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랭킹‘은 평소 내가 사용하지 않는 말이므로, 이 글은 잠시 일탈이다. 지식인은 해체된 지 오래된 단어다. 임시 복원한다면, 자기 노동과 일상을 언어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있다. 통념적 의미로 그냥 쓴다면, 우리 사회에는 세 유형의 지식인이 있다. 지식이 없는 사람, 지식인이라고 주장하고 간주되는 사람, 서구 지식과 ‘지금, 여기‘의 경합을 쓰는 사람이다. 조혜정 ‘선생님‘은 세 번째에 속하는 극소수 중 한 사람이자, 그중에서도 선구자다.
종종 출판 단체나 신문사에서 ‘명저 50선‘이나 ‘주목받는 저술가‘ 같은 명단을 만드는데, 재고되어야 한다. 사회 각 분야는 다양하다. 보이지 않는 분야가 너무 많다. 레즈비언이나 장애인 관련 도서는 선정되기 힘들다. 하지만 만일 나더러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책 열 권을 선정하라면 아홉 권은 모두 이 책 다음이다.

정희진처럼 읽기 P- 231

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입장 천명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보다 지금까지 교실에서 해온 논의와 연결하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개집단이 만들어내는 언설의 구조를 뚫어보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랐다. 감을 잡아내기 어려웠던 언설의 문제가 불꽃 튀는 현실로 나타난만큼, 텍스트의 당파성과 언설이 갖는 힘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있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그 ‘큰 목소리‘들이 실은 얼마나 미약하기에 손쉽게 매스컴에 의해 요리되어 버리는지, 그래서 통치자들이 얼마나 손쉽게 지식인들을 분열시키고 통치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동안 커온 지식인들이 지속적인 토론공동체적인 문화 그것이 가족문화이든 또래문화이든 운동권문화이든 간에 속에서 자라오지 못하였으므로 토론에 미숙할 수밖에없으며 그래서 필요 이상의 강한 어조와 독선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논리적‘, ‘현학적‘ 치장을 하게 된다는 것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상대방의 말을 그 말하는 스타일이나 성격도 감안하며 본래 선한 의도로읽어내기보다 감정적으로, 또는 꼬투리만 잡는 식으로 읽는 경향이 강 - P120

한 지금의 지식인 사회의 극심한 당파성과 무성한 "토론 없는 토론들"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어쩌다 나온 선견지명도여지없이 사그러져 간다는 것도....
자신을 감춘 ‘이론적 책 읽기‘나 입장 천명에 급급한 ‘감정적 책 읽기‘를 하는 식자 사회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이렇게 극단적 규범주의와 교조적 유물론자로 당파가 갈려 싸우기 시작한 것은? 물론 입장은 없이 극단적 명분론만 되뇌이던 때에비한다면 우리 지식인 사회는 근래에 들어서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대다수 지식인들이 자기가 선 자리를 점검해 보고 자신을 비추어볼 비판의 거점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분명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적 토론은 그것이 삶을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하다. 그런데 ‘내‘가 없는 토론에 익숙해진 지식인, 문화 읽기를 어려워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풍토에서 그런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 P121

오늘이 통일신라의 종교에 대해서 배우는 날이라면 선생님은 먼저 신라의 종파에는 ‘5교 9산‘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중략) 첫머리 글자인
‘열, 계, 법, 화, 법‘을 따서 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노트에 ‘열계법화법‘이라고 써놓고 맹렬하게 외우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다시 열반종의 중심 사찰은 경복사 (중략) 우린 다시 사찰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경통분부금, 경통분부금, 경통......?
선생님은 또 고려시대의 구호시설에 대하여 외우라고 하십니다. ‘흑의상제헤대태, 흑의상제혜대태......
어느 땐 조선조의 사고(史庫)에 대해서 외웁니다.
‘춘충성전- 춘오태마- 춘오태정 - 소동서서‘ (중략)그런데 어느날 일제시대의 문학에 대해서 강의하시던 선생님은 이 세계의 모든 문학은 사조별로 ‘고낭사자상초‘, 즉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순으로 발전돼 온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외워두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외우는 척하다가 나는 그즈음 동생에게서 빌려 읽던 ‘어린 왕자‘에 생각이 미쳐 ‘쌩떽쥐베리는 무슨 주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런 건 몰라도 된다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절대로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혜순 1991,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책나무 출판, 89-92쪽) - P162

 다른 예를 들어보면 지방 국민학교 교사가 <우리 고장 이야기>라는 주제로 공부하는 시간에 그 고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아이들이 집에 가서 "우리 선생님은 공부는 가르치지 않고 이야기만 한다"고 일렀다는 것이다. 몇년 전에 나는 국민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 마지막부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원고를 쓴 적이 있다. 반응을 보기 위해 국민학교 6학년 아이에게 읽혀본 적이 있는데 이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재미는 있지만 교과서는 될 수가 없겠어요. 어디다 밑줄을 쳐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이렇게 국민학교 고학년이면 벌써 입시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재와 같이 형편없는 수준의 사지택일형 시험공부만 하다보면 학생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교과서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현실과 관련이 없는, 외울 수 있는, 그러면서 점수 차이를 낼 수 있는 단편적 지식들"을 요약 정리하고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찾아내기에 급급해진다. - P164

