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울게 만드는 건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아주 사소한, 남들이 보기에 우스운, 그 사소함에 있다. 우습게도 그 상황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한다. 이 사소함 들 때문에 실껏 울 이유가 충분한 책을 만났다. 엄마를, 내 엄마를, 마음껏 소환해 그동안 묻고 싶었던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꿀 수 있었다.

   나에겐 H마트가 아니라 남평장이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생선 장수를 하고 막걸리를 팔면서 선지 국수를 말던 엄마, 당신을 그리며 웁니다.

 

우리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 다쓰여 있다.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어느 한국 어머니와 아들이 앉은테이블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은 무심코 급수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충실하게 계산대 앞으로 가서 수저를 가져다가제 어머니와 제 앞에 깔아놓은 종이 냅킨 위에 올려놓는다. 아들은 볶음밥을, 어머니는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사골 수프를먹는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 꼭 우리 엄마처럼, "양파를 여기에 찍어 먹어봐." - P21

이렇게 여자 어른들과 사촌과 복작복작 보낸 시간은 내게완벽한 꿈과도 같았지만 그 꿈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끝이 났다.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고 학교에 있었기에 엄마 혼자비행기를 타고 병원에 있는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는 엄마가 도착한 날 돌아가셨다. 마치 세 딸이 다 자기 옆에 모이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에 필요한 것들을 비단에 둘둘 싸서 자기 방에 두었다. 화장될 때 입을옷, 납골당에 진열하길 바란 액자 사진 그리고 장례비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완전히 망연자실한상태였다. 엄마는 또렷한 한국말로 연신 "엄마, 엄마" 하고 울부짖었다. 엄마는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소파에 앉은 아빠 무릎에 기댄 채로 온몸을 들썩이며 흐느꼈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빠도 같이 울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그래서할머니 방에 있던 엄마와 엄마의 엄마를 지켜보던 때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부모님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 P63

엄마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자제하지 못하는 모습은 난생처음이었다. 당시에는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깊은지 지금처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어마어마한 상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자기 엄마에게서 떨어져 지낸 그모든 세월에 대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죄책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하듯 엄마도 그랬을 텐데 그때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대신 우리가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만 생각이 났다.
"네가요만한 꼬마였을 때 얼마나 겁쟁이였는지 아니? 응가를 하고 나선 이 할미가 엉덩이도 못 닦게 했지." 그러고는 요란하게 깔깔 웃으면서 내 엉덩이를 찰싹 한번 치고는 나를 꽉껴안았다. - P64

그 전주에 엄마는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뉴욕에 가는 날 병원 예약이 잡혔다고 했다. 그날 오후에 병원 간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문자를 몇 통 보냈지만 평소의 엄마답지 않게 답이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차이나타운행 버스를 탔다. 몇 달 전에, 그러니까 2월에도 엄마가 복통을 호소했는데, 당시에 나는 그리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더랬다. 한국말로 "설사 있어요?"라며 농담까지 했다. 나는 그 말이 자꾸 살사와 비슷하게 들려서,
그리고 질감까지 서로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병은 때가 되면 낫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미국인들이 사소한 병에 너무 호들갑을 떨고 약을 남용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믿음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 바람에 나는 피터가 상한 통조림참치를 먹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 피터의 어머니가 아들을 응급 진료소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우리집에서는 식중독에 걸리면 토하는 것밖에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건 그냥 연례행사와도 같았다.  - P71

엄마는 내가 딱 이렇게 살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느라 평생토록 안간힘을 써왔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그냥 미소 띤 일굴로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다. 파를 썰고, 믹싱볼에사이다와 간장을 붓고,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을 보면서싱크대에 줄줄이 붙여놓은 바퀴벌레 덫에도 냉장고 손자국에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듯, 그저 집밥의 맛을 남기는 데만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그동안 내가 원치 않는 무언가로 나를 만들어보려 한 자신의 노력이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더이상노력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내가 이런식으론 1년도 더 못 버티고 결국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할 거라 믿고 전략을 더 세련된 걸로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아니라면 우리 사이에 벌어진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 때문에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어쩌면 내가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았음을 비로소 받아들이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든 잘해낼 거라고 믿게 된 건지도 모른다. - P84

