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들의 차는 해안선 등불이 먼 시가지의 큰 등불까지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곳의 끝부분에 이르렀다. 바로 아래아주 낮은 곳에 지금 그들이 넘어 온 곳을 가르며 작은 만이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가장 안쪽 항구에 면한 작은 마을이계류 중인 어선의 투광기 불빛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바닷가에선 어선이 한척 불타고 있었다. 그 배들을 둘러싸고 있는 반짝이는 잔물결은 농익은 석류알 같았다. 멀리 큰 등불로부터 바닷가의 낮은 길이 이 항구로 이어지고 경사가 급한 비탈을 올라 그들의 차가 있는 도로와 만난다. 그 급사면이 자동차 전조등 여러 개가 엮여 함께 비추자 선명하게 드러났다.  - P84

차 운전자들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전진하기도 하고 완전히 멈춰 서기도 했다.
해안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 행렬 저 뒤에서 순찰차가 전조등을 반짝이며 추월해 오고 있었다. 순찰차 여러대가 연달아 뛰어오르듯 다가왔다. 그 차들이 울리는 경보와 바닷가 마을을 지나며 소방차가 내는 사이렌 소리가 의 - P84

미를 알 수 없는 욕설과 함께 들려왔다. 다카키가 창문을 닫고 천천히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교통이 두절된 전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왔다. 오토바이 라이더는 그들의 차를 확인하고는 산기슭 갓길에 오토바이를 대고 전조등을 끈 후 이쪽을 근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다름아닌 다마키치였다. 그 근심 가득한 얼굴은 그야말로 다카키가 방금 전 얘기한, 폭력을 봉인 해제한 인간의 적나라한참혹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 P85

공터에 들어선 후 폭스바겐에서 혼자 내렸을 때, 이사나는 검은 나무숲 저편 어두운 하늘 끝에서 장밋빛으로 자라날 새싹을 감추고 있는 여명을, 바다 위 새벽녘의 기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한순간의 일로, 금방이라도 장밋빛의 농담을 띤 하얀빛을 발하려는 동쪽 하늘을 그는 올려다보고 있을 기력이 없었다. 오히려 하늘의 검은 부분과 또 그것보다 더 검은 지상의 존재, 즉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교목들과 그 아래를 이끼처럼 집요하게 덮는 관목 수풀을 어둠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는 진을 지키는 이나코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이나코가잠들어 있다면 그녀의 잠을 방해하면서까지 군인의 자살을 알리는 건 아무래도 꺼려졌다. 혹시 이나코가 자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동안 준비한 힐문에 혼자서 맞서는것도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ננר - P88

유년 시절 이후 여러 시기에 입은 상처의 모양과 색과 함께정말 그때는 그 상처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유일성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나의 상처로부터 또 하나의 상처로, 차례차례 징검다리를 건너듯 옮겨가며 그는 그간의 삶을 조감했다. 그 실패한 인생의 끝부분에, 그는 지금 새로운 상처를손등에 입고, 수두로 발진한 지적장애 아들의 치다꺼리조차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채 식당 건물에 누워 잠을 청하고있는 것이다. 린치 살인을 저지른 자들과 한패가 되었을 뿐아니라 그 범죄 현장에 그대로 남겨진 것처럼...  - P91

저 생애초기에 입은 상처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날들 중에 숨 막히는 궁지에 처해 새로운 상처까지 입고 만 중년 남자를 미래의 도달점으로 상정해본 날이 있을까? 아니,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상처 입을 때마다 그 상처로 긴장하곤 했던 유년 그리고 소년 시절의 나는,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하고 이사나는 나무의 혼·고래의 혼에게 회고의 심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꿈을 꾸듯, 그것도 나무의 흔・고래의혼을 향해 자기 상처의 역사를 말하는 꿈을 꾸듯, 상처 하나하나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흐르는 피가서서히 혈압을 떨어뜨릴 거라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듯……그렇게 지쳐 잠이 들었다. - P91