달리 말해서 "문명의 4대 발상지는?" 하고 질문이 떨어지면 퀴즈의 답을 맞추듯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훈련을 누구 못지않게 받게 되며 이때 이들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든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 못한다.
자연히 암기력에 바탕을 둔 기계적인 사고를 하게 될 뿐 다른 식의 사고, 곧 비유적인 사고라든가 독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커다란 틀 안에서 개념과 기준이 먼저 주어져야만 머리를 굴린다. 이 <문화이론> 수업이 괴로운 것은 개념 규정을 확실히 해주지도,
생각을 정리할 기준을 명확하게 주지도 않은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답을 잘 찍어내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실생활과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시험을 잘보는 황금률 중에 하나다. 실생활과 관련시키다보면 헷갈리기 일쑤이고 그러면 틀리게 된다. 적당한 수준에서 머리를 - P164

굴려야 하며 너무 추상적으로나 너무 현실적으로 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부‘를 위한 말과 생활을 위한 말은 일찍부터 분리되며, 삶과 따로 노는 지식이 ‘공식적‘ 지식으로 군림하게 된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을 조립하는 기계적인 사고훈련만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은반복적 ‘공부‘ 과정에서 엄청난 ‘의지력‘과 참을성도 기르고 극심한 경쟁심도 갖추게 되며 자기 속의 소리를 듣기보다 항상 남(특히 입시출제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 기술도 배운다. 이런 모든 능력은 거대규모의 생산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산업 역군이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자질들인지도 모른다. 상관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경쟁심을 늦추지 않으며 시키는 일이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않아도 기계적으로 꾸역꾸역 해내는 인내심을 가진 탈정치화된 인력양성의 차원에서 말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단순 체제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 P165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그 책이 출현한 구체적역사성 속에서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저자가 뜻한 바를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사실상 우리는 그 동안 외부에서 들여온 책을 쉽게 구입할 수도 없었고 또 정확하게 읽어낼 환경에 있지도 않았다. 비록 지적소유권 문제로 서구 사회에서는 우리를 ‘비신사적‘ 미개인으로 낙인을 찍었더라도 복사기 덕분에 우리는 이제 많은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벌레 같은 많은 서양 유학생출신 학자들 덕분에 그런 책들을 꽤 정확하게 읽어낼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의 번역 수준을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분명 진전은 보인다.
하여간 ‘정확하게‘ 읽어 내었다 해서 그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학생들의 글 읽기에서 보았듯이 끊임없이 이론서를 읽고 그 개념들을 익히고 그것의 한계를 꼬집어 내고는 또 다른 책으로 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기는 궁극적으로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책 쓰기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책을 적극적이고 창조 - P183

적으로 ‘잘못 읽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가는작업은 비판적 성찰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 종말론적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을 확보해 가는 것과 직결된 행위이기도하다. 헤롤드 불룸은 "적 역사는 적 영향력이다"라면서 시인들이선배 시인들의 시를 誤讀함으로써 자신의 상상적 공간을 개척해 갔음을 드러낸 바 있다. 문학적 창작행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생각은 ‘잘못 읽음‘의 결과일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사회적 조건과 인지 양식에 따라 매우 달리 읽히게 마련이며 이달리 읽음을 제대로 해낼 때 ‘자기‘가 표현되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 P184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세상을 바로 읽는다.
그렇다. 바로 읽는다.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총체적"으로 읽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는세상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토론하며 보다 낫게 하는 식으로, 비판적이고실천적으로 읽는다는 말이다. - P186

스승이 없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보편적 법칙에 ‘매달리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논문 끝에 붙은 참고서의 절반넘어가
꼬부랑 글자인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선배들의 눈치는 심하게 살피면서
학문적 노고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믿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내 삶을 이론화하지 못하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 P187

서양인들이 새로운 시민사회 질서를 형성하고 효율적인 산업화를 해내기 위해서 보편성을 강조했다면 식민지에서는 식민종주국을따라가기 위해서 ‘보편성‘에 매달려 온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강조되는 보편성의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서양의 경우는 개인의의견이나 기존의 규범이 잘못될 수 있으며 따라서 보다 보편적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방법상의 보편성이 강조되었다면 우리의 경우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결과의 면에서 보편성이 부각되어 왔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이미 이론화된 것에 대해서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않으며 그 이론의 법칙성을 ‘틀리지 않게‘ 읽어내는 면만 강조하였던 것이다. - P189

