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공감 가는 부분은 ‘편안한 삶, 계획, 계략‘과 작가로서의 ‘내‘가 가지는 현실주의냐? 작가라는 껍데기로 위장한 채 그렇고 그런 ‘내‘가 가지는 현실주의냐?를 묻는 부분이다. 마치 입시에서처럼, 취직이라는 것에 다시 걸려 있는 대학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이겠고 특히 운동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던 사람이라면 좀더 심각한 문제로, 한 2학년후반부쯤 되면 안게 되는 반복되는 지겨운 문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적당히 사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그런다는 것은 너무 수세적인 것 같고 빈 배알을 가지고 사는 비생명적인일이라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나 말뿐인 때가 너무 많았기에 조심스러워진다. 앞으로 실천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역시 우리 말,
우리 글로 쓰여진 우리의 얘기가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87학번 사회학과 4학년 한솔)

모든 글은 새롭게 쓰여지거나 다시 고쳐 쓰여지기 위해서 쓰여진다. 우리는 책의 독자이자 동시에 저자인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사회•적 삶이 변하는 한 진리일 수밖에 없다. "텍스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적극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는 명제를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보기위해 동화를 읽어보기로 하였다. - P61

글 쓰기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이 어릴 때 별 생각없이 읽어온 동화가 실은 서양의 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쓰여졌으며 또 계속 새로 쓰여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학생들은 충분한 충격을 받았다. 먼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백설공주>의 원본이라고 제시하는, 이링 페처가 쓴 판본을 들어보자. - P62

문제는 사회 성원들이 주체적 문화 향유자와 문화 창조자가 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시주체적 책 읽기를 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주체적 책 읽기는이 시대에 특권이 아니라 짐이며 의무인 것이다!)특히 인쇄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우리는 집에서 몇십만 원짜리컴퓨터 하나로 책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구태여 찍어내지 않고 전자통신을 통해 자신의 소설을 선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 새로운 동화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따라서 작가가 가난한 때문이 아니다. 인쇄공장을 소유한 자의 횡포 때문도 아니다. 광고를 해주지 않는 신문사측을 나무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우선은 좋은 이야기가 쓰여지지 않는데 있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 이야기 쓰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이야기를 읽지 않는 것일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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