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가 만들어 낸 근대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이러한 연속적인 시도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위기를 바라보고, 처방을 내리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것은 푸코나 들뢰즈, 료따르처럼 자신의 역사를 거리를 두고 서술하면서, 그전까지의 ‘근대 기획‘과는 좀더 급진적인단절을 이루어 냄으로 현재의 다양한 모순들을 극복해 가려는 움직임이다.
푸코 역시 근대가 지닌 양면성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자유와 해방의역사로 표방되어 온 근대는 실은 배제와 감시가 강화되는 관리 사회로의 이행 과정이기도 했음을 푸코는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관리가 제도화되는 과정을 통해 밝혀 낸다. ‘진보사관‘을 철저히 거부하는 푸코는 그 동안의 역사가 공식/비공식의 이분화, 비극/ 희극의 이분화, 유심론과 유물론의 이분화를 토대로 쓰여져 왔음을 밝혀 내고 그런 이분법을 넘어선 역사를 써내기 위해 추상화의 수준을 낮추고 아주 자세한 기술을 통해 역사를써내려 하였다. 그가 계보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그 동안 있어 온 절대적 진리 주장들을 발생시킨 은폐된 조건들을 추적해 간 <감시와 처벌> 그리고<성의 역사 1>는 서구 문명 안에 살면서 자신의 사회를 상대화시켜 본 착실 - P142

한 작업이며, 그 작업은 ‘서구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푸코에게 있어 근대는 표면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늘어나는 시대인 것 같지만 실은 행동의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감시하고 검열하는 장치를 발전시킨 시대이다. 이런 시대적 진전은 성욕과 감정적 친밀성까지를 일일이관여하고 조종하는 고도로 세련된 제도화로 이어진다. 권력은 집중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면에서 권력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 역시 매우 복잡해져 버렸음을 푸코는 저작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 간의 관계를 어디까지나 구체성을 통해 보여주려 하였다는 면에서, 그리고 섣불리 처방을 내리기를 거부했다는 면에서 탈근대적 언어를 만들어간 문명 비평가들의 대열에 선다 - P143

급진적 근대론이건 탈근대론이건 이들 서구 지식인들이 벌이는 논의의다양함은 바로 그들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매우 활발한 논의를 펼치고있다는 증거이다. 사실상 근대 기획을 제대로 이어 가자는 논의건 단절을이루자는 논의건, 내가 선 자리에서 볼 때는 매우 비슷한 문제 의식과 상황인식을 깔고 있다. 적어도 서울에 살고 있고, 남한의 지식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는, ‘비서구인‘인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그 둘간의 차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전자는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연속성‘을강조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단절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면에서 차이가날 뿐 내게는 크게 대립된 입장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51

한편 파시즘이 득세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독일의 지성계는 근대성이 초쾌한 현재의 위기를 보는 시각에서도 좀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파시즘의상처와 위협이 아직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 지성계는 ‘합리‘와 ‘이성‘의 개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민중봉기로 근대 혁명을이루어 냈고 파시즘의 병을 가장 적게 앓은 편인 프랑스는 또다시 전혀 새로운 ‘감성‘으로 시대를 쓰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쩌면 프랑스 지성인들은 나름대로 ‘이성‘을 토대로 한 ‘근대사‘를 살아 보았고 이제 그 ‘이성‘을 가장한 질서에서 미련없이 벗어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에매이지 않는 편인 미국 지식인들 역시 탈근대적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어쨌든지 서구의 자기 성찰적인 지식인들은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온 세계를 돌아보게 되었고, 포괄적인 삶의 영역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이제 자신들이 가져온 근대적 체험을 바탕으로 ‘근대‘의 방향을 크게 수정하고 싶어하고 있다. - P152

