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밖에서 훈련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 온도가 올라 담요도 그 무엇도 덮지 않았는데 몸에서땀이 난다. 더구나 기온과는 별개로 확실한 열원이 존재하여 더욱 땀을 부른다. 이사나는 그 열원을 물리치려고 손바닥을 뻗었는데 거꾸로 작고 뜨거운 손바닥에 그의 손바닥이 밀려났다. 진이 병에 걸렸다는 깨달음은 전기 충격처럼일순간 그의 잠을 싹 달아나게 만들었다. 진이 이사나가 건네는 말 혹은 손길을 거절하는 건 그 몸이 병에 걸려 괴로울때 말곤 없기 때문이다.
"진, 덥니? 아파? 진, 진, 어디 아픈거야?" 이사나가 안쓰러운 마음에 급박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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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무렵에는 예를 들면 야생 동백꽃이 우거진 가운데 술에 취한 아이들처럼, 꽤나 위험한 폭발력이 내재된 천진난만한 것들이 모여 피우는 소란과 종종 맞닥뜨렸다.
그럴 때 그는 나무의 대리인으로서 숨 막힐 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부풀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혹적이고도 무서운 외출을 할 때마다, 싹을 틔우거나 틔우려는 여러 종류의 작은 가지를 꺾어서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와, 셸터 테이블에 흩뿌려놓았다. 처음에 그는 작은 나뭇가지를 관찰하며 싹 틔우는 힘,
싹 틔우는 의미를 새해에야말로 완벽하게 밝혀보리라 단단히 별렀다.  - P11

비록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아직 발아할 징후가 없는 동안 나무의 혼은 밑동에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나무와 교감하길 늘 바라는 그는 그 견고한 동면에서 배우는것이 있었다. 겨울바람이 나무 우듬지로 불어대는 밤에도,
악몽 한 번 꾸지 않았다. 그러나 벌거숭이 나무가 움트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온몸에 털이 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자신에게 위해危害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기분이기도 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서 발정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징조가 나타나서 그를 단호하게 몰아내고 말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같은 전환기에는 거울 속의, 전 육체·전 의식을 다하여 무엇인가를 향해 탐욕스럽게 열려 있는 스스로에게 질려, 수염을 자를 때도 손으로 더듬어가며 잘랐다. - P12

그렇게 이 지적장애아는 적어도 50종의 들새 소리를 식별할 수 있어 그 새들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식욕에 필적하는 쾌락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기 내부의 울적함에 가로막혀, 두견새나 붉은배오색딱따구리, 쏙독새 소리처럼 특징적인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대부분 구별하지 못하는 이사나도 한없이 미세한 들새 소리와 그보다도 더 작은 아이의 소리를 매일 몇 시간 동안이나 온화한기쁨을 느끼며 들었다. - P14

"고래나무라!" 이사나는 감명을 받아 동요하며 날숨을 내듯 말했다. 고래나무, 입니다. 라는 진의 목소리가 뒤따르지 않는 것을 어딘가 불안하게 느끼면서.
그런 채로 이사나는 자기 눈앞에 실제로 보이는 것과는다른, 또 하나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것은 끝없이 넓게 펼쳐진 초원을 향해 선자 혹은 바다를 향해 선 자만이 경험할수 있는 광대한 공간으로서, 도시에 정주한 이래 잃어버렸으나 환영으로 재현된 그 공간을 가득 채우며 단 한 그루의나무가 만드는 거대한 숲, 즉 고래나무가 나타났다. 굵은 나 - P124

무줄기 위로 벼처럼 무성하게 뻗은 가지들에 작은 잎이 빽빽하고 방대하게 퍼져 있어,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흰수염고래와 같은 위용을 드러냈다. 거기다 무성한 이파리가 만들어내는 머리 부분에서 작고 검으며 영리해 보이는 눈이천진난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 고래나무 전체는 그리움 그자체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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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랭킹‘은 평소 내가 사용하지 않는 말이므로, 이 글은 잠시 일탈이다. 지식인은 해체된 지 오래된 단어다. 임시 복원한다면, 자기 노동과 일상을 언어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있다. 통념적 의미로 그냥 쓴다면, 우리 사회에는 세 유형의 지식인이 있다. 지식이 없는 사람, 지식인이라고 주장하고 간주되는 사람, 서구 지식과 ‘지금, 여기‘의 경합을 쓰는 사람이다. 조혜정 ‘선생님‘은 세 번째에 속하는 극소수 중 한 사람이자, 그중에서도 선구자다.
종종 출판 단체나 신문사에서 ‘명저 50선‘이나 ‘주목받는 저술가‘ 같은 명단을 만드는데, 재고되어야 한다. 사회 각 분야는 다양하다. 보이지 않는 분야가 너무 많다. 레즈비언이나 장애인 관련 도서는 선정되기 힘들다. 하지만 만일 나더러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책 열 권을 선정하라면 아홉 권은 모두 이 책 다음이다.