그건 막 떨어진 아직 마르지 않은 산귀나무 잎사귀였다. 이사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잎사귀를 끼고 허연 잎사귀 뒷면을 하늘에 비춰보았다. 노란색 샘점이 뚜렷했다. 그리고 잎맥이 짙은 초록색 잎사귀 아래쪽에서는 부드럽고 두꺼운 선을 그리고 측맥의 끝으로 갈수록 분명한 선을 그리는 것은, 잎맥 줄기 그 자체에 육질의 팽창이 일어나, 그 도톰한 부분이 잎사귀에 미미하게나마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이사나는 잎사귀에 대해서도 매일 관찰해왔다. 지금 그는 나뭇잎이 인간들에게 배 모양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힌트를 준 것이 분명하다는생각이 새로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지에 있어서도, 소재에 있어서도, 나무를 매개로 고래와 만났던 거야하고 그는 나무의 혼·고래의 혼을 향해 말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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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 내지 ‘제국주의적 지배‘의 문제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차원의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직접적 권력 대립의 문제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식민 지배가장기화되자 민족주의자들은 의식의 차원, 또는 언어의 차원이 중요함을 알게 되고 민족주의자들은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식민화된 역사를 가진 많은 사회가 독립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서양의 지배체제‘ 속에 머물고 있음을 보면서 그 동안의 제국주의적 지배가 가져다 준
‘선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타자화‘ / 의식의 식민화/식민적 주체에 대한 논의를 가장 선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펴나간 파농의 기념비적 책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떤 언어로 구사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파농은 식민지 땅에서 태어난 지식인으로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대표적 민족 해방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1925년에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알제리인 정신과 의사이며 알제리 민족 해방전선의 주도자 격인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에 유학한 지식인으로 싸르트르에 심취해 청년기를 보낸 전형적 식민지 엘리트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정신질환을 분석하다가, 그는 환자들 속에서 자기 땅에서 소외되어 버린, 자아상실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식민지 주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과정을 통해 그는 알제리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그 투쟁에 앞장섰다가 1961년 서른 일곱의 나이에 ‘혁명 전사‘로 사망한다. 파농의 대표적인 책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알제리의 식민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에서1961년에 출간되어 지성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탈식민 담론을 논하는 서구 지성계와 제3세계 지성계 전반에 대표적인 교재로 읽히고 있다. - P77

파농은 극도의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이러한 제국주의 역사를 끝내야 된다고 믿었으며, 동시에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움은 바로 이미 너무나 타자화되어 버린 민족주의적 엘리트들의 당혹함 속에 집약되어 있다.


"식민지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민중을 동원하는 순간, 식민지 지식인들은 갑자기 그들을 조국으로부터 소외시킨 이 모든 교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버리는 것은 그것을 버린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문화 매체를 통해 서구 문명에 흡수되어 들어갔고 유럽 문화가 그의 신체의 일부가 될 만큼 동화되었던, 다시 말하면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대체했던 지식인은 그가 본연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현재 취하고자 하는 문화적 모델이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 그는 빨리 백인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낀다. 그는 다른 곳에서 혹은 어느 곳에서라도 그의 문화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다." - P81

파농은 ‘식민화된 주체‘를 어떻게 벗어 던질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한 사람이었고, 그의 고민과 방황과 좌절은 지금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그 숙제는 실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로 지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구체적인 ‘적‘을 앞에 놓고 저항하고 괴로와하면서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임을 알 수 있었던 구식민지적 상황에 비해, 그래서 늘 긴장과 경계심을 품고 해방된 조국에 대한 꿈이라도 꿀 수 있어서 파농처럼 자신있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당시에 비해, 겉으로의 독립이 보장된 지금의 상황은 혼란스럽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치적 독립을 이룬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 ‘탈식민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세계화의 시대에 그런 과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비정상 상태‘에 있음을 잊어버리게 하는 상태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식민 모국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계심을 잃게 되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혹에 보다 쉽게 무너진다. - P82

밀즈가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물론 소련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를 보다 잘 이해해야 한다는 동기로 작용을 했을것이다. 어쨌든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제3세계의 물적, 정신적 기반이 나아지면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격이 일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변화는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3세계 안에서 지속적인 싸움이 치뤄진 노력들이 들어간, ‘정확히‘ 그 노력만큼의 성과이다. 실상 콜럼부스의후예들은 아직 그렇게 힘이 빠져 있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의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의 선조가 세계 곳곳에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컴퓨터 통신망을 까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며 새로운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들의 핵심부는 아직도 백인들이다. 좌표를 상실했다면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탈근대론자들은 서구 학문의 한 지류에지나지 않으며, 서구의 학문적 중심은 아직도 무겁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 P90

서양은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혼란을 말한다.
이 혼란은 이해되지 않는 수준의 질서인가
혼란 그 자체인가?