이들은 개별 국가 단위의 경제 체제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선조들이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넘어설 때처럼 재빨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고자 한 것이다. 개별국가 단위를 넘어선 공동체로 삶의 터전을 넓히면서 동시에 보다 작은 지역단위, 내지 자치적 주민적 공동체를 활성화함으로써 융통성 있게 지역/문화재편을 시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으로, 또 주변에 있는 다양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허약한 자기 문화를치유해 갈 거리를 찾으러 나선 것이다.
비단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를 통해서도이들이 하고 있는 자기 성찰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들의 근대사를거리를 두고 그려 낸 것으로 <1900년>, <당통>, <리틀 도리>, <정복자 펠레>,
<시네마 천국>, <개 같은 내 인생>, <장미의 이름> 등이 있고,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인간상을 그린 영화로 <카프카>, <파리 텍사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내 고향 아이다호>, <버디>와 같은 - P154

영화가 있다. 파시즘의 대두를 개인의 삶과 연결시켜 본 <레들 대령>, <하누>과 같은 영화, 그리고 파시즘의 폭력을 어처구니 없이 당한 아이나 여자의 눈으로 반이성적 시대를 그린 <양철북>이나 <소피의 선택>과 같은 영화에서 그들이 가졌던 독특한 근대적 체험을 읽어 낼 수 있다. 악마적 분위기를 그린 <델리카트슨>, <요리사, 도둑, 아내와 연인> 역시 근대성의 어두움을 암시해 주는 훌륭한 영화이며, 고도 기술 관리 사회의 종말론적 절망을기독교적 메시지로 풀어 가려는 <터미네이터 1>, <다크맨>도 그들이 여전히기독교적 언어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끈다. 극히 반동적인 고도 기술 독재 체제가 기독교적 성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핸드 메이즈>나 <브라질> 등의 영화에서도서양이 보는 후기 산업 사회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의 지평을 읽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역사의 깊이를 본다. 구체적인 문제와 고통을 보고, 그것을 풀어 가는 데 전념해 온 사람들을 만난다.
자생적 근대화를 하였다는 것은 사회 개혁을 해내는 ‘중심‘이 있었음을의미한다. 자신들의 허약한 상태를 있는 대로 드러내 놓는 것, 드러내 놓고토론하는 장이 열려 있는 것, 바로 그런 상태를 뜻한다.  - P155

내가 아닌 나를
나인 줄 알고 살다가
가끔 나를 만나면
낯설어 얼굴 돌린다.

아아
무아의 세계로
갈 수는 없는가

-조만철

이 시는 정신과 의사인 내 오빠가 쓴 것이다.
쉰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낯선 자기를 거울에서 보는 것은, 그리고 무아의 세계로 가버리고 싶어하는 것은그가 가진 불교적 색채 탓일까, 식민지 주민으로서의무의식 탓일까? - P157

어느 억압된 주체는 해방을 원할 때 거치게 되는 일반적 과정이있다. 먼저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계기를갖는 단계를 거친다. 대부분의 억압 상태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서 억압당한 주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식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세뇌당한 소수 집단, 곧 ‘타자화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자의식이 생기면 그는 자신을 억압해 온 ‘중심‘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들은 지금까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 온 전제들을 의심하게 되며, 지금까지 ‘중심‘에 있던 집단이 더 능력있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등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 P158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지배 구조를 거리를두고 상대화시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거리를 두지 못할 때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갖가지 투쟁은 지배 구조 속에 말려들어가 버리고만다. ‘보편성‘을 주장하는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첫 한풀이만 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중심‘을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과 같이 가야하는데, 이것은 ‘중심‘을 더 이상 보편적인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주체로 상대화시켜 보면서, 타자화되어 온 자신을 재발견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억압당하고 짓밟히기만 해온 존재로서가 아니라, 타자화된 표면 아래서 꿈틀거려 왔던 존재를 찾아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억압을 당해 온 이들은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항 담론의장이다. 그 새로운 담론의 장에서 자신들의 손상되지 않은 모습, 터져 나오지 못하게 눌려 있던 기억을 더듬어 억압 기재를 교란시키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써갈 거점을 마련해 가게 된다. 억압을 드러내고 고발하면서 지배 담론에 틈새를 내는 것, 그리고 기운을 차리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은 탈식민화 작업에서 필수적인 작업들이다. - P158