신생아 때부터 나는 무엇 하나 수월한 게 없는 아이였다고한다. 세 살 무렵에는 나미 이모가 나를 ‘유명한 악동‘이라는별명으로 불렀다. 뭐든지 일단 들이받고 보는 게 내 주특기였다. 나무그네든 문틀이든 의자 다리든 독립기념일 행사 때 놓아둔 철제 관람석이든 가리지 않았다. 내 머리 중앙에는 내가우리집 식탁 유리 상판 모서리를 최초로 들이받았을 때 움푹파인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식사 모임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볼 것도 없이 나였다.
오랫동안 나는 부모님이 과장을 하거나 그냥 아이 키울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안 된 분들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친척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진짜로 사람 피를 말리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됐다. - P88

진공상태처럼 텅 빈 내 안에 음악이 훅 밀고 들어와 공허를채웠다. 음악은 또다른 균열을 만들어 엄마와 나 사이에 이미위태위태하게 벌어져가던 틈을 완전히 헤집어놓았고, 그 틈은곧 거대한 심연이 되어 우리를 통째로 집어삼킬 태세였다.
음악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음악은 나의 실존적공포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라임와이어"에서 음악을하나씩 내려받았고, 푸 파이터스의 어쿠스틱 버전 ‘에버롱‘이원곡보다 나은지 여부를 두고 AIM 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데하루를 몽땅 바쳤다. 나는 용돈과 점심값을 꼬불쳐뒀다가 하우스 오브 레코드에서 시디를 사는 데 고스란히 헌납했다. 그안에 든 가사집을 보면서 한 줄 한줄 분석했고, 미 서북부 인디 록 스타의 인터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으며, K 레코드나킬 록 스타즈 같은 음반사 명단을 외웠고, 어느 콘서트에 갈지 - P94

당시에는 소수자 정서가 뭔지 몰랐다. 음악계에서 대표성을 둘러싼 토론은 이제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나는 음악을 하는 다른 여자들은 잘 몰랐기에, 실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여자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같은 처지의 백인 남자는 어떨지 상상해 유추해볼 능력도없었다. 그 남자가 이를테면 스투지스의 라이브 공연 DVD를보면서, 이미 이기 팝이 있는데 음악계에 또다른 백인 남자가설 자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캐런 오는 음악에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해주었고,
나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게 만들었다. 나는 새로 발견한 낙관론에 고무되어 엄마한테 기타를 사달라고 집요하게 조르기시작했다.  - P97