* 에피스테메는 미셸 푸코가 부각시킨 말로서주어진 시대의 앎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그것은 인식을 위한 기본 전제와 삶을 구성해 가는 기본 개념과 전략들을 포함한다. - P93

지금의 ‘국제화‘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국제화‘만 하는 것이아니고 ‘세계화‘도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단순히 개별 국가간의 상호 작용을 활성화하는 ‘국제화‘가 아니라 지구촌의 위기를극복해 가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구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16세기부터 진행된 자본주의화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제 그것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우리는 냉철한 계산으로 국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국가의 이익을지키기 위한 ‘국제 경쟁력‘을 과시해야 하지만, 또한 그 협상 테이블에서 ‘세계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의
‘서구화‘가 아닌 ‘세계화‘ 시대의 철학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한다.
게다가 이제 협상 테이블에서만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미디어 시대에 이미지 광고가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간의 교류이다.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를, 버스 타듯이 타고 다닌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팩스를 통해, 전자 우편(E-mail)을 통해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가는 것 역시 ‘세계화‘를 향한 준비 작업에 포함된다.  - P103

식민지적 발전을 한 사회가 갖는 공통점, 뒤죽박죽의 상태, 일관성 있는 스타일과는 무관한 절충주의와 혼돈의 상태. 식민주의적근대화를 거친 사회들은 대개가 이런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근대화의 특징이라고 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간격이 좁혀질 줄 모르는 상태, 임시 땜질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폰즈통에 김치‘를 담아 도시락 반찬을 싸가고, 화장실의휴지가 식탁 위에 올라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상태가 바로 식민주의적 근대화를 한 사회의 그림이다.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되어도 좋고 아무곳에 있어도 되는 절충주의는 대단한 적응력과 흡수력을 가지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뒤죽박죽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감당하지 못할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삶을 추스려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생적 근대화를 해나간 서구에 비해 더욱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살아왔으면서 통제 가능한 상황에 곧 들어가리라는 꿈을 끝없이 꾸어 왔다. 이당치도 않은 낙관주의는 또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낙관주의와 지속되는 혼란 사이에는 분명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다. - P105

우리가 곧 질서정연한 상태로 들어가리라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어쩌면 우리는 이 혼란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다시말해서 서구인들이 쓴 같은 언어와 스타일로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만성화된 혼란/ 위기 상태를 이론화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생존이 어려웠고 공동체적 언어를 잃어버린 혼란기, 또는 전쟁터였던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활용한 생존 전략이 있었을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과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개념들과는거리가 먼 단어로 풀어지리라는 것이다. 자생적 산업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회일수록 합법적 공간보다 비합법적인 공간이 넓고 힘이 있으리라는 점에 우선 착안해 보자. 그러한 사회일수록 ‘법‘이라든가 ‘공공‘이라는 것은 ‘공동체적 선‘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지배층의 이익이 위협당할 때 그 위험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전락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시민은 법을 준수하는 것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은 지키라고있는 것이 아니라 빠져 나가기 위해 있는 그물망일 뿐이다. - P112