경험과 유리된 지식을 재생산해내는 데 길들여졌던 주변부가 자신들의 타자화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거점으로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지배자의 눈치를 살피거나 그들의 발상 속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확장해 가는 것은 어떤 작업을 통해 가능할까?
그 동안 우리는 자기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렇다고 세계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있지도 않는 상태에서 부유해 왔다. 지배 담론에서 규정한 단일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인지해 왔고, 그래서 주체성과 능동성을 잃은, 또 다양성이 무시된 존재로 살아 왔다. 일상적 생존의 장에서는 뛰어난 적응력으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바심으로 순발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은 이미 승산이 결정되어 있는 ‘장기판‘ 위에서의 놀음이었다. 이제 다시 정체성 논의를 끄집어내는것은 모든 입장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구도, 또는 ‘장기판‘ 위가 아니라 각자 만들어 가는 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장기판 자체를 바꾸고 싶어한다면, 기존의 판 위로 더 이상 올라가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자리를 스스로 정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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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밤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봄눈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그리운 부석사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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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새에 대해 정말 잘 아네." 이나코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경건할 만큼 무력감이 드러난 목소리는 감정의 고양뒤에 따라오는 피로와 공복으로 인한 단순한 반응이자,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이기도 했다. 이사나는 자신의 공복감을새삼 느끼며 이나코의 말을 깊이 새겼다. 둘은 잠든 진을 남겨두고 내려가, 자신들을 위한 식사를 만들어 용암 덩어리에 앉아 먹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광욕을 했는데, 하루 사이 햇볕이 더 강해져 서로의 머리에 물을 끼얹어주었다. 진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 한마디 없이, 이나코의 거무스름한 빛을 띤 건강한 피부가 햇빛의 영향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셸터에 틀어박혀 지내온 이사나의 피부는 순식간에 담홍색으로 타며 부어올랐다. 어제 탄부분에 다시 또 햇빛이 닿자 쑤시고 아프기까지 했는데, 불쾌하지는 않았다. - P111

다카키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사나는 오그라드는 남자가 찍은 그라비어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이라고 하는것의 근본적인 기묘함은 화면에 실재하지 않는 사람의 상상력이 화면의 ‘현재‘에 편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진에서도 오그라드는 남자의 정열인지 악의인지, 여하튼 무척이나 생생하고 농밀한 감정이 전 자위대원 및 둥그렇게 진을치고 그를 감싸고 있는 청년들을 뒤덮고 있었다. 전 자위대원이 자동소총을 분해해서 용암 자갈에 깐 천 위에 각각의부품을 펼쳐놓은 상황이었다. 붉은 고기 빛깔을 띠는 총신의 번호는 사진 속에서도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게릴라는 육상자위대 장비인 64식 7.62밀리 소총을 손에 넣어 실전훈련에 사용하고 있다. 이 설명을 읽으면 설령 아주 관대한 - P157

국가권력이라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정도로 치명적인 장면을 찍히면서, 전 자위대원과 청년들은 열정적이고 순진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렌즈 이쪽의 오그라드는 남자는 이렇게 아름답게 미소 짓는 자들의 사진을어찌 찍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침묵의 고함을 지르는듯했다.
"여기에서 농성하는 걸 당신이 반대하지 않으니 서둘러의논할 건 없겠지만." 다카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자면 나는 자유항해단이무기를 분배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에 찬성하지 않아. 꼬맹 씨가 말했던 것처럼 자유항해단은 이제 만들어져가고 있으니까. 아직 확실한 형태와 실질을 갖추지 못했어. - P158

아직 확실한 형태와 실질을 갖추지 못했어. 확실한건 모두 뭉쳐 있다는 것뿐이지. 우리가 뿔뿔이 흩어져버리면 자유항해단은 그대로 해산이야. 이나코가 말한 대로 보이의 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가 돼버려.
그럼 두 번째 길, 여기서 농성하며 싸우는 것만으로는 자유항해단 안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야. 그건수동적이니까. 수동적인 건 좋지 않아. 우리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기동대나 다른 무언가가 오는 걸기다렸다가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반응하며 그제서야 행 - P158