배고픈 음악가의 삶이라는 매혹은 이내 그 빛을 잃고 말았다. 나는 니콜과 콜레트 아주머니네에서 며칠 있다가 나보다한살 많은 친구 사의 자취방으로 옮겨가 한동안 거기서 신세를 졌다. 샤논과 나는 플라워 숍이라고 불리는 펑크하우스"
에 들락거렸다. 말이 좋아 펑크하우스지 사실상 그곳은 무단점유 거주지였다. 크러스트 펑크를 하는 사람들이 바닥에서잠을 자고, 지붕에 올라가 길에 유리병을 내던지고, 술에 취해서 벽에 부엌칼을 마구 집어던졌다.
엄마라는 닻에서 풀려난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저항해온 온갖 책임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도망갔다. 아빠의 데스크톱컴퓨터에는 내가 반쯤 쓰다 만 각종 대학 지원서 보충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나는 무단결석을 점점 더 자주 했다.  - P111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리고 내게 충분히 그럴 힘이 있다는 걸알았지만, 어쩐지 차마 더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엄마가 내 손목을 누르고 내 위에 올라타도록 내버려두었다.
"너 정말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너한테 안 해준 거 없이다 해 바쳤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엄마는 악을 쓰면서 울었다. 엄마의 눈물과 침이 내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에게서 올리브기름 냄새와 시트러스 향이 났다.
거친 카펫에 내 손목을 꾹 누르고 있던 엄마의 손은 크림을 발라 부드럽고 미끌미끌했다. 나는 눌린 부위가 몹시 아려오기시작했다. 아빠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어쩌다 이 아이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찾고있었다.
"나는 너 낳고 낙태까지 했어. 네가 너무 속을 썩여서!"
엄마는 손에 힘을 빼고 벌떡 일어서더니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수치심이 밀려온 듯 혀를 쯧 하고 찼다. 마치 - P115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이 다 허물어져가는 꼴이라도 목격한사람처럼그랬다. 그렇게 굉장한 비밀을 여태 숨기고 있다가 하필이럴 때 밝히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낙태 자체에 대해서 내가 뭐라 할 게 못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별의별 악랄한 짓을 다 해서 엄마를 마음 아프게 했듯이 엄마가 그저 나를 마음 아프게 하려고 그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그토록 중대한 사실을 숨겨왔다는것에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어떤 문제를 그처럼 오랫동안 숨기고 살 수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지키려 했던 비밀은 모두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기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비밀을 지키는 데 희한한 재주가 있었다. 심지어 나한테까지도 엄마는아무도 필요치 않았다. 엄마는 자신에게 내가 얼마나 필요치않은지를 보여주어 나를 충격에 빠뜨릴 수 있었다. 자기가 그러듯 항상 나만의 10퍼센트를 따로 남겨두라고 평생을 내게가르쳐온 엄마지만, 그게 나한테까지 따로 남겨둔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으리라고는 그때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P116

나는 엄마가 첫 항암치료를 받은 다음 날 오후에 유진에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때 미리 여자화장실에 들러 최대한 단정하고 깔끔하게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거칠거칠한 종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런 뒤에 머리를 빗고 다시 화장을 했다. 아이라이너는 조심조심 최대한 가늘게 눈꼬리를 살짝 빼서 그렸다.
이어서 기내용 가방에서 볼 클리너를 꺼내 청바지에 대고 문지른 다음, 스웨터에 생긴 보풀을 일일이 손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주름을 마구 문질렀다. 데이트하거나 구직면접을 보러 갈 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썼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돌아갈 때면 늘 그랬다. 1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가기 전에는 엄마가 보내준 카우보이 부츠를 꼼꼼하게 신경써서 닦았다.
같이 딸려 보내준 구두 왁스를 부드러운 천에 살짝 묻혀서 그걸로 구두 가죽을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 나무 손잡이가 달린 솔로 빙글빙글 원을 그리듯 표면을 스치면서 광을 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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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산 > 주소

오늘은 오일팔이다.
사 년전 오늘에도 그랬군.
벌써 42 년 이라니...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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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몇 년 군시렁거리는 구름의 말만 들으며
 갈 길 못 가고 또다시 흐르기만 하였다

 어디로 어디로라고 밤바람은 말하지만
 고통처럼 행복처럼 기어코 올 그 무엇
 그러나 참 더디다

 하여간에 여하간에
 갔다가 왔다. 왔다가 또 가려고 한다

 하여간에 여하간에
 또다시 흐르기로 작정하였다
 또다시 이륙하기 위하여

 떠나자꾸나
 너무 무거운 것들은 모두 버리고
 너무 무거운 것들은 모두 벗어버리고 <표4>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 P9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지금 피어나는 꽃 피면서 지고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지금 부는 바람 늘 쓸쓸할 것이며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지금 내리는 비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며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 P10

살았능가 살았능가

살았능가 살았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
살았능가 죽었능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대답하라는 소리만
살았능가 살았능가

삶은 무지근한 잠
오늘도 하늘의 시계는
흘러가지 않고 있네 - P11

당분간

당분간 강물은 여전히 깊이깊이 흐를 것이다
당분간 푸른 들판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을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각자 각자 잘 살아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해도 달도 날마다 뜨고 질 것이다
하늘은 하늘은
이라고 묻는 내 생애도
당분간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 P26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해는 뜨고 언제나 달도 뜬다
저 무슨 바다가 저리 애끓며 뒤척이고 있을까삶이 무의미해지면 죽음이 우리를 이끈다
죽음도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虛와 손을 잡아야 한다
- P31