정희진처럼 읽기 P- 231

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입장 천명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보다 지금까지 교실에서 해온 논의와 연결하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개집단이 만들어내는 언설의 구조를 뚫어보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랐다. 감을 잡아내기 어려웠던 언설의 문제가 불꽃 튀는 현실로 나타난만큼, 텍스트의 당파성과 언설이 갖는 힘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있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그 ‘큰 목소리‘들이 실은 얼마나 미약하기에 손쉽게 매스컴에 의해 요리되어 버리는지, 그래서 통치자들이 얼마나 손쉽게 지식인들을 분열시키고 통치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동안 커온 지식인들이 지속적인 토론공동체적인 문화 그것이 가족문화이든 또래문화이든 운동권문화이든 간에 속에서 자라오지 못하였으므로 토론에 미숙할 수밖에없으며 그래서 필요 이상의 강한 어조와 독선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논리적‘, ‘현학적‘ 치장을 하게 된다는 것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상대방의 말을 그 말하는 스타일이나 성격도 감안하며 본래 선한 의도로읽어내기보다 감정적으로, 또는 꼬투리만 잡는 식으로 읽는 경향이 강 - P120

한 지금의 지식인 사회의 극심한 당파성과 무성한 "토론 없는 토론들"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어쩌다 나온 선견지명도여지없이 사그러져 간다는 것도....
자신을 감춘 ‘이론적 책 읽기‘나 입장 천명에 급급한 ‘감정적 책 읽기‘를 하는 식자 사회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이렇게 극단적 규범주의와 교조적 유물론자로 당파가 갈려 싸우기 시작한 것은? 물론 입장은 없이 극단적 명분론만 되뇌이던 때에비한다면 우리 지식인 사회는 근래에 들어서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대다수 지식인들이 자기가 선 자리를 점검해 보고 자신을 비추어볼 비판의 거점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분명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적 토론은 그것이 삶을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하다. 그런데 ‘내‘가 없는 토론에 익숙해진 지식인, 문화 읽기를 어려워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풍토에서 그런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 P121

오늘이 통일신라의 종교에 대해서 배우는 날이라면 선생님은 먼저 신라의 종파에는 ‘5교 9산‘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중략) 첫머리 글자인
‘열, 계, 법, 화, 법‘을 따서 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노트에 ‘열계법화법‘이라고 써놓고 맹렬하게 외우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다시 열반종의 중심 사찰은 경복사 (중략) 우린 다시 사찰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경통분부금, 경통분부금, 경통......?
선생님은 또 고려시대의 구호시설에 대하여 외우라고 하십니다. ‘흑의상제헤대태, 흑의상제혜대태......
어느 땐 조선조의 사고(史庫)에 대해서 외웁니다.
‘춘충성전- 춘오태마- 춘오태정 - 소동서서‘ (중략)그런데 어느날 일제시대의 문학에 대해서 강의하시던 선생님은 이 세계의 모든 문학은 사조별로 ‘고낭사자상초‘, 즉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순으로 발전돼 온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외워두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외우는 척하다가 나는 그즈음 동생에게서 빌려 읽던 ‘어린 왕자‘에 생각이 미쳐 ‘쌩떽쥐베리는 무슨 주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런 건 몰라도 된다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절대로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혜순 1991,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책나무 출판, 89-92쪽) - P162

 다른 예를 들어보면 지방 국민학교 교사가 <우리 고장 이야기>라는 주제로 공부하는 시간에 그 고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아이들이 집에 가서 "우리 선생님은 공부는 가르치지 않고 이야기만 한다"고 일렀다는 것이다. 몇년 전에 나는 국민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 마지막부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원고를 쓴 적이 있다. 반응을 보기 위해 국민학교 6학년 아이에게 읽혀본 적이 있는데 이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재미는 있지만 교과서는 될 수가 없겠어요. 어디다 밑줄을 쳐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이렇게 국민학교 고학년이면 벌써 입시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재와 같이 형편없는 수준의 사지택일형 시험공부만 하다보면 학생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교과서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현실과 관련이 없는, 외울 수 있는, 그러면서 점수 차이를 낼 수 있는 단편적 지식들"을 요약 정리하고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찾아내기에 급급해진다. - P164

달리 말해서 "문명의 4대 발상지는?" 하고 질문이 떨어지면 퀴즈의 답을 맞추듯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훈련을 누구 못지않게 받게 되며 이때 이들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든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 못한다.
자연히 암기력에 바탕을 둔 기계적인 사고를 하게 될 뿐 다른 식의 사고, 곧 비유적인 사고라든가 독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커다란 틀 안에서 개념과 기준이 먼저 주어져야만 머리를 굴린다. 이 <문화이론> 수업이 괴로운 것은 개념 규정을 확실히 해주지도,
생각을 정리할 기준을 명확하게 주지도 않은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답을 잘 찍어내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실생활과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시험을 잘보는 황금률 중에 하나다. 실생활과 관련시키다보면 헷갈리기 일쑤이고 그러면 틀리게 된다. 적당한 수준에서 머리를 - P164

굴려야 하며 너무 추상적으로나 너무 현실적으로 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부‘를 위한 말과 생활을 위한 말은 일찍부터 분리되며, 삶과 따로 노는 지식이 ‘공식적‘ 지식으로 군림하게 된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을 조립하는 기계적인 사고훈련만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은반복적 ‘공부‘ 과정에서 엄청난 ‘의지력‘과 참을성도 기르고 극심한 경쟁심도 갖추게 되며 자기 속의 소리를 듣기보다 항상 남(특히 입시출제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 기술도 배운다. 이런 모든 능력은 거대규모의 생산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산업 역군이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자질들인지도 모른다. 상관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경쟁심을 늦추지 않으며 시키는 일이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않아도 기계적으로 꾸역꾸역 해내는 인내심을 가진 탈정치화된 인력양성의 차원에서 말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단순 체제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 P165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그 책이 출현한 구체적역사성 속에서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저자가 뜻한 바를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사실상 우리는 그 동안 외부에서 들여온 책을 쉽게 구입할 수도 없었고 또 정확하게 읽어낼 환경에 있지도 않았다. 비록 지적소유권 문제로 서구 사회에서는 우리를 ‘비신사적‘ 미개인으로 낙인을 찍었더라도 복사기 덕분에 우리는 이제 많은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벌레 같은 많은 서양 유학생출신 학자들 덕분에 그런 책들을 꽤 정확하게 읽어낼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의 번역 수준을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분명 진전은 보인다.
하여간 ‘정확하게‘ 읽어 내었다 해서 그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학생들의 글 읽기에서 보았듯이 끊임없이 이론서를 읽고 그 개념들을 익히고 그것의 한계를 꼬집어 내고는 또 다른 책으로 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기는 궁극적으로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책 쓰기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책을 적극적이고 창조 - P183