동을 시작하는 거니까. 애초에 그러려고 자유항해단을 만든건 아니잖아? 불합리한 죽음을 타인에게 강요당하지 않고스스로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며 살고 싶다고, 우리는자유항해단의 출발점에 그런 마음이었던 거 아니야?"
"여기 농성하고 있는 데로 기동대가 공격해오고 머지않아 자위대까지 공격해올 거라 치고, 거기에 대응해 반격하는 건 수동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얼마나 수동적이지않은지는 바로 보여주겠어." 다마키치가 말했다. - P159

"수동적으로 시작해서 난폭함만을 과장하는 걸로는 절대로 능동적인 것으로 전환될 수 없어.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 다카키가 매정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말하는 제삼의 길을 생각해봤는데 말야, 물론 그건 옳아. 서둘러 크루저를 손에 넣고 자유항해단의 원래 계획대로 공해로 자취를감추는 걸 생각해보라는 거지?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가지금 무장한 채 이즈나 보소까지 이동해서 요트항으로숨어드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어떨지는 그야말로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이사나가 되물었다. "이럴 때야말로 원래의 구상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왜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시도해보려 - P159

고도 안 하는 거야? 처음 구상이 원래 현실적으로 시도해볼수도 없는 것이었다면 그 구상은 애초부터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 구상을 품고 있었던 인간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되겠지? 그러면 어떤변호로도 오그라드는 남자와 보이가 자유항해단의 구상을위해 자진해서 죽었다고 타인을 설득할 수 없어."
"그러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무얼 해 보이겠다는 거지?"
"자유항해단에 관한 상세한 사실들을 경찰 측은 아직 다파악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시간 여유가 있다면 난 내일 아내랑 교섭하고 올게. 크루저를 한 척 입수하는 일쯤은 불가능하진 않을 테니까.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그 배 위에서원래 구상에 따라 시작해보지 않겠어? 실제로 해보면 네가 예상하는 대로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야 많겠지만. 뿔뿔이 흩어지거나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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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들의 차는 해안선 등불이 먼 시가지의 큰 등불까지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곳의 끝부분에 이르렀다. 바로 아래아주 낮은 곳에 지금 그들이 넘어 온 곳을 가르며 작은 만이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가장 안쪽 항구에 면한 작은 마을이계류 중인 어선의 투광기 불빛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바닷가에선 어선이 한척 불타고 있었다. 그 배들을 둘러싸고 있는 반짝이는 잔물결은 농익은 석류알 같았다. 멀리 큰 등불로부터 바닷가의 낮은 길이 이 항구로 이어지고 경사가 급한 비탈을 올라 그들의 차가 있는 도로와 만난다. 그 급사면이 자동차 전조등 여러 개가 엮여 함께 비추자 선명하게 드러났다.  - P84

차 운전자들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전진하기도 하고 완전히 멈춰 서기도 했다.
해안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 행렬 저 뒤에서 순찰차가 전조등을 반짝이며 추월해 오고 있었다. 순찰차 여러대가 연달아 뛰어오르듯 다가왔다. 그 차들이 울리는 경보와 바닷가 마을을 지나며 소방차가 내는 사이렌 소리가 의 - P84

미를 알 수 없는 욕설과 함께 들려왔다. 다카키가 창문을 닫고 천천히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교통이 두절된 전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왔다. 오토바이 라이더는 그들의 차를 확인하고는 산기슭 갓길에 오토바이를 대고 전조등을 끈 후 이쪽을 근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다름아닌 다마키치였다. 그 근심 가득한 얼굴은 그야말로 다카키가 방금 전 얘기한, 폭력을 봉인 해제한 인간의 적나라한참혹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 P85