곧 국가 공동체나 그 외 가족 단위를 넘어서는 공공적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들이 가족주의적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릴 때이다.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산업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리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총괄하는 원리가 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는 이 점에서 혼돈을 일으키고있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도 개인주의화하지않고 집단적 원리를 지녀 왔음을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신보수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 수가 더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보자. 우리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인가? ‘피난민‘과 ‘거간꾼‘들이 주도해 간 근대사와 70년대 이후 더욱 박차를 가한 ‘생산력 위주‘의 경제 발전이 도달한 곳은 실은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개인주의가 서양에서말하는 개인주의와는 다른, 개인의 파편화 내지 ‘흐트러진 개인‘들을 지칭하듯,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집단주의 역시 사회학 개론서에서 읽은 그런 공동체와는 다른 것 아닐까? - P116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서 제각각 살길을 찾아 살아가는 것을 집단주의라 부르겠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다. 또 논리가 부족할 때 언론인과 정치가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는 ‘국민적 정서‘라는 단어에서, 80년대 ‘운동권‘ 집단에서중요하게 여겼던 ‘의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뒤르껭이 말하는
‘기계적 결속‘의 사회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집단은배타성과 획일성, 그리고 감정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봉건적 공동체‘도, ‘근대적 공동체‘도 아닌 집단이다.
이때의 집단은 ‘한통속‘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라는 테두리를두껍고 단단하게 치고 마치 우리 단독 주택의 담처럼 높게그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만 서로를 귀엽게 봐주는 원리이다. 그 집단을 지배하는 감수성은 ‘내 품‘에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이 보아주고, 미워도 받아들이고 참아 주는 감수성이다. 그 집단의 언어는 배타적이고 감정적이다. 떼거리를 쓰면 통하고, 억지를 부리면이긴다.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 - P116

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언어를 조율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 소통 회로는 늘 일방적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적 의사 소통 구도에서는 물론 힘있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가족의 언어는 아주 강력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해 왔으며, 그 언어를 견제할 다른 언어가 미약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언어와 감수성은 공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하여 가족 단위를 넘어선 관계에 지배적 효과를 낸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서구처럼 ‘도구적 합리화‘가 지나쳐서 생활 세계가 식민화된 사회가 아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합리성‘이 빠진 ‘도구화‘의 근대사였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단주의만이 활개친 역사였다. 그런 수단주의적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활기차게‘ 살아온 것은 바로이 배타적인 가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의 ‘도구화‘도, 더 이상의 ‘더러운 정‘도 참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P117

원리의 실천과 일제 시대 민족주의자들이 더듬던 언어를 다시 꺼내.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근대적 노동관은 어떤 것이며, 신분제는 왜 타파되어야 하는가?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을 어렵게 하는 주술적 사고란 무엇이며 농경적 공동체가 깨진 상태에서, 도시화된 사회에서개인은 어떻게 일하고 먹고 또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 시민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근대 사회에서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서, 또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 규모의 자본주의 시장은 점점 더 확대되고 수천 개의 위성/유선 텔레비전 채널이 시간과 공간, 언어와 역사, 그리고 현존하는 매체의 경계를 허물며 온갖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 기존의 경제와 문화와 정치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우리 것‘과 ‘그들의 것‘을구분해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서 혼성 모방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완전한 자주 독립의 상태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써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라면 적절한 의존의 상태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적절한 ‘열림과 닫힘‘의묘를 살린 상태란 또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 P125

400년 전 세계 전 지역에 물건을 운반할 항구를 만들고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그들은 금융망과 정보망을 앞장서서 깔고 있다.
위성 방송을 주도하고 있으며 금융 관리도 여전히 그들 손에 들어있다. 문화적 원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콜럼부스의 후예답게 그들은 낯선 곳을 그냥 두지 못한다. 개척자와 탐험가의 후예답게, 발명가들의 후예답게, 탄광을 세우고 철도를 깐 목수들의 후예답게 그들은 원활한 자본의 유통과 정보 교류망을 깔기 위한 새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유색 인종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콜럼부스를 만들어 낸 그들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세계의 주도적 원리는 아직도 서구가 주도해 온 근대적 원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달라질 수 있으며 달라져야 한다는 사람들이 동서양 모두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졌다. - P126