그러나 틀리지 않게 읽는다는 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양이론가의 직속제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직속제자들은 각자의 일상적 체험과 마음 깊숙히 자리한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학문은 기존이론을 다르게 읽어냄으로 발전한다는 기본상식이 거부당한 풍토에서 지식인들이 건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지식인들의 심리적 측면은 내적억압에 대한 외면과 자기 분열, 급진적 보상주의와 무기력감을 둘 수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성이 현재의 입시 위주 교육과 깊은 관련속에서 재생산되고 있음을 앞에서 보이고자 했는데 사실상 이는 입시•위주 교육의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서 찾아져야 한다. 지식이 겉도는 우리네 삶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과 그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적 논의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P189

우리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지식의 불모지에서 살아왔고, 그래서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보잘것없는 꼴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단편적이고 횡설수설하는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움을 심는 세대‘는 그 ‘보잘것없는 우리 이야기‘의 터에 씨를 심어가야 할거다. 그 속에 ‘발가벗은 임금님‘을 발가벗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서로를 감싸주는 이야기도 있으며 세대로 이어갈 지혜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무수한 ‘겉도는 말‘에유혹 당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주면서 우리의 삶을 토론할 수 있는
‘말‘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자. 우리 삶 한가운데서 나오는 지식, 자신의 내면에서 삭혀서 나오는 글을 쓰자. 힘을 빼기보다 힘을 솟게 하는글,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조급함 속에서 쓴 글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가는 여유 속에 쓴 글, 생각을 풀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글을말이다. 겉도는 말을 쓰라고 부추기는 준거집단을 가졌다면 지금은 용기있게 그 물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삶을 헛돌게 하는 강의에 참을성을 잃고 교실을 스스럼없이 걸어나갈 수도 있어야 할거다. - P193

이렇게 이제껏 미화되어온 가부장적 현상의 밑바닥을 노골적으로 공론화함으로써 그는 많은 독자들을 분노하거나 감동케 만들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박완서의 책을 읽고 각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켜 왔다. 우리가 위의 비평에서 읽었던 내용도 실은 그 분쟁의 생생한 일부인 것이다. 바로 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이 박완서가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두번째 주제이다.
박완서는 여성 독자들에게 새로운 글 읽기 체험을 하게 하였다. 이제껏여성들은 아버지의 서재를 기웃거리는 즐거움,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여유있는 방황과 방랑을 엿들으며 그것이 글 읽는 즐거움인 줄로만 알았다. 별로 재미없는 글도, 재미있는 척 읽어야 했으며 또 남성들의 글 쓰기 흉내를내거나 그들의 기호에 맞는 글을 쓰느라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다. 이제 박완서는 여자들로 하여금 직접 길을 떠나고 또 방황하게 함으로써 그 길 떠남이 책 읽는 재미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흉내내지 않는 글 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들로 하여금 서 있는 것, 글을 쓰는 것,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진지한 토론을하게 하는 것이다. 한낱 사치였던 책 읽기가 이제 삶의 실천의 장으로 들어 - P252

왔다. 여자들의 안방을 사회와 연결시키고 여자들의 수다를 담론화한다. 여성들의 글 읽기와 글 쓰기의 정치성이 박완서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그 작품에 관한 담론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 이야기꾼과 남성 이야기꾼이 즐겨 삼는 이야기의 주제, 등장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스타일이 다르고 또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독자가남자인지 여자인지,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에 따라서 그 글 읽기가 상당히•달라진다는 점을 한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는 구태여 이런 전제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쓰고 또 읽게 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가부장적인 전제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신이 자유롭게 떠놀던 물의 성격을 알아가는 것과 같아서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결코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내야 한다. - P253

비평가는 책을 읽는 사람이며 그 행위는 일반 독자가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이 글에서 말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평가는 이야기꾼을 격려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의 작품세계의 의미를해독하는 데 좀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글을 쓰면서 성의 있는 독자이고자 노력을 했으나 여기에 언급한 모든 비평가들에게 당당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경황없이 쓴, 무성의한 글, 그리고 독단적인 ‘죽임‘의 글을 읽어야 하는 괴로움에 더하여두어편의 비평문에 대해서는 ‘살려내기보다‘ 죽이는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찜찜함도 없지 않다. 끝마무리를 그나마 한 것은 ‘죽임‘의 비평을 ‘죽임‘으로써결국은 ‘살림‘의 글로 읽힐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여간 글은 한번 쓰면 글쓴이의 손을 떠나 공공적 재산이 되어버린다. 개개 이름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내가 알아낸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작가를 통해 확 - P253

인할 의사가 애초부터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삶 읽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한 책 읽기가 가장 옳은 것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어차피 우리는 주관적 인식에 근거하여 글을 쓰며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은 작가가, 독자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내는 담화 속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런 담화를 담아갈 열린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다.
아니, 그냥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다. 닫힌 것은 공동체가 아니니까.... - P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