공터에 들어선 후 폭스바겐에서 혼자 내렸을 때, 이사나는 검은 나무숲 저편 어두운 하늘 끝에서 장밋빛으로 자라날 새싹을 감추고 있는 여명을, 바다 위 새벽녘의 기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한순간의 일로, 금방이라도 장밋빛의 농담을 띤 하얀빛을 발하려는 동쪽 하늘을 그는 올려다보고 있을 기력이 없었다. 오히려 하늘의 검은 부분과 또 그것보다 더 검은 지상의 존재, 즉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교목들과 그 아래를 이끼처럼 집요하게 덮는 관목 수풀을 어둠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는 진을 지키는 이나코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이나코가잠들어 있다면 그녀의 잠을 방해하면서까지 군인의 자살을 알리는 건 아무래도 꺼려졌다. 혹시 이나코가 자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동안 준비한 힐문에 혼자서 맞서는것도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ננר - P88

유년 시절 이후 여러 시기에 입은 상처의 모양과 색과 함께정말 그때는 그 상처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유일성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나의 상처로부터 또 하나의 상처로, 차례차례 징검다리를 건너듯 옮겨가며 그는 그간의 삶을 조감했다. 그 실패한 인생의 끝부분에, 그는 지금 새로운 상처를손등에 입고, 수두로 발진한 지적장애 아들의 치다꺼리조차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채 식당 건물에 누워 잠을 청하고있는 것이다. 린치 살인을 저지른 자들과 한패가 되었을 뿐아니라 그 범죄 현장에 그대로 남겨진 것처럼...  - P91

저 생애초기에 입은 상처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날들 중에 숨 막히는 궁지에 처해 새로운 상처까지 입고 만 중년 남자를 미래의 도달점으로 상정해본 날이 있을까? 아니,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상처 입을 때마다 그 상처로 긴장하곤 했던 유년 그리고 소년 시절의 나는,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하고 이사나는 나무의 혼·고래의 혼에게 회고의 심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꿈을 꾸듯, 그것도 나무의 흔・고래의혼을 향해 자기 상처의 역사를 말하는 꿈을 꾸듯, 상처 하나하나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흐르는 피가서서히 혈압을 떨어뜨릴 거라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듯……그렇게 지쳐 잠이 들었다. - P91

그건 막 떨어진 아직 마르지 않은 산귀나무 잎사귀였다. 이사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잎사귀를 끼고 허연 잎사귀 뒷면을 하늘에 비춰보았다. 노란색 샘점이 뚜렷했다. 그리고 잎맥이 짙은 초록색 잎사귀 아래쪽에서는 부드럽고 두꺼운 선을 그리고 측맥의 끝으로 갈수록 분명한 선을 그리는 것은, 잎맥 줄기 그 자체에 육질의 팽창이 일어나, 그 도톰한 부분이 잎사귀에 미미하게나마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이사나는 잎사귀에 대해서도 매일 관찰해왔다. 지금 그는 나뭇잎이 인간들에게 배 모양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힌트를 준 것이 분명하다는생각이 새로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지에 있어서도, 소재에 있어서도, 나무를 매개로 고래와 만났던 거야하고 그는 나무의 혼·고래의 혼을 향해 말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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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 내지 ‘제국주의적 지배‘의 문제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차원의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직접적 권력 대립의 문제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식민 지배가장기화되자 민족주의자들은 의식의 차원, 또는 언어의 차원이 중요함을 알게 되고 민족주의자들은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식민화된 역사를 가진 많은 사회가 독립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서양의 지배체제‘ 속에 머물고 있음을 보면서 그 동안의 제국주의적 지배가 가져다 준
‘선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타자화‘ / 의식의 식민화/식민적 주체에 대한 논의를 가장 선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펴나간 파농의 기념비적 책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떤 언어로 구사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파농은 식민지 땅에서 태어난 지식인으로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대표적 민족 해방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1925년에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알제리인 정신과 의사이며 알제리 민족 해방전선의 주도자 격인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에 유학한 지식인으로 싸르트르에 심취해 청년기를 보낸 전형적 식민지 엘리트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정신질환을 분석하다가, 그는 환자들 속에서 자기 땅에서 소외되어 버린, 자아상실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식민지 주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과정을 통해 그는 알제리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그 투쟁에 앞장섰다가 1961년 서른 일곱의 나이에 ‘혁명 전사‘로 사망한다. 파농의 대표적인 책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알제리의 식민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에서1961년에 출간되어 지성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탈식민 담론을 논하는 서구 지성계와 제3세계 지성계 전반에 대표적인 교재로 읽히고 있다. - P77

파농은 극도의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이러한 제국주의 역사를 끝내야 된다고 믿었으며, 동시에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움은 바로 이미 너무나 타자화되어 버린 민족주의적 엘리트들의 당혹함 속에 집약되어 있다.


