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자연의 제 당길심이 무섭도록 크고 그 內奧의 세계에 흐르는 生命의 律呂가 주는 황홀은 더더욱 깊다는 것을 從心之年이 넘어서야 눈치채게 되었다. 이곳 生家 夕佳軒에 寓居를 정하고 나서 거기 기대고만 있는 나를 추스르다 보니 4년 터울의 내 시집이 2년 만에 나오게 되었다. 그만큼 편수가 늘어난 것이 사뭇 조심스럽다. 충실한 시의 일생이고자 하는 나의 생각이 잘 마무리될 수 있기를 늘 다짐하고있다. 이번에도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서둘러주신 책만드는집 김영재 시인의 배려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己丑 한여름
夕佳軒에서
鄭鎮圭

되새 떼들의 하늘


오늘 석양 무렵 그곳으로 떼 지어 날으는 되새 떼들의하늘을 햇살 남은 쪽으로 몇 장 모사해두었네 밑그림으로 남기어두었네 그걸로 무사히 당도할 것 같네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날개붓이여, 새들의 운필이여 붓 한 자루 겨우 얻었네 秘標하날 얻어두었네 한 하늘에 대한 여러 개의 질문과 응답을 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지덕지할 일인가 오늘 서쪽 하늘에 되새 떼들이 긋고 간 飛白이여, 되새 떼들의 書體여, 자유의 격식이여 몇 장 밑그림으로 모사해두었네 가슴팍에 바짝 당겨 넣은 새들의 발톱이 하늘 찢지 않으려고, 흠내지 않으려고 제 가슴 찢고 가는 그게 飛白이라네 하얀 피라네

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 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는 걸 벌써 다 알고 있는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 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滿開로 본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 한다 박태기 꽃 진자주

비 오는 날


빗속에서 저 맨몸 빗줄기들 자연분만된 줄로만 알고 있었더니 빗줄기 속에서 비가 비로소 몸을 얻고 있음을 여기와 보았다 비 젖고 섰는 큰 느티나무를 비가 와서 만든 줄알았더니 느티나물 만나서 비가 비로소 느티나물 크게 적시게 되었음을 알았다 느티나무에게 잘 모시겠다고 큰절했다 이 늦봄 새벽, 사랑이 와서 초록 풀밭 아득히 적시는 빗소리를 귀 열고 있었더니 맨몸 적시고 있었더니 오래전에 있었던 초록 풀밭이 비로소 사랑을 몸 부리고 있음을 알고 큰절했다 노박이로 비 맞고 은하 건너온 칠석날 까치 두마리도 아침 뜨락에 와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두어 번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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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는 그 나무를 잘생긴 나무라고 불렀다. 우리는 나뭇잎 모양이나 열매를 보며 나무의 진짜 이름을 알려고 애쓰지않았다.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어떤 이름이든 나무 스스로 지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 나무는 회색 수피가 매끄러웠고, 하나로 곧게 뻗은 기둥 끝엔 우산살처럼 둥글게 휜 가지가느긋하게 자라 있었다. 보리차차는 공원에 가면 꼭 그 나무 밑동에 대고 오줌을 쌌다. 보리차차가 나무를 돌며 꼼꼼하게 냄새를맡았기에 우리는 그 옆에 서서 나무의 잘생긴 풍모를 봤다. 시간이 흐른 뒤, 나 혼자 그곳에 갔을 때 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잿빛기둥이 되어 쉬고 있었다. 갈색 깃털의 새가 악보의 음표처럼 나뭇가지를 오르내렸다. 나는 근처의 흙이나 돌멩이에 보리차차의흔적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나무와 그 나무가 뿌 - P9

리 내린 땅, 할머니와 내가 보리차차를 앞세우며 걷던 공원의 오솔길, 그 풍경 어딘가에 보리차차의 오줌이 스며든 자국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똥은 없겠지. 똥은 늘 우리가 배변봉투에 담아서가져갔으니까. 하지만 고불거리는 털 오라기나 콧방울에서 나오는 숨, 담홍색 젤리 같은 혓바닥에서 떨어지는 침방울, 높고 빠르게 짖는 소리.. 그게 무엇이든 보리차차의 일부가 산의 한 부분이 되어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부르면 의심이 달려오던 보리차차. - P10