나 쓸쓸히

나 쓸쓸히, 세계를 버렸었으나
나 쓸쓸히, 우주와 새로이 악수했었으나
나 쓸쓸히, 세계와 우주가 잊혀져가는
늦정원 안 다 늙은 사과 한 알 속의,
나 쓸쓸히, 나에게도 아득히 낯선
한 마리의 애벌레

(슬픔의 현이 없으면 기쁨의 음악은 울릴 수가 없다) - P35

나의 생존 증명서는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 P50

나는 육십 년간

나는 육십 년간 죽어 있는 세계만 바라보았다
이젠 살아 있는 세계를 보고 싶다
사랑 찌개백반인 삶이여 세계

창문을 여니 바람이 세차다 - P82

비가 온다

비가 온다
내가 두고 온 과거에도 비가 내린다
과거를 되뇌이는 도루묵 다시 또다시
완전 추락 엎치락뒤치락

비가 오고 있다
파리에도 런던에도 비가 올낀
어느 허공에선 고요히 바람이 불어가고 있겠지

(세상을 떠나니 허공 한 자락이구나) - P90

오늘 하루 중에

오늘 하루 중에 네가 한 일이 무엇이냐
마루 아래 댓돌 위에
흰 돌 검은 돌

문득 눈 들어 보니
푸른 산 흰 하늘

어디선가 새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른다
한 千年이 고요히 출렁거린다 - P91

내 詩는 당분간

너의 존재를 들키지 마라
그림자가 달아난다

(내 詩는 당분간 허공을 맴돌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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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혔었다

문이 탁 하고 닫혔었다
뒤편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세계
그 안으로 급하게 빨려들었다

(왜 그 세계는 내 등 뒤에 있었을까?)

잠이 시간이었습니다
모릅니다
그간의 나와
저간의 나와
혹은 저 너머의 나와

p75


시인의 말

오랜만에 詩集을 펴낸다.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

2010년 1월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 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도가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 P7

하얀 낮달

하얀 낮달,
푸른 붕새
멀고 먼 길
가다 가다 지치는 하늘

푸른 붕새 몇 점 띄워놓고
다리 절룩이며 가는 하늘 - P9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 풀이 있듯
숲 사이에 오솔길이 있듯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죽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

원론과 원론 사이에서
야구방망이질 핑퐁질을 해대면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 P45

다른 세상

한 육체였었으나
이미 한 생각이었으므로

아무 일도 없이
학이 날고 푸른 새가 지고
하염없는 바다와 바다 사이에서
(아, 나는 너무 오래 잤을까)
학이 날고 푸른 새가 지고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다른 것들은 어디에서 오나
다른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
이미 있었으나, 없었으나, 다시 있는
만지고 또 만져본 세상, 그러나
다시 있는, 언제나 천억 년 다시 있을,
바다빛 하늘빛처럼 푸르른
다른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 - P46

깊고 고요하다

검은 활시위
검은 화살

깊고 고요하다

내가 닫아버렸던 고통의 門을
누가 다시 열어놓았을까

가만히 스쳐만 가시라
잠의 꿈결에서인 듯
꿈의 잠결에서인 듯 - P57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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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세번째 시집을 펴낸다. 낙엽 지는 가을이나
겨울이 아니라 꽃 피는 오월에 시집을 낸다는사실이 왠지 기분좋다. 그 동안,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시의 소재가 되어주었던 모든 분들께, 그리고 나의 시집들을 만드느라 애쓰신 모든 분들께, 한꺼번에 감사드리자.

1989년 5월 최승자


문득 시가 그리워

문득 詩가 그리워
글씨를 써봅니다.
글씨를 읽어 봅니다.

문득 내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어 봅니다.

언젠가 잘라버린 내 팔,
베어진 그 부위의 기억이 소름돋습니다.
고통처럼 행복처럼 소름돋습니다. .