"식민지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민중을 동원하는 순간, 식민지 지식인들은 갑자기 그들을 조국으로부터 소외시킨 이 모든 교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버리는 것은 그것을 버린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문화 매체를 통해 서구 문명에 흡수되어 들어갔고 유럽 문화가 그의 신체의 일부가 될 만큼 동화되었던, 다시 말하면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대체했던 지식인은 그가 본연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현재 취하고자 하는 문화적 모델이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 그는 빨리 백인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낀다. 그는 다른 곳에서 혹은 어느 곳에서라도 그의 문화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다." - P81

파농은 ‘식민화된 주체‘를 어떻게 벗어 던질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한 사람이었고, 그의 고민과 방황과 좌절은 지금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그 숙제는 실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로 지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구체적인 ‘적‘을 앞에 놓고 저항하고 괴로와하면서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임을 알 수 있었던 구식민지적 상황에 비해, 그래서 늘 긴장과 경계심을 품고 해방된 조국에 대한 꿈이라도 꿀 수 있어서 파농처럼 자신있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당시에 비해, 겉으로의 독립이 보장된 지금의 상황은 혼란스럽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치적 독립을 이룬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 ‘탈식민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세계화의 시대에 그런 과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비정상 상태‘에 있음을 잊어버리게 하는 상태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식민 모국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계심을 잃게 되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혹에 보다 쉽게 무너진다. - P82

밀즈가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물론 소련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를 보다 잘 이해해야 한다는 동기로 작용을 했을것이다. 어쨌든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제3세계의 물적, 정신적 기반이 나아지면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격이 일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변화는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3세계 안에서 지속적인 싸움이 치뤄진 노력들이 들어간, ‘정확히‘ 그 노력만큼의 성과이다. 실상 콜럼부스의후예들은 아직 그렇게 힘이 빠져 있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의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의 선조가 세계 곳곳에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컴퓨터 통신망을 까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며 새로운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들의 핵심부는 아직도 백인들이다. 좌표를 상실했다면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탈근대론자들은 서구 학문의 한 지류에지나지 않으며, 서구의 학문적 중심은 아직도 무겁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 P90

서양은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혼란을 말한다.
이 혼란은 이해되지 않는 수준의 질서인가
혼란 그 자체인가?


* 에피스테메는 미셸 푸코가 부각시킨 말로서주어진 시대의 앎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그것은 인식을 위한 기본 전제와 삶을 구성해 가는 기본 개념과 전략들을 포함한다. - P93

지금의 ‘국제화‘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국제화‘만 하는 것이아니고 ‘세계화‘도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단순히 개별 국가간의 상호 작용을 활성화하는 ‘국제화‘가 아니라 지구촌의 위기를극복해 가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구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16세기부터 진행된 자본주의화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제 그것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우리는 냉철한 계산으로 국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국가의 이익을지키기 위한 ‘국제 경쟁력‘을 과시해야 하지만, 또한 그 협상 테이블에서 ‘세계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의
‘서구화‘가 아닌 ‘세계화‘ 시대의 철학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한다.
게다가 이제 협상 테이블에서만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미디어 시대에 이미지 광고가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간의 교류이다.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를, 버스 타듯이 타고 다닌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팩스를 통해, 전자 우편(E-mail)을 통해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가는 것 역시 ‘세계화‘를 향한 준비 작업에 포함된다.  - P103