파시즘이 대두하던 당시 아랍계이주 노동자와 게르만계 노동자는 왜 그렇게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며 죽여야 했을까? 국내 생산직 노동자와 방글라데쉬에서 온 이민 노동자 사이에는 아직도 공통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않은 것은 왤까?
우리는 그 동안 자신을 이미 규정된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보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왔다. 조금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또한 못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확인해 왔다. 남자란 것에 매달려 여자란 존재를 무시해 왔고 대학을 간 것에 매달려 대학을 못간 사람을 무시해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와해 왔다. 우리는 늘상 이상적 ‘주체‘에 비해 ‘결핍‘ 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보아왔고, 그 상대적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나쁜 상황의 사람들을 눌러왔다.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 들은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 P128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ㅡ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ㅡ 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기존의 범주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규정해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한국민으로 돌아오더라도 한국의 범주를 일단 떠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자. 한국은 내게 무엇이며, 중산층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가족은 또 내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 범주에 집착해 왔는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여러 개의 ‘나‘, 여러 개의 ‘우리‘가 있지 않은가? 각자 선 자리를 돌아보자. 그리고 기존의 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일을 그치고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에 맞는 정체성을 찾아내 가보자. 나는 남한에 사는 ‘국민‘이며, ‘민족주의자‘이며, ‘중산층‘이며, ‘엘리트‘로 살아 왔다. 또한 나는 ‘여성‘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 온 ‘식민지 주민‘으로서 살아 왔 - P128

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의 위기를 염려하는 세계의 양심있는 주민‘으로 규정짓고 싶어하고, 내가 살고 있는 ‘신촌을 가꾸는지역 주민‘으로서의 존재를 강조하고 싶어한다.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하는 마당에서 우리는 ‘결핍‘으로서의 정체성 속에 갇히기보다는 새로운 문화/관계 /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개성‘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자신이 선 자리, 주변이자 경계점인 그곳을 창조적 지점으로 삼아 간다. 더 이상 자신을 주어진 체제 속의 이분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다양한 사회 모순이 자신의 일상적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알아 간다. ‘주체‘는 매우 전략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정치적인 행위이며 사회 운동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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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유행옷처럼 멋스럽게 걸칠 줄 아는 나는
파우스트를 멋드러지게 패러디를 해낸 움베르트 에코를 읽으며
여든살이 넘어서도 참신한 글을 써내는
레비스트로스와 갈브레이스에 관한 외신 기사를 읽으며
부러움에 젖는다.

스승이 없는 나는
문서가 소멸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역사를 쓸 계획이 없어서
구태여 기억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 살면서 홀가분해 한다.

순발력 있는 나는
표방 가치와 실천 가치의 괴리를
갈등으로 느끼지 않으며
두 개의 언어를 가지고
두 개의 삶의 공간을 적절히 넘나들며
가끔씩 쓸쓸해 할 뿐이다.

이런 땅에서
반역을 도모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 P15

"번역이란 정보의 대중화, 민중화, 즉 민주화를 뜻한다.…… 칸트의 번역은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칸트 철학에 같이 참여할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칸트의 저작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않은 상황에서 칸트에 대하여 강의한다는 것은 칸트를 독점한 자가 그러한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칸트를 강요하는 일방적 부과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 학계를 지배해 온 주입식 교육의 정체다. 정보가 민주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정보를 독점한 자만이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칸트를 알고싶으면 나만큼 독일어를 마스터해라. 나는 이 무기를 얻기 위해 독일에서 십년이나 배를 굶주렸는데 너희들이 감히 칸트 운운해? 시건방이런 상황에서는 수강자가 강의자의 칸트에 대한 이해의 타당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 강의자만이 절대적 권위를 가질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론은 부재하며 상호간의 자극, 발전이 없게 되고, 따라서 그러한 학계는 정체되고 마는 것이다." - P17

어쨌든지 우리의 인문학은 여기까지 왔다. 어디까지? 소수의 번역 전문가 집단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많은 수의 지식인들이 들러붙어 "그 문장이, 또는 그 이론이 진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왈가왈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여기까지. ‘말‘ 없이 사는 괴로움으로 각자의 밀실에서 슬퍼 눈물을 흘리며 자폐증에 걸리는 여기까지.
베버를, 맑스를, 데리다를 그의 시대적 고민을 통해 이해한다는것은 중요하다. 위대한 사상가를 많이, 올바르게 읽는 작업은 물론중요하다. 그리고 남의 연구 작업을 총정리하는 것에 일생을 보내는 학자들도 물론 필요하다. 문제는 그러한 논의가 우리 지식인들의 논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풀어 낼 틀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의 외국 이론 읽기는 위험하다. 일상적 삶을 무시함으로 평면적 분석만 하게 되고, 자체 내 토론과 합의의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종 결론을 외국 이론가의 권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허망한 느낌 속에서 서로를 원망하며 살게 된다. - P18

