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이 말을 들었을 때_ 우선 정희진 선생님 강연회에서 자기 검열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떠올랐다. 자기 검열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선생님이 하시는 동안, 난 한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검열에 관한 질문을 한 그 분도 물론 그런 질문을 하신 까닭이 글을 쓰고 싶은데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_ 했는데 왜 자기 검열을 하는지 그걸 캐보면 결국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가, 이렇게까지 솔직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는가, 괴물 같다 바보 같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_ 그 측정을 먼저 하게 되니까 자기 검열이 더 강화되는 거 아닌가 싶다. 남 부러울 거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한 친구가 말한 적 있다. 나도 솔직하게 다 쓰고 싶어_ 그래서 그럼 네 본명을 숨기고 써, 그리 말했는데 난 아직 자기 검열 필드 안에 있어. 그래서 공적인 글만 쓸 수 있어, 그렇게 20년 이상 살았어. 그 말을 듣고 네가 쓰지 못한 글을 읽지 못할 생각에 가슴이 아프구나 과장되게 흑흑 흐느낀 척. 물론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려면 더구나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겸 누나 이 페르소나를 버리기란 어렵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아름다워서, 그 사람이 경제력이 있어서, 그 사람이 똑똑해서, 그 사람이 다정해서 등등 그 조건을 보고 마음이 혹 한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부자가 아니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똑똑하지 않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다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조건들. 최근 수년 동안 들은 말 중에 가장 상처가 된 말은 망한 집안 딸_ 이었다. 듣고서도 귀를 후벼팠다. 설마 설령 내가 망한 집안 딸이라고 해도 그걸 대놓고 내 앞에서 말하겠는가 싶어서. 말이 화살촉이 되어 심장 한가운데 와서 박혔다. 피가 질질 흘러 심장이 저릿거리는데 웃음만 나와서 웃었다.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차마 이게 내게 일어난 일인가 싶을 때 그때마다 나는 웃었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망한 집 딸이니 별 볼일 없다 이건가, 그래서 망한 집 딸이라 대놓고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건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뱉는다는 게 얼마나 모욕인지 모르는 건가, 대체 뇌가 있는 건가. 대체 심장이 있는 건가. 뇌와 심장이 있는데 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망한 집안 딸이니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화장실 안에서 꺼이꺼이 울면서도 우리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싶었다. 우리 엄마는 망한 집안 딸이 되고난 후에 백과사전을 팔러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낯선 집 대문 앞 초인종을 누르고 눌렀는데 나는 망한 집안 딸이 되고난 후에 그냥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네_ 싶어 눈물을 훔쳤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제 자기 검열 끝낸다_ 했다. 그러니까 글 쓸 때 자기 검열 말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검열. 밟았냐? 좋아, 꿈틀거려주지. 밟았니? 좋아, 꿈틀거려주지. 나도 모르게 반복하면서. 그때부터 서서히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건가. 어떤 조건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자기 검열 버리고 막 쓰면 어쩐지 손해일 거 같은데 득 되는 게 많다_ 하실 때도 고개 끄덕끄덕.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또라이 소리를 들었고 나이 먹고 관습에 젖는 시간이 축적이 되면 또라이 기질이 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엣센스라는 건 나이 먹고 시간 흐른다고 해서 감해지지 않더라는. 조건들이 모아지면서부터 난 쌍년이 될 거야, 그랬다. 우리 아빠가 살아계실 때 자주 한 이야기, 아빠가 자주 했던_ 최대 모욕적인 말은 쌍것들_ 이었는데 어렸을 때도 양반은 뭐 별 거 있나, 위선적인 것들 투성이면서_ 속으로 투덜거리곤 했는데 집에 돌아와 돌아가신 아빠 사진 앞에서 소리내어 말했다. 아빠, 난 이제 쌍년이 될 거야. 그러니 봐줘. 얼마나 내가 쌍년이 되어 잘 살아가는지. 자기 검열이란 단어를 들으면 그래서 나는 반사적으로 쌍것들_이 단어가 떠오른다. 우아하고 지적인 쌍년이 되어줄게. 자기 검열 따위 비웃으며. 이건 그나마 좋아하는 언니들 보고 다짐한듯. 엄마에게도 말했고 딸아이에게도 말했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쌍년 딸은 또 쌍년? 웃음으로 답하며 그 기개로 살아가렴, 아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지만_ 쌍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래도 꿈틀거리면서. 꿈틀거리면서 할 말이라도 속 시원하게 내뱉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 싶은 마음에 내 아가에게도 엄마는 이제 쌍년으로 살래_ 그런 거고. 자기 검열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여성의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줄게_ 이건 아니 에르노 언니 덕분이고. 정희진의 문장으로 또 마무리.

“억압받는 정체성과 이에 저항하는 정체성 사이에서,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사랑의 힘이든 인류애든, 그것은 못 건널 강이 아니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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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2-07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억압받는 정체성과 이에 저항하는 정체성’….. 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에요, 수이님…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수이 2024-02-08 21:27   좋아요 0 | URL
스스로를 억압하는 게 가장 안 좋은 거 같아요. 제일 좋지 않은 방향. 하지만 뭐 이거야 다 각자 생각이니까. 하지만 정희진 샘 말이니까 또 한번 더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거려보는.

독서괭 2024-02-08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떤 써글 인간이 그딴 말을 한대요? ㅡㅡ^
자기검열은 저도 많이 하기 땜에 공감합니다~~

수이 2024-02-08 21:30   좋아요 0 | URL
아 누구인지는 차마 ㅋㅋㅋ 자기 검열 적당히 하세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독서괭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