식민지적 발전을 한 사회가 갖는 공통점, 뒤죽박죽의 상태, 일관성 있는 스타일과는 무관한 절충주의와 혼돈의 상태. 식민주의적근대화를 거친 사회들은 대개가 이런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근대화의 특징이라고 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간격이 좁혀질 줄 모르는 상태, 임시 땜질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폰즈통에 김치‘를 담아 도시락 반찬을 싸가고, 화장실의휴지가 식탁 위에 올라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상태가 바로 식민주의적 근대화를 한 사회의 그림이다.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되어도 좋고 아무곳에 있어도 되는 절충주의는 대단한 적응력과 흡수력을 가지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뒤죽박죽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감당하지 못할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삶을 추스려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생적 근대화를 해나간 서구에 비해 더욱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살아왔으면서 통제 가능한 상황에 곧 들어가리라는 꿈을 끝없이 꾸어 왔다. 이당치도 않은 낙관주의는 또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낙관주의와 지속되는 혼란 사이에는 분명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다. - P105

우리가 곧 질서정연한 상태로 들어가리라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어쩌면 우리는 이 혼란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다시말해서 서구인들이 쓴 같은 언어와 스타일로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만성화된 혼란/ 위기 상태를 이론화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생존이 어려웠고 공동체적 언어를 잃어버린 혼란기, 또는 전쟁터였던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활용한 생존 전략이 있었을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과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개념들과는거리가 먼 단어로 풀어지리라는 것이다. 자생적 산업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회일수록 합법적 공간보다 비합법적인 공간이 넓고 힘이 있으리라는 점에 우선 착안해 보자. 그러한 사회일수록 ‘법‘이라든가 ‘공공‘이라는 것은 ‘공동체적 선‘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지배층의 이익이 위협당할 때 그 위험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전락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시민은 법을 준수하는 것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은 지키라고있는 것이 아니라 빠져 나가기 위해 있는 그물망일 뿐이다. - P112

곧 국가 공동체나 그 외 가족 단위를 넘어서는 공공적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들이 가족주의적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릴 때이다.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산업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리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총괄하는 원리가 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는 이 점에서 혼돈을 일으키고있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도 개인주의화하지않고 집단적 원리를 지녀 왔음을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신보수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 수가 더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보자. 우리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인가? ‘피난민‘과 ‘거간꾼‘들이 주도해 간 근대사와 70년대 이후 더욱 박차를 가한 ‘생산력 위주‘의 경제 발전이 도달한 곳은 실은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개인주의가 서양에서말하는 개인주의와는 다른, 개인의 파편화 내지 ‘흐트러진 개인‘들을 지칭하듯,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집단주의 역시 사회학 개론서에서 읽은 그런 공동체와는 다른 것 아닐까? - P116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서 제각각 살길을 찾아 살아가는 것을 집단주의라 부르겠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다. 또 논리가 부족할 때 언론인과 정치가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는 ‘국민적 정서‘라는 단어에서, 80년대 ‘운동권‘ 집단에서중요하게 여겼던 ‘의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뒤르껭이 말하는
‘기계적 결속‘의 사회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집단은배타성과 획일성, 그리고 감정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봉건적 공동체‘도, ‘근대적 공동체‘도 아닌 집단이다.
이때의 집단은 ‘한통속‘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라는 테두리를두껍고 단단하게 치고 마치 우리 단독 주택의 담처럼 높게그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만 서로를 귀엽게 봐주는 원리이다. 그 집단을 지배하는 감수성은 ‘내 품‘에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이 보아주고, 미워도 받아들이고 참아 주는 감수성이다. 그 집단의 언어는 배타적이고 감정적이다. 떼거리를 쓰면 통하고, 억지를 부리면이긴다.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 - P116

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언어를 조율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 소통 회로는 늘 일방적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적 의사 소통 구도에서는 물론 힘있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가족의 언어는 아주 강력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해 왔으며, 그 언어를 견제할 다른 언어가 미약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언어와 감수성은 공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하여 가족 단위를 넘어선 관계에 지배적 효과를 낸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서구처럼 ‘도구적 합리화‘가 지나쳐서 생활 세계가 식민화된 사회가 아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합리성‘이 빠진 ‘도구화‘의 근대사였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단주의만이 활개친 역사였다. 그런 수단주의적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활기차게‘ 살아온 것은 바로이 배타적인 가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의 ‘도구화‘도, 더 이상의 ‘더러운 정‘도 참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P117