"말은 항상 느리죠. 생각에 비하면 언제나 느려요."
그러니 마음놓고 말하라며 레인코트가 우유수염의 팔에 닿을듯 말 듯 자신의 손을 올렸다. 우유수염의 표정에서 S자 곡선이그려지는 듯했다. 우유수염은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듯 손등을 뺨에 갖다댔고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레인코트는 우유수염이 무엇을 찾는지 알아챘다.
"혹시 이응을 찾는 거라면."
레인코트의 말에 우유수염의 얼굴이 밝아졌다. 레인코트는2층 발코니에 이응이 있지만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작동을 멈춰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랑하는 기색 없이 이곳에서 하는 이응의 탁월함을 말했다. 풀과 흙 냄새를 맡으며 개울물소리와 함께 이응을 하면 발가벗고 빗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도시의 폐쇄된 공간에서 하는 이응과는 자극의 차원이달라서 한번 하고 나면 한동안 이응 생각이 안 날 만큼 에너지가충전된다고. - P19

할머니, 이 사람은 슬퍼할 자격이 있어? 울어도 돼?
할머니는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이란 함부로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뫼르소는자기 엄마가 죽었을 때 울지 않고 카페오레를 마신 거라고.
나는 카페오레 대신 오미자물을 마셨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대신 빵빵해진 아랫배로 변기에 앉아 소변을 봤다. 할머니는내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면 오미자물을 주면서 달랬다. 다울어버리지 말고 울고 싶은 마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울고 싶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했다. 그런 복잡한 설명을 들으면서 차갑고 새콤한 오미자물을 마시면 내 슬픔은 어리둥절한 눈을 한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할머니는 나를 욕실로 데려가 울고 싶지만 울음 - P31

이 떠나간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에 물을 묻힌 다음 슬퍼서 흘러내릴 것 같은 내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했다. 홍 홍! 나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앉아 내 콧방울을 움켜쥔・할머니의 손가락에 콧물을 풀었다. 향긋한 로션을 바른 다음 할머니의 배를 빼고 누우면 꾸루루 꽐꽐 꾸루루 꽐꽐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줄줄 나는 거야. 하나도 안 아프고 하나도 안 슬퍼."
내게 오미자물을 주며 울지 말라던 할머니는 녹내장 증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전자의 주둥이와 유리병 입구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오미자물을 바닥에 흘렸고, 물을 흘린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보리차차도 눈가에 눈물 자국이 생겼다. 송곳니가 약해져 딱딱한 음식은 잘 먹지 못했고 개가 먹을 수 있는 우유를 주면 코코아빛 입가에 우유 수염을 만들었다. - P32

할머니의 손을 따라 뺨이 뭉개지고 나면 할머니는 턱받이처럼 목에 두른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얼굴이 맑게 다시 생겨나는 기분. 그리고 나의 애처로운 강아지 보리차차는 아무리 내가 잘 말려줘도 털에 스민 물기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냈다. 머리, 몸통, 꼬리를 세 방향으로 비틀어 몸을 말렸다. 그러고선 날듯이 네발로 점프해 자기의 방석으로 몸을 던졌다.
내가 잃어버린 화살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레인코트가 떨며 신음하는 나를 더 세게끌어안았다. 끝없이 애정을 갈망하는 강아지처럼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응 안에서 오래 포옹했다. 속옷을갈아입어야 하는 몸으로 다른 몸에게 안겼다. 레인코트, 당신의 이름은 무슨 색이죠? 나는 묻고 싶었지만, 입속의 말들이 소리로나오지 않았다. 옛이응의 ‘호‘가 아닌, 지금 나를 가득 채우는 이 느낌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더 깊은 품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 P46

만약 미래의 어떤 기술이 우리의 삶을 좀더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로 하여금 그 기술이 탄생하기 이전의 삶을 다시 한번 더 충실히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이란 본질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정보를 배열하는 방식인데, 그 정보란 것이 인간에겐 뇌에 입력된 과거의 기억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그 어떤 것도 돌이켜 추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현재를 지각할 수도 없고, 기억이란 재료를 혼합해 내일을 꿈꿀 수도 없을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의 신기술은 우리의 지난 삶을 위해, 우리를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려보내 또 한번 배우고 자라나게 하기위해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 P51