적으로 ‘잘못 읽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가는작업은 비판적 성찰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 종말론적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을 확보해 가는 것과 직결된 행위이기도하다. 헤롤드 불룸은 "적 역사는 적 영향력이다"라면서 시인들이선배 시인들의 시를 誤讀함으로써 자신의 상상적 공간을 개척해 갔음을 드러낸 바 있다. 문학적 창작행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생각은 ‘잘못 읽음‘의 결과일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사회적 조건과 인지 양식에 따라 매우 달리 읽히게 마련이며 이달리 읽음을 제대로 해낼 때 ‘자기‘가 표현되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 P184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세상을 바로 읽는다.
그렇다. 바로 읽는다.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총체적"으로 읽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는세상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토론하며 보다 낫게 하는 식으로, 비판적이고실천적으로 읽는다는 말이다. - P186

스승이 없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보편적 법칙에 ‘매달리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논문 끝에 붙은 참고서의 절반넘어가
꼬부랑 글자인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선배들의 눈치는 심하게 살피면서
학문적 노고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믿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내 삶을 이론화하지 못하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 P187

서양인들이 새로운 시민사회 질서를 형성하고 효율적인 산업화를 해내기 위해서 보편성을 강조했다면 식민지에서는 식민종주국을따라가기 위해서 ‘보편성‘에 매달려 온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강조되는 보편성의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서양의 경우는 개인의의견이나 기존의 규범이 잘못될 수 있으며 따라서 보다 보편적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방법상의 보편성이 강조되었다면 우리의 경우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결과의 면에서 보편성이 부각되어 왔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이미 이론화된 것에 대해서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않으며 그 이론의 법칙성을 ‘틀리지 않게‘ 읽어내는 면만 강조하였던 것이다. - P189

그러나 틀리지 않게 읽는다는 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양이론가의 직속제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직속제자들은 각자의 일상적 체험과 마음 깊숙히 자리한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학문은 기존이론을 다르게 읽어냄으로 발전한다는 기본상식이 거부당한 풍토에서 지식인들이 건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지식인들의 심리적 측면은 내적억압에 대한 외면과 자기 분열, 급진적 보상주의와 무기력감을 둘 수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성이 현재의 입시 위주 교육과 깊은 관련속에서 재생산되고 있음을 앞에서 보이고자 했는데 사실상 이는 입시•위주 교육의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서 찾아져야 한다. 지식이 겉도는 우리네 삶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과 그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적 논의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P189

우리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지식의 불모지에서 살아왔고, 그래서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보잘것없는 꼴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단편적이고 횡설수설하는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움을 심는 세대‘는 그 ‘보잘것없는 우리 이야기‘의 터에 씨를 심어가야 할거다. 그 속에 ‘발가벗은 임금님‘을 발가벗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서로를 감싸주는 이야기도 있으며 세대로 이어갈 지혜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무수한 ‘겉도는 말‘에유혹 당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주면서 우리의 삶을 토론할 수 있는
‘말‘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자. 우리 삶 한가운데서 나오는 지식, 자신의 내면에서 삭혀서 나오는 글을 쓰자. 힘을 빼기보다 힘을 솟게 하는글,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조급함 속에서 쓴 글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가는 여유 속에 쓴 글, 생각을 풀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글을말이다. 겉도는 말을 쓰라고 부추기는 준거집단을 가졌다면 지금은 용기있게 그 물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삶을 헛돌게 하는 강의에 참을성을 잃고 교실을 스스럼없이 걸어나갈 수도 있어야 할거다. - P193

이렇게 이제껏 미화되어온 가부장적 현상의 밑바닥을 노골적으로 공론화함으로써 그는 많은 독자들을 분노하거나 감동케 만들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박완서의 책을 읽고 각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켜 왔다. 우리가 위의 비평에서 읽었던 내용도 실은 그 분쟁의 생생한 일부인 것이다. 바로 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이 박완서가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두번째 주제이다.
박완서는 여성 독자들에게 새로운 글 읽기 체험을 하게 하였다. 이제껏여성들은 아버지의 서재를 기웃거리는 즐거움,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여유있는 방황과 방랑을 엿들으며 그것이 글 읽는 즐거움인 줄로만 알았다. 별로 재미없는 글도, 재미있는 척 읽어야 했으며 또 남성들의 글 쓰기 흉내를내거나 그들의 기호에 맞는 글을 쓰느라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다. 이제 박완서는 여자들로 하여금 직접 길을 떠나고 또 방황하게 함으로써 그 길 떠남이 책 읽는 재미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흉내내지 않는 글 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들로 하여금 서 있는 것, 글을 쓰는 것,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진지한 토론을하게 하는 것이다. 한낱 사치였던 책 읽기가 이제 삶의 실천의 장으로 들어 - P252

왔다. 여자들의 안방을 사회와 연결시키고 여자들의 수다를 담론화한다. 여성들의 글 읽기와 글 쓰기의 정치성이 박완서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그 작품에 관한 담론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 이야기꾼과 남성 이야기꾼이 즐겨 삼는 이야기의 주제, 등장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스타일이 다르고 또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독자가남자인지 여자인지,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에 따라서 그 글 읽기가 상당히•달라진다는 점을 한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는 구태여 이런 전제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쓰고 또 읽게 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가부장적인 전제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신이 자유롭게 떠놀던 물의 성격을 알아가는 것과 같아서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결코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내야 한다. - P253

