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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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선택했다가 생각치도 않았는데 재미난 책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란 어떻게보면 생활의 활력소다. 별 기대없이 읽었다가 큰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면 괜히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 책이 있다. 바로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사실 책을 처음 봤을때는 겉표지의 그림이 살짝 코믹스럽게 나와서 내용 자체도 그런쪽인줄 알았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자 내용 자체는 진중하고 무거운 주제였다. 그렇다고 글 자체가 숨막힐듯하진 않았지만. 그런데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참 오랫만에 몰입할만한 내용이었다. 원래 스릴러나 추리쪽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쪽 장르도 아닌데 최근에 본 어떤 책보다 더 끌어당김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용이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해서 마치 내가 그것을 겪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이나 주인공이 겪고 있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일이어서 좀더 현실감있게 느껴졌었다. 

내용은 백수로 지내다가 알바 인생을 전전하고 있는 '다케 세이지'의 입장에서 펼쳐진다. 세이지는 걍 평범한 대학을 졸업해서 어떻게 회사는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첫직장을 세달만에 그만둔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는 하나 어떻게보면 참 철딱서니없는 행동이었다. 그러고 나선 알바를 하는데 그 알바조차 제대로 하는것도 없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그만두고 또 다른것을 하게 된다. 사실 일본은 이른바 '프리터족'이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운탓도 있지만 일본에선 아르바이트 월급이 우리나라처럼 작지 않아서 어느정도 생활할만큼 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주인공인 세이지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좋을것도 딱히 나쁠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세이지에게 큰일이 일어났다. 바로 어머니가 우울증이라는 큰병에 걸린것이다. 그것도 중증인. 그것에는 무뚝뚝한 아버지와 취직하지않고 대책없이 살던 세이지 탓도 있다. 자존심만 강하고 가족을 위한 따뜻함에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때문에 어머니는 오랜 세월 스트레슬를 받았던것이다. 그것을 가족을 위해서 참고 참다가 결국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 나오는 세이지의 아버지는 누가봐도 욕을 먹을 정도지만 현실의 아버지는 그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좀 독단적이거나 무뚝뚝한 면으로 어머니께서 상처 입은 경우가 있어서 책의 내용을 읽는 순간 우리 어머니가 그 병에 걸린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세이지는 그뒤로 그야말로 사람이 바뀐다. 어머니의 간병에도 매달렸지만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얼마나 한심했는지도 알게된다. 그래서 새롭게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나아가게 된다. 무뚝뚝하고 비협조적이던 아버지도 세이지가 잘 설득시켜서 아버지와 세이지의 도움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게 되는 어머니.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서 다른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최후의 목표를 세운다. 바로 '새 집 장만하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나아간다. 그리고 그 목표에 조금씩 빛이 비추게 된다. 

'88만원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우리나라의 세태에 비춰봤을때 세이지의 처지가 참 절실히 와닿는 면이 있다. 일본도 그럴진데 그보다 못한 우리나라는 더 하지 않을까하고. 그리고 지난 세월 경제발전에는 큰 공을 세웠지만 어떻게보면 가정적으로는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이기주의적이라기 보다는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버지들. 자신만이 제일이라는 그런 독선적인 생각. 고지식하면서도 융통성은 없고. 그렇다고 가족을 나몰라라하는것은 아니고. 이런 아버지들이 많을것이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서 더욱더 권위적인면이 있었다. 그래서 윗세대 아버지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화도 나고 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세이지의 아버지도 우리네 아버지를 보는듯해서 더 몰입해서 읽은거 같다. 