문득 詩가 그리워
글씨를 써봅니다.
글씨를 읽어봅니다.

언젠가 잘려져나간 내 팔,
혼자서 헤맬 내 팔의 기억이
악몽처럼 다시 일어섭니다.
- P11

자칭 시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하여,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詩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詩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詩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詩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 ) - P12

詩 혹은 길 닦기

그래, 나는 용감하게,
또 꺾일지도 모를 그런 생각에 도달한다.
詩는 그나마 길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내가 닦아나가야 할 길이다.
아니 길 닦기이다.
내가 닦아나가 다른 길들과
만나야 할 길 닦기이다.

길을 만들며,
길의 흔적을 남기며,
이 길이 다른 누구의 길과 만나길 바라며,
이 길이 너무나 멀리
혼자 나가는 길이 아니길 바라며,
누군가 섭섭지 않을 만큼만
가까이 따라와주길 바라며.
- P13

그 거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겠는 거, 그거.
담배는 끊어도 커피는 못 끊겠는 거, 그거.
커피는 끊어도 목숨은 못 끊겠는 거, 그거.

믿지 못하는 사이
두 발이 푹푹 빠져들어 간다.
빠져들어 간다는 것까지도
믿지 못하는 사이로
두 발은 더욱 습한 곳으로
푹푹 빠져 들어 간다.

(나의 이성과 감정은 언제나
나의 현실보다 뒤지는 거, 그거.) - P65

노을을 보며

살아 있는 나날의, 소금에
,절여지는 취기 같은 저 갈증,
누군가의 망막에 증기처럼 번져오르는 통증.
하지만 그래도 난 아냐, 난 못 해.

전라도인지 조지아인지
어디서 또 아픈 일몰이 시작되고

봐, 봐, 저 붉은 노을 좀 봐.
죽을동 살동 온 유리창에 피칠을 하며
누군가 나 대신 죽어가고 있잖아.

심혈을 기울여 해가 지고
심혈을 기울여 한 사람이 죽고
심혈을 기울여 지구가 돈다. 돌 때,
나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세계를 내다보고

내 할 일은 그대 마저 다 죽고 난 뒤

흰 장갑 끼고 - P70

싸늘하게 빛나며
그대의 죽음에 비로소 입장하는 것뿐.
- P71

오월

한 개의 머리를 치면
두 개의 성난 머리가
돋아나는 히드라의 달,
오월은 피참한 달.

언제나 아이들은
세계의 상처 위에서 죽으며
언제나 아이들은
세계의 상처를 먹고 자라며,
오월의 일기 예보는 또다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고,

이 세상 아직도
잎 반 꽃반
봄은 늘 아름답지만

이 세상 아직도
언 강 먼 땅,
以下同文의
깊은 밤.
- P72

당대의 당대의

내가 믿지 않았던,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그 세월 위에 그래도 녹이 슬고,
또 싹이 트느니

이제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當代여

당신의 외로움이 날 불러냈나,
내 그리움이 당신을 불러냈나,
외로움과 그리움이 만나
찬란하구나,
이 밤의 숱한 슬픔의 천적들이 만나
다정히 꼬리를 깨물고 깨물리우는
이 밤 슬픔의 불꽃놀이여,
當代의 當代의 슬픔의 집합들이여.
- P73

겨울 들판에서

굴복할 때 사람은 가장 아름다워 -
가장 강한 강함이든
가장 약한 약함이든
그것에 굴복할 때
사랑은 가장 아름다워 -

슬픔이여 이 논과 숲
이 낮은 산하에
내가 낮게 더 낮게 가라앉느니,

거두어다오
한평생의 열에 들떴던 이마를,

감기워다오.
보지 말았어야 했을
모든 것을 보아온 이 사악한 두 눈을.

(이제 누가 새로이 건너기 시작하리라.
저 들판, 오래도록, 사람아가로지르지 못했던 저 들판을.
- P80

그리고 너는 아직 햇빛이 허락되는 동안
너의 젖은 이승의 그림자를 말려야만 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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