비평가는 책을 읽는 사람이며 그 행위는 일반 독자가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이 글에서 말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평가는 이야기꾼을 격려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의 작품세계의 의미를해독하는 데 좀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글을 쓰면서 성의 있는 독자이고자 노력을 했으나 여기에 언급한 모든 비평가들에게 당당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경황없이 쓴, 무성의한 글, 그리고 독단적인 ‘죽임‘의 글을 읽어야 하는 괴로움에 더하여두어편의 비평문에 대해서는 ‘살려내기보다‘ 죽이는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찜찜함도 없지 않다. 끝마무리를 그나마 한 것은 ‘죽임‘의 비평을 ‘죽임‘으로써결국은 ‘살림‘의 글로 읽힐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여간 글은 한번 쓰면 글쓴이의 손을 떠나 공공적 재산이 되어버린다. 개개 이름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내가 알아낸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작가를 통해 확 - P253

인할 의사가 애초부터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삶 읽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한 책 읽기가 가장 옳은 것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어차피 우리는 주관적 인식에 근거하여 글을 쓰며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은 작가가, 독자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내는 담화 속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런 담화를 담아갈 열린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다.
아니, 그냥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다. 닫힌 것은 공동체가 아니니까....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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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공감 가는 부분은 ‘편안한 삶, 계획, 계략‘과 작가로서의 ‘내‘가 가지는 현실주의냐? 작가라는 껍데기로 위장한 채 그렇고 그런 ‘내‘가 가지는 현실주의냐?를 묻는 부분이다. 마치 입시에서처럼, 취직이라는 것에 다시 걸려 있는 대학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이겠고 특히 운동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던 사람이라면 좀더 심각한 문제로, 한 2학년후반부쯤 되면 안게 되는 반복되는 지겨운 문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적당히 사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그런다는 것은 너무 수세적인 것 같고 빈 배알을 가지고 사는 비생명적인일이라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나 말뿐인 때가 너무 많았기에 조심스러워진다. 앞으로 실천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역시 우리 말,
우리 글로 쓰여진 우리의 얘기가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87학번 사회학과 4학년 한솔)

모든 글은 새롭게 쓰여지거나 다시 고쳐 쓰여지기 위해서 쓰여진다. 우리는 책의 독자이자 동시에 저자인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사회•적 삶이 변하는 한 진리일 수밖에 없다. "텍스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적극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는 명제를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보기위해 동화를 읽어보기로 하였다. - P61

글 쓰기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이 어릴 때 별 생각없이 읽어온 동화가 실은 서양의 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쓰여졌으며 또 계속 새로 쓰여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학생들은 충분한 충격을 받았다. 먼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백설공주>의 원본이라고 제시하는, 이링 페처가 쓴 판본을 들어보자. - P62

문제는 사회 성원들이 주체적 문화 향유자와 문화 창조자가 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시주체적 책 읽기를 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주체적 책 읽기는이 시대에 특권이 아니라 짐이며 의무인 것이다!)특히 인쇄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우리는 집에서 몇십만 원짜리컴퓨터 하나로 책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구태여 찍어내지 않고 전자통신을 통해 자신의 소설을 선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 새로운 동화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따라서 작가가 가난한 때문이 아니다. 인쇄공장을 소유한 자의 횡포 때문도 아니다. 광고를 해주지 않는 신문사측을 나무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우선은 좋은 이야기가 쓰여지지 않는데 있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 이야기 쓰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이야기를 읽지 않는 것일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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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
미국, 1912.5.27~1982,1,18,


환상과 반어적인 희극을 통해 미국 중산층의 삶과 도덕성을 정말하게 묘사했다. 우아하면서도 명료한 문체를 사용하고 사건과일을 치밀하게 접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전에 157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해 미국 문단에서 단편소설의 전통을 다지는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2년 매사추세츠 주 퀸시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외롭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 예비학교인 세이어 아카데미 재학 시절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퇴학당한 경험을 토대로 쓴 단편소설 「퇴학」을 「뉴 리퍼블릭」에 발표한다. 독서와 창작에 매달리며 착실하게 작가수업을 했고, 1934년 「브루클린 하숙집」을 「뉴요커』에 발표하면서 40년 동안 이어진 뉴요커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후 단편소설뿐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대본, 잡지 기사 등 다양한 글을 썼고 아이오와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첫 단편집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시작으로,「거대한 라디오」, 「셰이디 힐의 가택 침입자』, 『여단장과 골프 과부 사과의 세계」, 「존 치버 단편집 등 일곱 권의 단편집을 냈다. 「존 치버 단편집으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첫 장편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그 속편에 해당하는 「왑샷 가문 몰락기」 또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치버는 비평가 존 레너드가 ‘교외의 체호프‘라고 부를정도로, 미국 교외 중산층의 일상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1982년 미국 예술원으로부터 문학 부문 국민훈장을 받았고, 그로부터 6주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치버 
인물들이 작가에게서 달아난다는 얘기, 즉 인물들이 마약을하고 성전환 수술을 하고 갑자기 우두머리가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의 기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거나 숙달하지 못한바보라는 뜻이죠. 한마디로 황당한 얘기예요. 상상력을 극도로 발휘하면 머릿속에 담긴 정보가 복잡해지고 풍부해지면서, 생명체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거나 빛과 어둠에 반응하듯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나요.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바보 같은 발명품보다 뒤처져 무력하게 뛰어다닌다는 생각은 한심하지요. - P392

소설가는 비평가이기도 해야 하나요?