어떻게보면 평범한 사회 현실을 그린 내용인데 그것을 가정적인 문제와 결부시켜서 편하게 잘쓴것은 지은이의 능력이다. 딱히 급박한 내용이 있는것도 아닌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한것은 그만큼 피부에 와닿게 잘 썼기 때문일것이다. 그리 짧지 않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술술 잘 넘어갔다. 내 이야기를 읽는듯 현실감있고 쉽게 잘 쓰여진 책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 그건 주인공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너무 무난하다는것이다. 어떻게보면 주인공은 원래 능력을 갖고 있었던거라고 생각할수도있다. 잠시 그 능력발휘를 미루었다는걸로. 책에서 결론은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이 생각했던 목표에 큰 무리없이 접근하고 맘에 드는 여자랑도 잘 될꺼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너무 순탄하게 일이 이어지는게 조금 밋밋하다. 좀더 극적 긴장감을 위해서 몇가지 좌절도 있었으면 좀더 균형있지 않았을까. 현실은 그리 쉽게 모든것이 이루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마냥 희망을 주고 싶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고 해도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니 희망을 갖으란 뜻이 아닌가 말이다. 뭐든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나아지긴 할테니까.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수있다. 처음에 주인공인 세이지가 백수로 알바생활을 하는 도중 어머니의 병을 알게되는 게 첫번째라면 두번째는 알바 분투기, 그리고 세번째는 정규직 직원이 되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첫번째부분에선 눈물이 찡했고 이제 정신차려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부분에선 기분이 좋아졌고 정규직으로 취직해서 일을 차근차근 잘해나가는 모습을 봤을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세이지가 된양 마음속에 응원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오랫만에 참 기분 좋은 책 읽은거 같다. 재미난 책도 많고 교훈되는 책도 많지만 참 기분 좋게 느끼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 책, 괜찮다. 재미나 교훈 이전에 사람 기분을 좋게 한다는건 참 매력적인 책일것이다.

세이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수많은 88만원세대들에게도. 아 우울증에 울적해하는 많은 분들에게도 응원을. 

찬 바람이 부는 이 겨울, 따뜻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 강추다.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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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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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집의 서재를 장식했던 책들중에서 기억나는것은 단연 세계문학전집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던 여러 문학전집들. 나중에 커서 그 면면들을 보고 참 대단한 작품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전집류는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장편들을 위주로 실었고 직접 번역보다는 일본의 역서를 다시 번역한 중역인 경우도 많았었다.

이제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에는 새로운 기획과 번역으로 문학전집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 좀더 독특하고 참신한 기획의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 바로 창비에서나온 창비세계문학이다. 이 시리즈가 좀더 좋게 보이는것은 접하기 쉽지 않은 단편을 모은 전집이라는것이다. 보통 장편전집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단편에다가 국내에 거의 소개가 되지 않은 초역인 작품을 많이 실은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이 책은 독일의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독일하면 어쩐지 무겁고 장중하고 깊이있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읽어본 몇몇 독일 장편 문학의 느낌이 그랬기 때문일것이다. 아마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이 주로 그래서일꺼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책들은 그런 선입관을 날려버린다. 아무래도 단편이라는 형식이라서 좀더 무거운 내용이 나오긴 힘들겠지만 여러가지 스타일의 다양한 작품들이 독일문학의 모습을 알수있게 해준다.

처음에 실린 작품은 괴테의 '정직한 법관'이라는 이야기다. 파우스트로 유명한 이 작가의 단편이라서 그런지 뭔가 어두울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렇지는 않고 쉽게 재미나게 잘 읽힌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생각할꺼리를 던져준 작품이었다. 파우스트에서 나오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고민을 여기서도 엿볼수있는 기회였다.

두번째인 '기발한 페르머'는 우리가 잘아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작가 요한 루드비히 티크의 작품이다. 그 동화의 작가답게 특이하면서도 유머스러운 느낌이 든다. 결말이 좀 허무하게 끝난게 특징이라면 특징.

세번째 작품인 '주워온 자식'은 '정직한 법관'의 패러디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해설에 맞게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정직한 법관은 결국 이성을 찾은 결과였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로 인간 본연의 욕망이 이긴 내용이었다. 결말부분에 반전이 있을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유사한 소재의 이야기를 많이 본 탓인거 같았다.

이밖에도 표제작인 '어느 사랑의 실험'도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생체실험과 관련된 내용으로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만 나올수있는 주제였다. 읽기에 따라서 끔찍하게도 읽힐수 있는 내용으로 독일이라는 나라의 상흔을 읽을수 있었다.

