면 좋겠지만 그 또한 인간의 마음이니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거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봤을 때 그 변화의 폭은 더 넓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데 요따만큼 사랑해야지 한다고 하면 그 요따만한 사랑이 얼마나 뭘 그렇게 바뀌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따만큼 이따만큼 사랑해야지 한다. 내가 얼만큼 보고 싶은지 말해봐_ 나는 그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럼 그는 벼룩의 간만큼 보고싶지, 벼룩의 간만큼 사랑하지, 라고 대꾸한다. 그럼 나도 모르게 이씨, 하고 욕설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그 다음 나오는 말이 벼룩의 간만큼 보고 싶고 벼룩의 간만큼 사랑하는데 잠도 잘 못 자지, 밥도 잘 못 먹지, 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흐흐흐흐 웃는다. 측량하고 규격을 정해서 꼭 사랑을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어차피 딱 우주의 먼지 그 정도 존재고 그만큼 살아가는데. 


 늦은 밤 버스 타고 집 앞에서 내려 걷는 동안 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선생님 많이 좋아했네, 내가. 사실은 선생님 보면 샘, 글쎄, 제 꿈에 이틀 동안 연이어 나타나셨더라구요. 그래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몰라요,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여러모로 바빠 보이셨고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해서 뭐 어쩌라고 이런 선생님 반응이 나올지도 몰라서 자제했다. 근데 뭐 하러 자제했나 그런 생각도 들긴 들었다. 선생님이 웃으시니까 저도 웃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좀 선생님 책 읽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쏘쿨하게 이야기하면서 말야. 벼룩의 간만큼 선생님을 좋아해요, 그만큼 사랑해요, 그래서 좀 읽어보려구요, 이렇게 쏘쿨하게 말야. 그날 막 투정부렸더니 친구가 사서 보낸 책들을 펼쳐놓고 뿌듯해한다. 내 친구가 책 사서 보냈다, 하고 자랑질해야지 알라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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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2-05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이님 글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인데요. 진짜 인생은 짧은 거 같아요. 아무 것도 아끼지 말고 (원래 잘 안 아끼는 편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지금, 현재만 생각하고 살아야겠어요.

사랑에 대해서라면 말이에요. 전 인간 종에 대한 기대가 낮은 사람이고,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크게 신뢰하지 않는 목석 같은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갈구하는 게 그런 사랑인 거 같아요. 변하지 않는 사랑, 결국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랑.... 그니깐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사람들은 그런 사랑 받기를 원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수이님처럼 내가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 저한테도 사랑 좀 ... 좀 주세요!

수이 2024-02-07 17:44   좋아요 1 | URL
인생이 짧다는 걸 알게 되는 건 그때 강연회에서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이미 먼저 간 사람들,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들, 그들이 알려주는 거 같아요. 저는 사랑에 있어서는 좀 자린고비 같은 타입이라고 여겼어요 저 스스로를. 그러니까 득이 될 만한 그런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예를 들어 나보다 더 똑똑하거나 나보다 더 다정하거나 나보다 더 능력이 있거나 그런 조건들. 물론 이 선조건들이 있어서 호감이 있고 또 그 이후 관계가 생성되고 그런 거지만 말이죠. 자린고비나 목석이나 어쩐지 비슷해 보이는걸요 ㅋㅋㅋㅋ

단발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인간이라면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랑을 원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본능 아닐까 싶은. 그래서 제가 이제까지 그런 사랑을 주고받았는가 따지고 보면 그건 엄마가 저에게 주시는 사랑이나 제가 딸아이에게 주는 사랑 말고는 없는듯 싶어요.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는 그 경계를 넘어서서 그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듯 해요. 바운더리를 넘어서고 고유하고 고유해서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한없는 사랑을 원하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