치버 
저는 비판적인 어휘력이 부족하고 비평하는 재능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인터뷰 진행자들의 질문에 얼버무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문학비평 능력은 주로 실용적인 수준이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활용하는데, 무엇이든 해당되지요. 카발칸티, 단테, 프로스트 등누구든 해당되지요. 원하는 부분을 책에서 뜯어내기 때문에 서재는늘 어수선하고 지저분해요. 작가가 문학을 지속적인 과정으로 바라볼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적은 문학작품이 살아남을 겁니다. 제 생애의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채워준 책들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서 유용성을 잃어버렸죠. - P392

그렇다면 비판적 어휘가 부족하다는 가정 아래, 공식적인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상당한 학식을 갖추게 되셨나요?


치버
전 학구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동료들의 박식함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물론 전 무식하지는 않아요. 문화 수준이 높은 뉴잉글랜드에서 자란덕분이겠죠. 가족들은 모두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노래하는 걸즐겼는데, 특히 책을 많이 읽었어요. 어머니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열세 번 읽었다고 주장했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이아니에요. 그러려면 평생이 걸릴 테니까요.



「왑샷 가문 연대기에서 누군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치버 
맞아요. 오노라가 그랬죠.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녀는그 책을 열세 번 읽었다고 주장했죠. 어머니는 『미들마치』를 읽다가 정원에 내버려두곤 해서 비를 맞히기도 했어요. 이 일화는 소설에 나옵니다. - P393

치버
각양각색의 유쾌하고 지적인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사려 깊은 편지를 보내줍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사람들이죠. 광고와 저널리즘, 심술궂은 학계의 편견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독립적인 삶을 즐기도록 해준 책들을 생각해보세요. 제임스 에이지의 『이제 유명인들을 칭송하자』,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 솔 벨로의 『비의 왕 헨더슨』과 『훔볼트의 선물』 같은 뛰어난 책들은 혼란과 경악이 뒤섞인 반응을 얻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양장본으로 펴낸 그 책들을 샀지요. 나무가 내다보이는 작업실 창문 앞에서 진지하고 사랑스럽고 신비한 독자들이 그곳에 있다고 즐겨 생각한답니다. - P398

당신의 소설은 확실히 빠른 속도로 진행돼요.


치버
미학의 첫 번째 원칙은 흥미 아니면 서스펜스지요, 따분한 사람과 누가 이야기를 나누려 하겠어요.



윌리엄 골딩‘은 두 부류의 소설가가 있다고 했어요. 한 부류는 의미가 인물이나 상황 전개에 따라 발전해가도록 내버려두는 소설가, 다른 부류는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의미를 구현할 신화를 찾는 소설가. 골딩은 두 번째 소설가의 예시지요. 그는 디킨스가 첫 번째 부류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이 둘 중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치버 
골딩이 무슨 소리를 한 건지 모르겠군요. 장 콕토는 "글이란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기억의 힘"이라고 말했어요. 그 말에는동의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글은 잠재의식에 이르는 직통선."이라고 묘사했지요.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책들은 처음 펼친 순간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줘요. 기억의 방과 다름없이 창작물이지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 한 번도 보거나 듣지 못한 것들이지만 완벽한 적합성 때문에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죠. - P408

아네트 그랜트 
Annette Grant 
문학과 예술 전문 기고가로, 소설가와 미술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해 「뉴욕타임스」와 「파리 리뷰」 등에 실었고, 연극, 미술 관련 칼럼을 오랫동안 써왔다 - P414

가즈오 이시구로 영국, 1954.11.8~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낸 작품들을발표해 현대 영미 문학을 이끌어가는 거장이라고 평가받는다.
대표작인 ‘나를 보내지 마는 「타임」 선정 100대 영문소설‘, 2006년 전미도서협회 알렉스 상, 2006년 독일 코리네 상을 수상했고, 3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고,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전쟁의 상처와 현재를 교차해 엮은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기념상을 받았고, 전쟁 후 일본의 상황과 생활을 노화가의 눈으로 회고한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스칸노 상을 받았다.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로부터 "마술에 가까운솜씨"라는 찬사를 받았고, 영어판이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20여 개국에서 출간되어 대중적 성공까지 거두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튼햄 상을 받았고,
『우리가 고아였을 때도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보내지 마』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훈장과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다.

대여섯 살 이후로 일본에서 살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전형적인 일본인이셨나요?


이시구로 
어머니는 그 세대의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에요. 특정한 종류의 예의가 몸에 배어 있어요. 오래된 일본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의 여성이 제 어머니처럼 말하고 행동하더라고요. 일본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자와 약간 다른 공식 언어를 썼는데 요즘에는 많이 뒤섞인 것 같아요. 어머니는 1980년대에 일본을 방문하셨을 때, 젊은여성들이 남자의 언어를 쓰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씀하셨어요.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어머니는 나가사키에 계셨어요. 십대후반이었죠. 어머니의 집은 뒤틀렸고, 비가 쏟아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피해의 규모를 깨달았어요. 토네이도가 덮친 것처럼 지붕 여기저기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어요. 폭탄이 떨어졌을 때 부상을 당한 사람은 어머니뿐이었어요. 파편에 맞은 거죠. 나머지 가족들, 그러니 - P426

까네 명의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도움을 보태려 시내로 나갔을 때어머니는 몸을 회복하기 위해 혼자 집에 있었대요. 그런데 전쟁을생각하면, 가장 두려웠던 건 원자폭탄이 아니었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의 지하 방공호에 있던 때를 떠올리시더라고요.
모두 어둠 속에서 정렬해 있었고, 폭탄이 방공호 위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다들 죽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아버지는 상하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전형적인 일본인은 아니었어요. 중국인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서, 나쁜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웃음을 짓곤 하셨어요.