전체 17편의 단편이 담겨있는데 모든 작품이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읽혔다. 원래 단편을 좋아하다가 단편을 읽을 기회가 없어서 장편만 읽었는터라 아주 흡족하게 읽었다. 다만 장편의 긴 호흡으로 읽는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편의 짧은 분량에 미흡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뭔가 재미가 있을려는 찰라에 끝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편은 장편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뜻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보다 짧은 호흡으로 읽어야 참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책 끝에는 옮긴이의 해설이 아주 상세하게 긴 분량으로 실려있다. 아무래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들이 많은터라 한작품 한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옮긴이의 설명을 붙여놨다. 처음에 별 의미없이 읽었던 이야기도 옮긴이의 해설을 읽어보면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일일이 해설을 단 옮긴이의 수고가 엿보인다. 다만 너무 큰 의미를 찾아낼려고 하면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하겠다. 그냥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면 되는것이기에 맨 마지막의 해설은 책을 다 읽고 읽어봐도 되고 아니면 읽지 않는것도 낫겠다. 필요없는 선입관을 갖지 않게 하는 면에서.

좋은 기획의 시리즈란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의 작품들은 어떨까. 평소에 보기 힘든 동유럽의 작품들도 있어서 기대가 된다. 얼른 다른 시리즈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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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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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인구많기로는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중국과 인도이다. 지금은 중국이 더 많지만 머지않아 인도가 더 많아질꺼라고 한다. 그만큼 대국이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비해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불교의 발상지이고 많은 철학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는 이 나라 인도가 실상은 피폐하고 잔인한 신분제의 굴레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타지묘할 마당이 그토록 아름답다고 해도 거기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안다면 그 아름다운 환상은 깨지고 말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신분제의 굴레에서 살아가면서 더 나은 삶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실제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은 4명. 인도 봄베이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마넥과 그의 어머니의 동창생인 디나, 그리고 디나밑에서 일을 하는 이시바와 옴프라카시 이렇게 4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도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기에는 불리한 출신이라는  것이다.
마넥은 수많은 종족이 있는 인도에서도 소수민족에 속하는 파리시족이고 디나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카스트 제도의 가장 낮은 신분에도 들어가지 않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의 신분이다.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란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것인가 하는것을. 거기에다가 이시바와 옴은 아예 인간으로 인정 받지도 않는, '동물'로 까지 천대받는 신분이다.

사실 공식- 비공식적인 신분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상은 새로운 신분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바로 빈부의 차에 의한 신분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신분이 올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능력과 관계없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것은 어찌보면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아예 윗쪽으로 올라갈 수 조차 없다는것은 얼마나 억울한 것일까. 얼마나 암울하고 슬픈 처지일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희망을 가질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역설한다. 이들이 바라는 희망은 부자가 되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최소한 인간으로 대접 받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살수 있게 되는것이다. 참으로 소박한 희망이지 않는가. 하지만 절망의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죽어라고 노력해도 그 작은 희망이 실현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그래도 결국 균형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산술적인 균형이 아닌 희망과 절망의 정서적인 균형을 뜻하는것일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희망을 잃지말라는 뜻을 이들의 삶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건 아닐까.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참 마음 아픈 내용에 가슴이 먹먹해진것도 있지만 일단 900쪽에 이르는 긴분량탓도 있다. 추리소설처럼 쉽게 읽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이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책을 끝까지 들게 한것은 지은이의 글쓰기에 대한 무게가 그만큼 큰 것이기 때문일것이다.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딴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재미가 아주 있다고는 할수없겠으나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이야기라고 할수도 있어서 끝까지 읽을수 밖에 없었다.

며칠 걸려서 읽었는데 그 여운은 또 며칠갈것같다.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의 희망이 있다는 말, 몇번이고 곱씹고 있다. 진짜 그럴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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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포스터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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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청소년용 소설이라고 나오긴 했는데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그리 쉽지 않게 느껴지는데 청소년이 읽으면 더 재미나게 읽혀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주인공인 엘렌이 처한 상황이 참 암담하기도 하고 그런 주제가 분명 우리 주위에도 널려있다는걸 알고 있다는 의식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마음을 잘 참고 읽어나간다면 우리는 이 엘렌이란 아이에 대해서 정말 사랑스러움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따뜻함과 소박함, 그리고 재치있는 유머와 발랄하고 경쾌한 성격에 기분 좋아질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어떻게보면 참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아빠를 죽일수 있을까?'. 어른도 아닌 애가 그것도 자기 아빠를 죽일 궁리를 하다니.
물론 이것을 실현하기도 전에 아빠는 자연사하고 만다. 근데 자연사하지 않았다면 엘렌은 자신의 아빠를 진짜 죽이려고 했을까.아마 아닐것이다. 아빠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생겼다는것은 그만큼 아빠답지 못했다는 강한 반증의 표현일것이다.