각론은 없는데 총론만 되풀이 외치는 구호적인 사회, 거창한 이론과 전문 용어는 누구보다 잘 외우고 있으면서 막상 자신의 이야기는 할 줄 모르는 이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세상, ‘지식 수입상‘이성업 중인 사회에서는 특권층으로서의 엘리트나, 책 속에 빠져서 소일하는 ‘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지식인이 나오기는 힘들다.
그러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없는가? 아니면 자기 이야기들은 전혀 하지 않고 사는가? 실은 우리처럼 자기 이야기를 많이하는 이들도 드물 것이다.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는매우 활발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의 극단적인 장면은 여자 동창생들이 모인 계모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여성학자 구훈모 씨의 말처럼 계모임에 가면 30대에는 ‘남편 자랑‘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40대가 되면 ‘남편 욕‘을 하느라 신명이 나고, 50대가 되면 대학에간 ‘아이들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삶과 분리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너무 직설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자기 성찰적인 지혜로 이어지기에 거리가 있다. 이야기가 아니라 푸념이고 넋두리고 아우성이다.  - P25

다시 글을 읽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로 돌아와 보자. 자기 분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괴로와하지도 않는 우리의 모습을들여다보자. 식민지적 학문 세계에 안주하고, 식민지적 생활을 누리면서 더 이상 갈등을 느끼지 않게 된 우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학문적 용어가 삶과는 전혀 유리된 것이어도 무리없이 그것을 재생산해 내는 일을 계속하지는 않는가?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아도되는 인문학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기 성찰을 위한 언어가 없는 것은 얼마나 편한가? 이 복잡한 세상을 어떻게 다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단 말인가?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라면서 때로 우리는 행복해 하기까지 한다. 그런 와중에 ‘인식‘과 삶을 일치시켜 가려는 사람들은 돌팔매를 맞고 죽어 가거나 숨을 쉬지 못해 이 땅을 떠나거나, 타협한다. 타협한 이들은 자신이 포기한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모두 다같이 타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대한 압력 집단이 되어 타인의 삶을 짓누른다. 말은 계속 겉돌고,
삶은 헛돈다. - P28

내가 우리 사회의 식민지성과 내 속의 식민지성을 인식하기까지에는 사실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의식은 민족 문제에 대한 자각에서 싹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싹튼 것이다.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소수의 ‘중심‘에 있는 남성들이 자신의 한정된 경험을 토대로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처방‘을 제시하며, 주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여성들이 주변화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주변화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삶을 자신의 욕구에 맞추어 변화시켜가게 하는 언어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민족 문제와 여성 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론은, 그러므로 같은 것이며, ‘지식인‘의 범주에 드는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작업은 바로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언어를 되찾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은 것도 이러한 여성 ‘주체‘로 서가는 인식의 과정에서이다. - P31

탈식민화를 원하는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거울을 들이대고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외면하고 싶지만 들여다본다. 그리고 서로에게기대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체험이 담긴 언어, 기억을 나누기, 이런일을 착수하자고 나는 마지막 장에서 독자를 ‘꼬시고 있다.‘
본문에서 계속 강조해 온 역사성의 깊이와 끊임없이 적극적으로재구성해 나가야 할 ‘주체‘에 대한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탈식민화의 가능성을 보이는 영화 <서편제>에 관한 비평문을부록으로 싣는다. 민족주의 담론은 이제 더 이상 권위주의적이어서도, 본질주의적이어서도 안된다. 서로 다른 전제를 가진 집단들이공존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려 가는 것, 공존하는 법을터득해 가는 것, 소외의 상태를 벗어나 다들 스스로 자기 말을 하면서 즐거워지는 것, 이런 것들이 실은 탈식민화를, ‘지방‘과 ‘중앙‘의 알력을, 남녀 사이의 갈등과 계급 갈등을, 그리고 세대 사이의 ‘분단‘과 지역 ‘분단‘과 남북 ‘분단‘의 문제를 풀어 가는 지름길이다.  - P37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름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네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돌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 P38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젓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P39