가족들은 왜 영국으로 이주했나요?


이시구로 
처음에는 짧은 여행만 할 계획이었어요. 아버지는 해양학자였고, 영국국립해양연구소에서 초청했어요. 폭풍해일의 움직임과관련된 연구를 계속하라면서요. 전 그게 뭔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국립해양연구소는 냉전 중에 세워졌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였죠. 아버지는 숲 속에 있는 그 연구소에서 일했고, 전 딱 한 번 가봤어요. - P427

약력을 보니 뇌조 몰이꾼을 했다고 나오던데요.


이시구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은 첫 여름에, 왕실의 여름 별장인 밸모럴 성에서 일했어요. 그 시절에는 지역 학생들을 뽑아 뇌조몰이꾼으로 썼죠. 왕실에서는 사람들을 초대해 사냥을 하곤 했어요. 엘리자베스 왕대비와 손님들은 엽총과 위스키를 들고 랜드로버에 올라 사격용 흙 둔덕들을 옮겨 다니며 황무지를 누볐어요. 저를 포함한 뇌조 몰이꾼 열다섯 명은 황무지 맞은편에서 대형을 이루어 걸어 다녔는데, 100미터쯤 간격을 두고 덤불로 다가가요. 뇌조는 덤불 속에 사는데, 우리가 다가가는 소리를 들으면 폴짝폴짝 뛰어요.
왕대비와 손님들이 엽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둔덕을 향해 뇌조들을 몰고 가죠. 둔덕 근처에는 덤불이 없어서, 뇌조들은 날아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사격이 시작돼요. 우리는 다음 둔덕을 향해 걸어가죠. 골프와 조금 비슷해요. - P436

이시구로 
정기적으로 봤죠. 한번은 왕대비가 제가 맡은 구역 쪽으로 왔는데, 그곳에는 저와 다른 여자애 한 명뿐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죠. 우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왕대비는차를 타고 떠났어요. 그건 비공식적인 방문이었어요. 왕대비는 직접총을 쏘진 않았지만 자주 모습을 드러냈어요. 당시에 같이 일하던친구들은 술을 엄청 마셔댔고, 서로 무척 친했어요. - P437

어떠셨어요?


이시구로 
재밌었죠. 그런데 더 흥미진진한 건 그런 사유지를 관리하는 사람들, 즉 사냥 안내인들의 세계였어요. 그들은 우리 중 누구도스코틀랜드 학생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썼어요. 그들은 황무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죠. 성격은 거칠었는데, 우리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공손하게 대해줬어요. 하지만 뇌조사냥이 시작되면 달라졌죠. 우리가 완벽한 대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어요. 우리 중 누구라도 대형을 이탈하면, 뇌조들이 달아나버리니까요. 그래서 안내인들은 선임 하사관처럼 변했어요. 벼랑 위에 서서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욕을 퍼부어댔죠. 그야말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댔어요. "이 빌어먹을 놈들아!" 벼랑에서 내려오면 다시 공손하고 정중하게 변했어요. - P437

남아 있는 나날」에서 영국이라는 배경은 어떻게 설정하게 됐나요?


이시구로
아내의 농담에서 시작됐어요. 첫 장편소설을 낸 뒤 어떤기자가 인터뷰하러 왔을 때였죠.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 사람은 당신 소설에 대해 온갖 진지한 질문을 하러 왔는데, 당신이 내 집사인척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우린 무척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은유로서의 집사에 집착하게 됐죠.



무엇에 대한 은유인가요?


이시구로 
두가지예요. 하나는 특정한 종류의 정서적 냉랭함이에요.
영국의 집사는 지독할 정도로 조심스러워야 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어떤 개인적 반응도 보여서는 안 돼요. 그게 영국적 특징은물론이고, 감정적으로 관여하기를 겁내는 우리의 공통된 부분을 다룰 좋은 방법처럼 보였어요. 다른 하나는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을 상징하는 집사예요. 그는 말해요. "저는그저 이분에게 봉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대리인으로서 - P445

사회에 기여하겠지만 저 자신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든 그렇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입장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중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 있지 않아요 우린 그저 우리가 맡은 일을 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우리의 작은 기여가 제대로 활용되기만을 바라죠.



지브스의 팬이셨나요?


이시구로 
지브스가 큰 영향을 미쳤죠. 지브스만이 아니라 영화에서단역으로 나오는 모든 집사 캐릭터가 그랬어요. 그들은 미묘하게 유패했어요 슬랩스틱 유머와는 거리가 멀죠. 보통은 좀 더 당황한 표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딱딱하게 말하는 그들의 방식은 어떤 비애를 자아냈어요. 지브스는 그 분야의 최고였죠.
그때까지 저는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려고 의식적으로노력하고 있었어요. 앞선 세대의 영국 소설에서 감지된 지방색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단순한 부담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동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영국독자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중에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잉글랜드의 신화를 가져오는 것이었어요. 이 경우에는 영국의 집사였죠. - P446

어떤 점이 좋았나요?


이시구로 
소설에서 창조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소 비슷하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니까요. 푹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내러티브에서 확신이 느껴지는데, 플롯과 구조와 인물이라는 전통적인 수단을 사용한 내러티브죠.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때문에 견고한 토대가 필요했어요.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와 『제인에어』,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소설, 체호프의 단편소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6종 가운데 적어도 5종. 그런 책을 읽으면, 견고한 토대를 갖게 되지요. 그리고 플라톤을 좋아합니다.