원리의 실천과 일제 시대 민족주의자들이 더듬던 언어를 다시 꺼내.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근대적 노동관은 어떤 것이며, 신분제는 왜 타파되어야 하는가?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을 어렵게 하는 주술적 사고란 무엇이며 농경적 공동체가 깨진 상태에서, 도시화된 사회에서개인은 어떻게 일하고 먹고 또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 시민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근대 사회에서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서, 또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 규모의 자본주의 시장은 점점 더 확대되고 수천 개의 위성/유선 텔레비전 채널이 시간과 공간, 언어와 역사, 그리고 현존하는 매체의 경계를 허물며 온갖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 기존의 경제와 문화와 정치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우리 것‘과 ‘그들의 것‘을구분해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서 혼성 모방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완전한 자주 독립의 상태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써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라면 적절한 의존의 상태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적절한 ‘열림과 닫힘‘의묘를 살린 상태란 또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 P125

400년 전 세계 전 지역에 물건을 운반할 항구를 만들고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그들은 금융망과 정보망을 앞장서서 깔고 있다.
위성 방송을 주도하고 있으며 금융 관리도 여전히 그들 손에 들어있다. 문화적 원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콜럼부스의 후예답게 그들은 낯선 곳을 그냥 두지 못한다. 개척자와 탐험가의 후예답게, 발명가들의 후예답게, 탄광을 세우고 철도를 깐 목수들의 후예답게 그들은 원활한 자본의 유통과 정보 교류망을 깔기 위한 새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유색 인종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콜럼부스를 만들어 낸 그들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세계의 주도적 원리는 아직도 서구가 주도해 온 근대적 원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달라질 수 있으며 달라져야 한다는 사람들이 동서양 모두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졌다. - P126

파시즘이 대두하던 당시 아랍계이주 노동자와 게르만계 노동자는 왜 그렇게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며 죽여야 했을까? 국내 생산직 노동자와 방글라데쉬에서 온 이민 노동자 사이에는 아직도 공통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않은 것은 왤까?
우리는 그 동안 자신을 이미 규정된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보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왔다. 조금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또한 못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확인해 왔다. 남자란 것에 매달려 여자란 존재를 무시해 왔고 대학을 간 것에 매달려 대학을 못간 사람을 무시해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와해 왔다. 우리는 늘상 이상적 ‘주체‘에 비해 ‘결핍‘ 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보아왔고, 그 상대적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나쁜 상황의 사람들을 눌러왔다.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 들은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 P128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ㅡ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ㅡ 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기존의 범주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규정해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한국민으로 돌아오더라도 한국의 범주를 일단 떠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자. 한국은 내게 무엇이며, 중산층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가족은 또 내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 범주에 집착해 왔는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여러 개의 ‘나‘, 여러 개의 ‘우리‘가 있지 않은가? 각자 선 자리를 돌아보자. 그리고 기존의 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일을 그치고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에 맞는 정체성을 찾아내 가보자. 나는 남한에 사는 ‘국민‘이며, ‘민족주의자‘이며, ‘중산층‘이며, ‘엘리트‘로 살아 왔다. 또한 나는 ‘여성‘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 온 ‘식민지 주민‘으로서 살아 왔 - P128

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의 위기를 염려하는 세계의 양심있는 주민‘으로 규정짓고 싶어하고, 내가 살고 있는 ‘신촌을 가꾸는지역 주민‘으로서의 존재를 강조하고 싶어한다.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하는 마당에서 우리는 ‘결핍‘으로서의 정체성 속에 갇히기보다는 새로운 문화/관계 /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개성‘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자신이 선 자리, 주변이자 경계점인 그곳을 창조적 지점으로 삼아 간다. 더 이상 자신을 주어진 체제 속의 이분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다양한 사회 모순이 자신의 일상적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알아 간다. ‘주체‘는 매우 전략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정치적인 행위이며 사회 운동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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