학생들은 일제 시대에 교육을 받은 교사를 경멸하며 더욱 미국식 지식을 선호했으나 또한 이미 구조화된 학교의 일본식 권위주의체제에 길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이 교육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많은 이상적인 엘리트들을 길러 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열심히 미국 영어를 배웠고, 헐리우드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공산주의에대한 체질적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엘리트들은 미국을 ‘해방을 가져다 준 은인의 나라‘로 간주하여 열렬한 충성을 바쳤고, 마침 그 나라가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였기 때문에 엘리트 층의 상당수가 그 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이민으로 눌러 앉아 버리는 사태를 낳았다. 엘리트 층이 대거 이민을 간 현상에서 우리는 그 동안의 근대사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지식인 집단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게 된다.
물론 그 동안의 역사가 망명을 강요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북에서 월남한 이들이 남한의 터주 대감들의 등쌀에 삶의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변명을 하기보다 그 동안 묻어 두었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해 가고자 하므로 생각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 보자. - P72

자신이 몸담아 온 사회의 삶을 걱정하고 이론화해 가는, 그리고 주도해 가는 엘리트 층은 실은 그리 쉽게 딴 사회에 가서 주저앉지못한다. 지식인 범주에 드는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데 책임과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애국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자기를 위해서라도 이민을 가지는 않는다. ‘말‘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땅을 떠나서 살 생각을 좀체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언어란 그냥 의사 소통에 불편이 없이 말을 하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아직 표출되지 않은 무의식까지도 표현해 낼 수 있는 언어 구사 능력 - P72

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 사회의 ‘식민지성‘은 오히려 해방 이후에 본격적으로 심어졌고 ‘기억 상실증‘은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실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족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민족주의 담론이 새롭게 일었는데, 이것은 ‘국풍‘ 등의 이벤트와 서울올림픽 등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항 담론은 어떻게해서든 빈곤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겠다는 경제 제일주의와 위계 서열적인 냉전 질서 속에 고스란히 편입된, 지배 담론의복제품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70년대 후반부터 반체제 운동권 안에서도 민족주의적 대항 담론이 형성된다. 학생 운동권과 민중 운동권은 ‘민중 문화‘를 부각시킴으로 새롭게 민족 주체성을 만들어 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보다 포괄적인 삶의 성찰 작업으로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통일‘이라는 과제를 절대 명제로 정해 버렸기때문일 것이다. - P73

창조적 오독이 아니라 입시를 위한 오독이, 문맥과는 관련없는 오독이 판을 친다. 그래서 ‘식민지성‘에 대한 논의는 지금 세대 청소년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입시 제도가 바뀌면 많은 것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생각들을 할 뿐이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상태에서 청산 작업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일제 말기에 독립 운동 비밀 결사 조직인 ‘칠형제‘에 가담하여 목숨을 걸고 독립 운동의 연락 임무를 맡아 온 남동순 씨의 일생에 관한 글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해방 후에 얼마나 쉽게 친일 세력을 용서하고 함께 일하게 되는지를 보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어 했던 기억이 난다. 해방 후에 남씨는 ‘칠형제‘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조선인 형사가 목숨을 구걸하러 나타나자 호통을 치다가 "그 사람 따지고 보면 친일파지만 그 당시에는 자식들하고 먹고 살려고 그런 일 안한 사람 거의 없었고 불쌍한 생각이 나서 육군 소령 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씨는 자신이 좌익으로 가야 할지 우익으로 가야 할지를 이 형사에게 묻기까지 한다. 이것을 행동 대원의 단순함에 기인하는 예외적 경우로 처리할 수 있을까? - P75