이유는요?


이시구로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는 대개 이런일이 일어나요. 어떤 사람이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그 사람을 불러앉힌 뒤 그의 생각을 뒤집어버려요. 파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선한 것의 본질은 파악하기어렵다는 게 핵심이에요. 때로 사람들은 틀릴지도 모르는 신념을 전 - P457

력으로 붙잡고, 삶의 근거로 삼아요. 그게 제 초기 작품들이 다루는내용이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소크라테스 같은 인물은 없어요.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은 두세 번 실망하면 대개 염세적으로 변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구절이 있어요. 플라톤은 선의 의미를 찾는 문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거예요. 퇴짜를 맞더라도 환멸에 빠져서는 안 돼요. 우린 그저 그 탐색이 어렵다는 걸 발견한 것뿐이고, 탐색을 계속할 의무가 있어요. - P458

수재너 휴뉴웰
Susannah Hunnewell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타임스」에서 일했고, 「파리 리뷰」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 P458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스 1535. 8. 21.-2004. 5. 24.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랑‘을 필명으로 삼았다. 19세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단에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받았다.


1935년 남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소르본대학을 중퇴했다. 1954년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작가로서 인정받았고, 같은 해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수상했다.
사강은 섬세한 심리 묘사에 탁월했는데, 사랑의 파국이나 작중 인물의 고독을 간결한 필치로 잘 묘사했다. 작품의 소재에 있어서는 당시의 정치나 사회 문제와 관련을 두지 않았지만 본인은 한때 알제리 해방 전선의일원이었고 때때로 정치나 사회 문제에도 소신 있는 발언을 했다.
「한 달 후, 일년 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신기한구름」, 「뜨거운 연애」 등의 소설과 스웨덴의 성」, 「바이올린은 때때로 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화려하게 젊은 날을 보내고 황폐한 노년을 보내다 2004년 생을 마감했다.

그럼 현실을 곧이곧대로 가져오는 게 속임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사강 
예술은 기습적으로 현실을 가져와야 해요. 예술은 우리가 별의미 없게 여기는 한순간을 가져오고, 다시 또 한순간을, 그리고 또다른 순간을 가져와서는 그 순간들을 재량껏 바꿔서 지배 정서로결합된 특별하고도 연속적인 순간을 창조해요. 제가 보기에 예술은선입관에 따른 현실을 제시해서는 안 돼요. 소위 사실주의 소설이라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건 없어요. 그런 소설들은 한마디로 악몽이에요. 소설에서 어떤 감각적 진실, 그러니까 인물의 진정성을 획득하는 건 가능해요. 그게 전부예요. 물론 예술이 주는 환상은 위대한 문학이 삶과 매우 비슷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겠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실은 그 반대예요. 삶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문학은 형식이 있잖아요. - P468

어떤 프랑스 작가들을 존경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사강 
잘 모르겠어요. 스탕달과 프루스트는 틀림없어요. 그들의 탁월한 내러티브가 좋아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들은 제게 분명히필요해요. 프루스트 이후로 다시는 해낼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그는 우리에게 재능의 경계를 표시해주는 사람이에요. 또한인물 처리의 가능성을 보여주지요.



프루스트의 인물과 관련해 특히 어떤 점이 인상 깊은가요?


사강 
사람들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만큼 인물에 대해서는 알지못한다는 점이에요. 제게는 그게 가장 훌륭한 의미의 문학이에요.
그토록 오랫동안 분석을 하고도 우린 스완의 생각과 면면을 전혀알지 못해요. 당연한 일이에요. 사람들은 "스완이 누구였지?"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프루스트가 누구였는지 아는 것만으로충분해요. 뜻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말하면 스완은 프루스트에게 완전히 속해 있고, 프루스트적인 마르세이는 상상할 수있지만 발자크적인 스완은 상상할 수 없어요.‘
- P471

그런 소설가는 늘 같은 사람이고요?


사강 
본질적으로는 그래요. 제 생각에 작가는 하나의 책을 쓰고 그걸 또 고쳐 써요 한 인물을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보고, 한 가지아이디어를 계속 다뤄요. 그저 시각, 방법, 조명만 바꾸지요제가 보기에 소설은 대략 두 종류예요. 선택지는 그 정도예요.
단순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점 때문에 상당히 많은 것을 희생하는 소설들이 있어요. 『슬픔이여 안녕」이나 「어떤 미소와 구조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자맹 콩스탕의 책들처럼 말이에요. 다음으로는 책에서 인물과 사건을 논의하고 탐색하려는 책들이 있지요.
‘논쟁이 일어나는 소설‘이죠. 양쪽 모두 위험은 명백해요. 내러티브가 단순한 소설에서는 중요한 질문들을 간과해버릴 때가 많고, 좀더 긴 고전소설에서는 이야기가 옆길로 빠져버려서 효율성을 해칠수가 있지요. - P472

자신의 한계를 어느 정도까지 인식하고, 야망을 어느 정도까지 억제하나요?


