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선택했다가 생각치도 않았는데 재미난 책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란 어떻게보면 생활의 활력소다. 별 기대없이 읽었다가 큰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면 괜히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 책이 있다. 바로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사실 책을 처음 봤을때는 겉표지의 그림이 살짝 코믹스럽게 나와서 내용 자체도 그런쪽인줄 알았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자 내용 자체는 진중하고 무거운 주제였다. 그렇다고 글 자체가 숨막힐듯하진 않았지만. 그런데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참 오랫만에 몰입할만한 내용이었다. 원래 스릴러나 추리쪽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쪽 장르도 아닌데 최근에 본 어떤 책보다 더 끌어당김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용이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해서 마치 내가 그것을 겪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이나 주인공이 겪고 있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일이어서 좀더 현실감있게 느껴졌었다. 

내용은 백수로 지내다가 알바 인생을 전전하고 있는 '다케 세이지'의 입장에서 펼쳐진다. 세이지는 걍 평범한 대학을 졸업해서 어떻게 회사는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첫직장을 세달만에 그만둔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는 하나 어떻게보면 참 철딱서니없는 행동이었다. 그러고 나선 알바를 하는데 그 알바조차 제대로 하는것도 없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그만두고 또 다른것을 하게 된다. 사실 일본은 이른바 '프리터족'이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운탓도 있지만 일본에선 아르바이트 월급이 우리나라처럼 작지 않아서 어느정도 생활할만큼 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주인공인 세이지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좋을것도 딱히 나쁠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세이지에게 큰일이 일어났다. 바로 어머니가 우울증이라는 큰병에 걸린것이다. 그것도 중증인. 그것에는 무뚝뚝한 아버지와 취직하지않고 대책없이 살던 세이지 탓도 있다. 자존심만 강하고 가족을 위한 따뜻함에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때문에 어머니는 오랜 세월 스트레슬를 받았던것이다. 그것을 가족을 위해서 참고 참다가 결국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 나오는 세이지의 아버지는 누가봐도 욕을 먹을 정도지만 현실의 아버지는 그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좀 독단적이거나 무뚝뚝한 면으로 어머니께서 상처 입은 경우가 있어서 책의 내용을 읽는 순간 우리 어머니가 그 병에 걸린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세이지는 그뒤로 그야말로 사람이 바뀐다. 어머니의 간병에도 매달렸지만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얼마나 한심했는지도 알게된다. 그래서 새롭게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나아가게 된다. 무뚝뚝하고 비협조적이던 아버지도 세이지가 잘 설득시켜서 아버지와 세이지의 도움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게 되는 어머니.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서 다른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최후의 목표를 세운다. 바로 '새 집 장만하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나아간다. 그리고 그 목표에 조금씩 빛이 비추게 된다. 

'88만원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우리나라의 세태에 비춰봤을때 세이지의 처지가 참 절실히 와닿는 면이 있다. 일본도 그럴진데 그보다 못한 우리나라는 더 하지 않을까하고. 그리고 지난 세월 경제발전에는 큰 공을 세웠지만 어떻게보면 가정적으로는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이기주의적이라기 보다는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버지들. 자신만이 제일이라는 그런 독선적인 생각. 고지식하면서도 융통성은 없고. 그렇다고 가족을 나몰라라하는것은 아니고. 이런 아버지들이 많을것이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서 더욱더 권위적인면이 있었다. 그래서 윗세대 아버지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화도 나고 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세이지의 아버지도 우리네 아버지를 보는듯해서 더 몰입해서 읽은거 같다. 

어떻게보면 평범한 사회 현실을 그린 내용인데 그것을 가정적인 문제와 결부시켜서 편하게 잘쓴것은 지은이의 능력이다. 딱히 급박한 내용이 있는것도 아닌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한것은 그만큼 피부에 와닿게 잘 썼기 때문일것이다. 그리 짧지 않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술술 잘 넘어갔다. 내 이야기를 읽는듯 현실감있고 쉽게 잘 쓰여진 책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 그건 주인공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너무 무난하다는것이다. 어떻게보면 주인공은 원래 능력을 갖고 있었던거라고 생각할수도있다. 잠시 그 능력발휘를 미루었다는걸로. 책에서 결론은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이 생각했던 목표에 큰 무리없이 접근하고 맘에 드는 여자랑도 잘 될꺼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너무 순탄하게 일이 이어지는게 조금 밋밋하다. 좀더 극적 긴장감을 위해서 몇가지 좌절도 있었으면 좀더 균형있지 않았을까. 현실은 그리 쉽게 모든것이 이루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마냥 희망을 주고 싶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고 해도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니 희망을 갖으란 뜻이 아닌가 말이다. 뭐든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나아지긴 할테니까.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수있다. 처음에 주인공인 세이지가 백수로 알바생활을 하는 도중 어머니의 병을 알게되는 게 첫번째라면 두번째는 알바 분투기, 그리고 세번째는 정규직 직원이 되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첫번째부분에선 눈물이 찡했고 이제 정신차려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부분에선 기분이 좋아졌고 정규직으로 취직해서 일을 차근차근 잘해나가는 모습을 봤을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세이지가 된양 마음속에 응원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오랫만에 참 기분 좋은 책 읽은거 같다. 재미난 책도 많고 교훈되는 책도 많지만 참 기분 좋게 느끼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 책, 괜찮다. 재미나 교훈 이전에 사람 기분을 좋게 한다는건 참 매력적인 책일것이다.

세이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수많은 88만원세대들에게도. 아 우울증에 울적해하는 많은 분들에게도 응원을. 

찬 바람이 부는 이 겨울, 따뜻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 강추다.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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