그런데 자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어는 잘할 수 있을까? 언어가 무엇인지 감이 없는 이들이나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제 국제화 시대에 들어섰으므로, 우리는 더욱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가야 한다. 그러면서 훌륭한 번역을 해내고, 훌륭한 동시 통역을 할 전문가들을 길러 내야 한다. 국민 대중이 외국인을 만나 일상적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국제화‘가 아니다. 외국에 내놓을 작품도 없으면서 번역만 한다고 세계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세계적‘이 되는 길이다.
우리에게 언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역사는 있는가?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싶어하는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언어를 우리는 진정 갖고 싶어하는가? 선배로서 역사의 무게를 덜어 주지도, 풀어 주지도 못하면서 계속 ‘쌓이게‘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단도 직입적으로 던져야 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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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밖에서 훈련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 온도가 올라 담요도 그 무엇도 덮지 않았는데 몸에서땀이 난다. 더구나 기온과는 별개로 확실한 열원이 존재하여 더욱 땀을 부른다. 이사나는 그 열원을 물리치려고 손바닥을 뻗었는데 거꾸로 작고 뜨거운 손바닥에 그의 손바닥이 밀려났다. 진이 병에 걸렸다는 깨달음은 전기 충격처럼일순간 그의 잠을 싹 달아나게 만들었다. 진이 이사나가 건네는 말 혹은 손길을 거절하는 건 그 몸이 병에 걸려 괴로울때 말곤 없기 때문이다.
"진, 덥니? 아파? 진, 진, 어디 아픈거야?" 이사나가 안쓰러운 마음에 급박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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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무렵에는 예를 들면 야생 동백꽃이 우거진 가운데 술에 취한 아이들처럼, 꽤나 위험한 폭발력이 내재된 천진난만한 것들이 모여 피우는 소란과 종종 맞닥뜨렸다.
그럴 때 그는 나무의 대리인으로서 숨 막힐 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부풀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혹적이고도 무서운 외출을 할 때마다, 싹을 틔우거나 틔우려는 여러 종류의 작은 가지를 꺾어서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와, 셸터 테이블에 흩뿌려놓았다. 처음에 그는 작은 나뭇가지를 관찰하며 싹 틔우는 힘,
싹 틔우는 의미를 새해에야말로 완벽하게 밝혀보리라 단단히 별렀다.  - P11

비록 싹이 나오기는 했어도 아직 발아할 징후가 없는 동안 나무의 혼은 밑동에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나무와 교감하길 늘 바라는 그는 그 견고한 동면에서 배우는것이 있었다. 겨울바람이 나무 우듬지로 불어대는 밤에도,
악몽 한 번 꾸지 않았다. 그러나 벌거숭이 나무가 움트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온몸에 털이 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자신에게 위해危害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기분이기도 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서 발정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징조가 나타나서 그를 단호하게 몰아내고 말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같은 전환기에는 거울 속의, 전 육체·전 의식을 다하여 무엇인가를 향해 탐욕스럽게 열려 있는 스스로에게 질려, 수염을 자를 때도 손으로 더듬어가며 잘랐다. - P12

그렇게 이 지적장애아는 적어도 50종의 들새 소리를 식별할 수 있어 그 새들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식욕에 필적하는 쾌락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기 내부의 울적함에 가로막혀, 두견새나 붉은배오색딱따구리, 쏙독새 소리처럼 특징적인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대부분 구별하지 못하는 이사나도 한없이 미세한 들새 소리와 그보다도 더 작은 아이의 소리를 매일 몇 시간 동안이나 온화한기쁨을 느끼며 들었다. - P14

"고래나무라!" 이사나는 감명을 받아 동요하며 날숨을 내듯 말했다. 고래나무, 입니다. 라는 진의 목소리가 뒤따르지 않는 것을 어딘가 불안하게 느끼면서.
그런 채로 이사나는 자기 눈앞에 실제로 보이는 것과는다른, 또 하나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것은 끝없이 넓게 펼쳐진 초원을 향해 선자 혹은 바다를 향해 선 자만이 경험할수 있는 광대한 공간으로서, 도시에 정주한 이래 잃어버렸으나 환영으로 재현된 그 공간을 가득 채우며 단 한 그루의나무가 만드는 거대한 숲, 즉 고래나무가 나타났다. 굵은 나 - P124

무줄기 위로 벼처럼 무성하게 뻗은 가지들에 작은 잎이 빽빽하고 방대하게 퍼져 있어,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흰수염고래와 같은 위용을 드러냈다. 거기다 무성한 이파리가 만들어내는 머리 부분에서 작고 검으며 영리해 보이는 눈이천진난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 고래나무 전체는 그리움 그자체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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