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끼 좀 벗어주세요.......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묘하게도 마리 루티의 [가치 있는 삶] 북커버랑 비슷하네, 라는 생각을 또 했다는. 2023년 그가 읽은 수많은 책들 중 최고의 책으로 꼽힌 [가치 있는 삶]을 읽다가 나는 이혼을 새삼 결심했는데 오늘 아침 딸아이와 아침을 먹으면서 아이가 한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게 내 눈에도 너무 뻔하게 보여서 언젠가는 이혼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라는. 어린아이들은 다 본다. 문장 하나가 무슨 인생을 바꾸게 만들겠냐고 그런 소리들 하지만 마리 루티를 읽다가 아 그래, 결국 나는 타이밍을 보는 거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해일처럼 닥치는 그 순간은 언제란 말인가, 라고 마리 루티 안에 써넣었다. 사랑했고 상처를 주고 받았고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깨졌고. 짧은 연애와 기나긴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수많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야기로 풀어낼 가능성이 있을지도. 다른 여자들도 어리석게 당하고 산다는데 내가 볼 때는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던데 나는 계속 당하면서 살아야 하나. 행복한 척, 즐거운 척, 지적인 척, 모든 것을 가진 현대 중산층 여성의 표본을 나 스스로 이미지화하면서. 그러다가 문득 정희진의 문장들을 읽다가 억압받고 당하고 슬퍼하고 도망치고 싶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도망친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해서 정말 행복해질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고 그렇게 사는 일이 진실로 가능할까_ 묻고 또 묻다가 이내 주저앉아버리고 마는 수많은 여성들의 지난 삶을 마주했다. 나도 그 안에 있었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나의 친구들도 그 안에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처럼 보였어_ 라고 지금 나와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말을 했다. 모든 것을 가진 우아한 중년 부인. 그 말을 듣고 나는 포복절도했다. 상처 없는 삶은 없다. 관계는 생성되고 이어지고 때때로 환멸로 끝나버리거나 매듭을 아름답게 맺는 걸로 끝날 수도 있다. 너와 나_ 라는 관계가 있으니 상처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싶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로 다짐했고  아마도 상처를 주고받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이성적으로는 한다. 물론 그러고 싶지 않지만.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껏 호르몬 작용은 3개월에서 6개월 갈 뿐인데 그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을 오롯이 쓴다는 건 너무 손해보는 장사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내 가치관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또한 깨달았다.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임경선 편이다. 임경선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이 언니가 하는 사랑을 과거에 했네. 지금도 하고 있고_ 깨달았다.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몸을 트는 일조차 귀찮아 한다. 그걸 옳다 나쁘다 보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이들이 주변에 하도 많아서 기이하게 여기기는 했다. 귀찮고 번거로워 사랑 같은 거 하지 않는다고 하는 젊은 MZ 세대부터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을 하겠다고 모임 같은 데 나가냐고 독거 노인 생활이 좋다고 하는 X세대 친구들까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지 않나, 사랑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물고빨고 서로 미친듯 좋아 어쩔 줄 몰라 해도 관계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진다. 그건 필연이다. 비단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이건 내가 한 말 아니라 내 베프가 한 말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관계라면 또 마주하고 얼굴을 보면서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약도 발라주고 반창고도 붙여주고 그래도 다시 잘 지내보자_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든다면 그들은 또 봄에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이 마음을 거둬들인다면 이제 쟤랑은 딱 겨울까지다_ 내년 봄부터는 보지 않겠다_ 한다면 그 관계는 끝난다. 상처는 마음을 닫는 이도 그 마음 닫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에게도 생기는 거고. 그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밖에서 그 관계를 응시하는 이들에게도 상처가 된다. 기껏 그 정도로 사랑을 주고 그 정도로 상처를 주려고 애쓴 거냐_ 라고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만다. 그들은 겨울에 모두 헤어지고 만다. 때마침 매서운 겨울 바람은 곧 끝난다. 나는 봄을 말하고 싶다. 친구의 유투브를 보는 동안에도 그랬다. 잘 견뎠다. 겨울 잘 보내고 이제 봄이다. 하고싶은 말과 읽었던 문장들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평화롭게 겨울을 잘 보냈다, 말했다. 상처들을 직시하는 삶. 정희진의 문장들 읽으면서 느꼈고 마리 루티를 읽으면서도 느꼈다. 인간의 언어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상처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니 그 상처들을 직시하고 그 상처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입들도 제각각이다. 하여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내 상처와_ 그 기나긴 겨울날들_ 다른 이들은 모두 봄이라 여겼던_ 그렇게 사람들을 모두 착각하게 만들었던_ 내 이중성에 대해서도_ 그 상처를 두 손가락으로 벌려 다시 한번 헤집어보고 싶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입춘을 맞이해서 폭설이 내렸다. 한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어쩐지 봄 같다 느꼈다.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해서 그 이전까지 상처들을 한없이 받았다고 해서 다시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다 다시는 내 인생에 봄 같은 건 오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편보다는 방향을 틀어 몸을 움직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두려움과 두려움이 사방팔방으로 한가득한 건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정희진의 문장 하나 덧붙이는 걸로 마무리. 


"관계의 향방이 사랑을 구속하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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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7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2-06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앍.... 조끼... (지금도 입고 있다...)
앞으로는 분홍색 옷은 입지않도록 하겠습니다...!!!
발전하는 공쟝쟝되겠습니다!! ㅋㅋㅋㅋ

수이 2024-02-07 17:39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잘 받는 색깔이 있을 거예요, 쟝님. 흥하십시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