사강 
꽤 고약한 질문이네요. 그렇지 않나요? 전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게최상의 대답이겠네요. 그 외에는 저 자신을 제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었잖아요. 그걸로 인생이 달라졌나요?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과 진지하게 글을 쓰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사강 
물론 책이 성공해서 제 삶이 어느 정도 달라진 건 분명해요.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졌으니까요. 하지만 삶에서의 제 위치로 말하자면, 많이 변하지 않았어요. 자동차가 새로 생겼지만 스테이크는늘 먹어왔던 거예요. 아시다시피 주머니에 돈이 많으면 좋지만, 그게 다예요. 돈을 어느 정도 벌 거라는 예상은 글 쓰는 방식에 조금도영향을 주지 못해요. 저는 글을 쓸 뿐이고, 그 뒤에 돈까지 생긴다면 잘된 일이죠. - P473

블레어 풀러 Blair Fuller 
뉴욕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리 리뷰」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단편소설을 썼다. 이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로버트 B. 실버스 Robert B. Silvers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정치연구소에서 일했다. 「파리 리뷰」의 편집진으로 활동했고,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다. - P474

(1) 여성 작가 묶어 읽기『작가란 무엇인가 3』에 실린 여성 작가는 무려(?) 넷이다. 생년 순으로 나열하자면 어슐러 K. 르 귄(1929), 앨리스 먼로(1931), 수전 손택(1933), 프랑수아즈 사강(1935)이다. 영국에서 21세 이상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때가 1928년이었으니, 이 여성 작가들은 성차별이 끈질기게 잔존하는 사회에서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탐색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톨킨, 루이스와 더불어 SF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어슐러 K. 르귄은 인터뷰에서도 밝히지만 『어둠의 왼손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 게센인을 남성명사인 ‘he‘라고 지칭한 점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르 귄의 초기 작품은 남성적인 세계다. 르귄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은, 남성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적으로 탈출구를 향해 가며 결국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주제와 문체를 찾아내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479

앨리스 먼로는 201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몇 가지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캐나다 최초의, 그리고 단편소설 작가로서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여성 작가로는 13번째 수상이다. 그런데인터뷰에서 느껴지는 먼로의 소박한 모습은 오히려 독자를 당황케 한다.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썼다는 대목은 놀랍고도감탄스럽다. 글쓰기에 집중할 여건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그녀가 기울였을 엄청난 노력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편 수전 손택은 이런 먼로와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질 만큼 파격 - P479

적인 삶을 산 주인공이다. 소설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극작가…… 그녀를 뭐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열정, 기쁨, 아름다움, 기록, 욕망, 저항, 행동... 자신의 삶을 끝없이 새롭게 빚어나간 손택은 시대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대가 그녀의 그림자였다. 결혼과 출산, 이혼을 거쳐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작가로서도 의미있는 도약을 한 손택, 스스로가 타인이었기에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수밖에 없었던 손택,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했던 그녀의 매력은 인터뷰 밖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터뷰는 ‘당당한 젊음의 초상‘이라고불러도 좋을 듯하다. 젊음의 특권인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한시절이 짧지만 강렬한 인터뷰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 P480

(2) 낯선 작가부터 읽기
이 책에 인터뷰가 실린 작가들은 명성이 자자한 대가들이지만 독자에따라 친숙하지 않은 작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낯선 작가는 내용을 알수 없는 보물 상자다. 친숙하지 않은 작가의 인터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작품 목록도 낯설고, 그래서 그가 어떤 맥락과 뉘앙스로 이야기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 답으로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쓰라"고 주장하는 김연수 작가의 말을 빌려야겠다. ‘일단‘ 읽으라. 모르는 책제목이 나와도 일단 읽자. 도대체 이 인터뷰에서오가는 이야기가 뭔지 궁금해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작가가 거론하는 책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읽자. 일단 읽으면그 읽기가 다음 발걸음을 인도해줄 것이다. 낯선 섬이 보이는가? 일단 - P480

그 섬에 오르라. 한 걸음씩 내딛으라. 당신의 세계가 확장되고 지도는더욱 세밀해질 것이다. 그러니 독자여, 독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단읽자.


(3) 지금 읽고 나중에 또 읽기
프리모 레비는 1985년에 파리 리뷰』와 인터뷰를 하고 2년 뒤인 1987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가 자라났으며 생을 마감한 집에서, 부드럽고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레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목소리 뒤에 잠재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독자로서는 뜻 깊게도, 레비가 죽기 전해인 1986년에 발표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2014년 5월에 번역 출간됐다. - P481

온 나라가 세월호 사건에 경악하며, 그 비극의 여파 속에서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하던 때였다. 아우슈비츠와 레비, 세월호와 한국의 독자들. 한국에 번역된 레비의 작품 제목 몇 개를 나열하기만 해도 독자가 얻을 수 있는 통찰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인가「살아남은 자의 아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레비의 작품은 과거에 읽고 오늘 또 읽어도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작가 인터뷰도 지금 읽고 나중에 또 읽을 가치가 있다. 사실 이책은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선택한 덕분(혹은 탓)에, 독자의 도서 목록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그 긴 목록을 천천히탐험해나가라. 음악을 들을 때처럼 선율을 미리 넘겨짚지 말고 지나간선율을 되뇌지도 말고, 바로 이 순간 귀에 와 닿는 선율만을 따라가듯이 천천히 읽기를 바란다. - P481

독자란 무엇인가?


이제 독자는 눈치 챘을 것이다. 이 후기를 통해 역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작가란 무엇인가?"나 "작가 인터뷰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독자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간단히 말해 독자는 ‘공유‘하는 사람이다. 읽는 행위는 순간이고 언제나 진행형이므로 독자는 현재라는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통해 포착된 작가의 현재를 공유하고, 수많은 다른 독자들과 독서라는 경험을 공유한다.
독자가 작가란 무엇인가 3』을 통해 확장된 자신의 세계를 공유해준다면, 그래서 어느 날 웹 세상을 떠돌다가 그 공유의 기록을 만난다면 참으로 반가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독자에게 미리 감사를 전한다.

옮긴이 김율희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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