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의 첫 독서는 <울프 일기》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서른여섯 살부터 쉰아홉 살까지 쓴 일기를 연도별로 정리한 책이다. 나는 목차에서 ‘50세‘를 찾아 그곳부터 펼쳤다. 내 나이 즈음 울프는 어떤 경험과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친다" "이번 책은 내가 내 안에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실들을쏟아 내고 있다." 같은 구절들이 눈에 박혔다. 쓰는 자의 근심, 집념, 희열 같은 감정이 잔파도처럼 일렁였다. 대작가도 말 그대로 일희일비했구나 싶으니 숙연해졌다. - P5
사는 게 만만해지는 날이 오지 않듯이 쓰는 게 담담해지는날도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심 기대했다. 글 써서 생활한 지 십수 년이 지났고 단행본을 몇 권 냈으면 점차적으로쓰는 일에 의연해지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건 글쓰기가 ‘기준의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독자가 늘었고 시간이 경과하면 글이 나아져야 한다는 내적 압력은 커진다.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실력은 더디게 쌓이니 도통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막막할 때면 미래가 아닌 과거를 더듬는다. 예전엔 내가 글을어떻게 썼더라, 하고. 그 시작에는 《올드걸의 시집》이 있다. 지금부터 12년 전이다. 2008년 11월 개인 블로그에 ‘올드걸의 시집‘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생활에서 자라나는 감정에 시를 덧대어 한 편 두 - P5
글 편 글을 올렸다. 돈을 벌거나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라 속을 달래려고 일이 버거워서, 어쩌면 쓴다는 의식도 없이 쓴 글들이다. 생애 가장 눈물 많던 시절이다. 몸의 우기를 지나며 썼던지라 자기 연민이 과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가 글과 삶의거리가 없었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가장 고통 없이 글을 썼던 것이다. 한 무명작가의 글은 운 좋게 출판 기회를 얻었다. ‘은유‘라는필명으로 2012년 첫 단행본 《올드걸의 시집》을 펴냈다. 그런데 3년 후 출판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절판을 결정하고 책의 판권과 남은 책 백 권을 돌려줬다.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책 무더기가 현관에 무덤처럼 놓여 있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 P6
그렇지만 슬픈 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오기도 하는 법. 사연을 전해 들은 은평구의 작은 서점 ‘책방비엥‘에서 책을 위탁판매해줬고, 《올드걸의 시집》을 아끼는 독자들과 모여 책을 추억하자며 ‘절판 기념회‘를 열어 줬다. 그 후로도 책방에는 ‘그 책‘을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꾸준했다고 한다. 외부 강연에서 내가만난 독자들도 ‘그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 왔고, 실제로중고 책이 정가보다 두세 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2016년 12월에 《올드걸의 시집》의 전부는 아니고 절반을추려 그간 쓴 다른 글들과 묶어 개정증보판 격인 《싸울 때마다투명해진다》를 펴냈다. 나는 새로 나온 분홍 표지의 책을 ‘그 - P6
책‘을 찾는 이들에게 권하곤 했는데 일부 독자들은 말했다. "이책이 그 책은 아니다"라고 ‘그 책‘, <올드걸의 시집》을 원본 그대로 다시 세상에 내놓게되었다. 절판된 지 5년 만이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면 저자의 손을 떠나 제 운명을 산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곡절이많아서 나에겐 ‘감정 꽃다발‘ 같은 책이 되었다. 어느 날 저자가되는 어색한 기쁨을 안겨 주더니 불쑥 절판되는 쓸쓸한 아픔을느끼게 해 줬고 이번에는 복간이라는 애틋한 설렘과 부끄러움을 선물해 준다. 가끔 강연회에서 《올드걸의 시집》을 들고 오는 분들을 만나면 나는 ‘인연의 증표‘라도 발견한 것처럼 북받치다가 마음이 녹아버렸다. 책에 대한 감상으로 "실컷 울었다" - P7
는 고백을 종종 듣는다. 초보 저자의 책을 무려 사고 읽고 아끼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초판본을 지닌 삼천 명의 독자는 한 사람이 쓰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튼튼한 뗏목이되어 줬다. 첫 책의 부족함을 아는 만큼 고마움이 크다. "내가 감히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자기가 쓴 것이 출판되어 나온 것을 얼굴을 붉히거나, 떨거나, 얼굴을 가리려 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날이 언제고 오기는 올까?" 버지니아 울프가 ‘37세 일기에 쓴 문장이다. 내 나이 서른일곱부터 쓴 글들을 보는 지금 내 심정이 딱 이렇다. 두 번째 서문을 쓰기 위해 - P7
‘죄스러운 열정‘으로 철 지난 글들을 찬찬히 일독했다. 얼굴이화끈거려 지우고 싶은 문장들, 거친생각과 서툰감정들에 한없이 난감해졌지만 그대로 두었다.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른 중요한 오류는 각주를 달았다. 가족과 결합된 시간과 사건이 많았던 시기라서 동거인들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일상에서 발아한글이기에 불가피했다. 육아 집중기 시절 나는 좋은 엄마에 대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나와 남을 부단히 들볶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먹을 밥을차리는데 자꾸 한숨이 나는 내가 미워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다. 아이들용으로 손이 가는 반찬을 해 놓았을 때 그걸 먹는 남편이미운 내가 싫어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다. 먹는 이를 미워하는사람은 예정에 없던 내 모습이었다.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으로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한 여자의 분투, 수없이 무너졌던실패의 기록을 너그러이 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P8
나는 슬픔의 친척인가? 우리는 친척인가? 이리도 자주 내 문 앞에서 오, 들어오라! _ 빈센트 밀레이의 시 <슬픔의 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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