실제로 엘렌의 아빠는 구제불능의 아빠라고 부르기도 챙피한 인간말종이다. 어떻게 자식을 낳아서 저렇게 할수있을까하고 생각되는 그런 종류의 인간.
엘렌은 몸이 아프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를 여의고 아빠랑 살게된다. 근데 이 아빠라는 사람, 차라리 남보다 못한 사람이다. 술주정뱅이에다가 딸에겐 전혀 관심도 안 가지는 사람. 그리고 친척이라고 하는 삼촌이나 이모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잇속만 챙기고 그 누구도 엘렌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않는다.거기에다가 엄마의 엄마 즉, 외할머니조차도 엘렌을 보면 엘렌의 아빠가 생각난다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 엘렌의 선택은 어떤것일까.
참 쉽지 않은, 그러나 올바른 선택을 한다. 바로 자신이 새로운 가족을 찾아가는것. 자신의 친가족은 자신을 버렸지만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는 엘렌의 그 당찬 마음에 감탄스럽다가도 그 과정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한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엘렌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의지를 그린 성장소설이다.1인칭시점이라서 좀더 엘렌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어서 그녀에 대해서 더 가까이 갈수있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어른들의 위선이나 거짓,모순에 대한 엘렌 나름의 비난을 보는것도 재미있다.아직 어린 엘렌이지만 어른들의 그런 면을 그녀는 닮지 않고 싶었던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아이를 만날수 있을까.답은 글쎄다이다.
사실 엘렌처럼 당찬 기개를 가지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에는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
하지만 어디엔간 있을것이다. 그리고 엘렌만큼의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도 경제가 피폐한 요즘. 무너지고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엘렌의 용기가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면 그것도 나름의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은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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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에 사는 여자
마쿠스 오르츠 지음, 김요한 옮김 / 살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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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소설. 처음에는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은 책이었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1인칭 시점인데다가 주제가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재미로 읽는다면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잘 읽혀지지 않을듯한 책이었다.

하지만 차분히, 천천히 읽어내려가자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남을 엿보고자 하는 욕망인 '엿보기'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하면 '관음증'이라고도 하는 엿보기. 누구나 그런 욕망은 갖고 있을것이다. 그건 인간 본연의 심성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갖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대한 호기심. 봐서는 안된다는 묵계에 은근히 보고싶어하는 그 욕망들.
이 책은 그런 엿보기 욕망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청소에 대한 어떤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한 호텔 메이드인 '린'에 의해서 이어진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린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청소에 바친다. 너무나 열심히 청소를 한 나머지 손님들로부터 그녀가 청소한 방은 바닥에서 음식을 먹을수있을 정도란 찬사까지 받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청소에 몰두한 것은 왜일까. 깨끗하지 않으면 안되는 청소결벽증에 걸린걸까. 아니면 외로움을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서 위무하고 있는것인가. 책에서는 어떤 이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외로워서 청소를 선택했던, 청소를 하다보니 외로워졌던 그 둘은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그녀가 본격적인 엿보기, 아니 '훔쳐보기'를 하게 된건 어느 화요일이었다.
청소후 바로 퇴근하지 않았던 그녀는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서 침대 밑에 숨게 된다.
방에 들어온 한 남자, 그리고 얼마뒤 들어온 여자. 그 두사람의 말과 행위를 그녀는 침대 밑에서 모든것을 듣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일상에서 중요한것이 추가된다. 매주 화요일에 숨어서 지켜보는 '훔쳐보기'.
린은 거기서 더 나아가 화요일밤에 오는 여자의 연락처를 알아내 그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 린은 그녀를 만나는게 좋았을가. 단순히 육체의 부딪힘이래도 좋은것이었을까.
그렇게 외로움이 있다면 왜 좀더 더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분량은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처음에 읽다보면 쉼표를 자주 사용하는 등의 독특한 문체에 고개가 갸웃거리기도 한다. 분명,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고전같이 어려운 소설도 아니다. 한번 읽어보다 보면 어쩌면 내 자신의 외로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밖을 향한 소통의 의지가 나랑 비교했을때 과연 못하다고 할수 있을런지. 난 침대로 숨고 있는건 아닌지 말이다.

후다닥 읽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린의 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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