이 소설은 이런 길들을 거쳐 저에게 왔습니다. 저를 깨우치게한 책들과 나무가 자라 있는 풍경, 그 안에 머무는 개와 새들이 제가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떠올리고픈 이미지입니다. 그 기억을 따라 저는 넘어지고 발을 헛디디며 틈과 오류로 가득한 ‘이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은 ‘ㅇ‘이란 글자의 생김새처럼 저를 지나쳐 또다른 곳으로 굴러갑니다. 부디 이 소설이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굴러가 자신만의 이응을 그려내는 누군가에게 잘 썩은 낙엽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등돌리고 선 듯한 절망에 빠진다 해도, 그 이응 안에서 자기 자신만은스스로를 꽉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 P53

수영장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형광등에도 타나 많이 탔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들을 물이 밀어낸다.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오늘은 끝까지 가볼래요? 아니요. 저는 안 갈래요. 왜 안 가요. 희주와 주호는 실랑이를 한다. 희주가 먼저 간다.
주호가 뒤따른다.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떠오르는 몸. 가라앉는 몸. 물을 밀어내는 만큼밀려가는 몸.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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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공동 집필하는 동안 위와 같은 소설들을 다수 읽으면서, 이 소설들이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브론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이 보다 감추어진 식으로 발언했던 항변을 어떤 식으로 강조하는지 깨닫고 놀랐다. 그러나 오스틴, 브론테, 배럿 브라우닝의 주인공들과 달리, 페미니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성애 관계에 헌신하며 ‘그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삶을 사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치거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거나, 이혼하거나, 독신으로 지내면서 자신의 저자들에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양성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도전적으로공격하면서 이혼율이 급증했던 시기 동안) 결혼 제도를 비판할기회를 제공했다. - P238

1970년대에 가장 폭넓게 읽힌 소설 중 하나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여성성의 모순은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서술자를 광기로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아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는 원래 1963년 런던에서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자살하기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이 작품이 발표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주저했으며, 미국에서의 출간에 대해서는 한층 더 불안해했다. 이 소설은 마침내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엇갈린평가를 받거나 열혈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열혈 독자 다수는 이 작품의 플롯이 플라스 자신의 애틋한 개인사를 따르고있고 그녀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 P239

1960년대 초반 플라스가 이 암울한 내용을 썼을 때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명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와 그녀의 작품(시와 산문) 모두는 1970년대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내용을 구체화한다. 1950년대식의 고정된 여성의 역할들과 거리두기라든가, 섹슈얼리티(‘처녀성‘과 그것의 상실)라든가 심지어 밀릿의 『지하실에서처럼 "여성이기에 죽는 것"이라는 은밀한 생각을 하며 역겨워하는 반응 등이다. 운명의 변덕스러운 장난인지, 미래는 그렇게 떠오르는 것인지, 1963년 『벨 자』가 발표되고 나서 한 달 뒤에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가 출간되었는데, 이는 플라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불과 일주일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두 책 모두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와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밀릿의 『성 정치학』과 함께 이 세 책은 실비아 플라스의 강렬한 비극적 인생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1970년대의 페미니즘을 탄생시켰다. - P244

이 소설의 출간은 플라스의 자살 사건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던 미스터리까지 더해지면서 일종의 문학적 폭동을 촉발시켰다. 로빈 모건의 1972년 첫 시집 『괴물』에 실린 시 「규탄」은 테드 휴스에게 플라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여긴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 무대를 마련해준다.


당연히,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고서
내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테드 휴스를
영국과 미국의 온 문학계와 비평계가
장황하게 부인해왔던 사실
실비아 플라스를 죽인 자가 그자 아닌가? - P245

그러나 일부 독자들은 어쩐지 플라스가 지금도 살아 있을 것같다는 환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 <런던 리뷰 오브북스)는 플라스 서한집 완전판의 서평 「여든여섯의 플라스」를 실었다. 그 글을 쓴 조애나 빅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결코 죽지 않았다. 1963년 겨울에 그녀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피츠로이 스트리트에서 살고 있으며, 『벨자』와 ‘남편이 멋지고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배신자에 바람둥이임이 밝혀지는 내용의 1964년 소설 『뒤늦은 반응』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통으로 사들였다. 그녀는 패션브랜드 아일린 피셔의 옷을 자주 입고 다니며, 페이버 출판사의 파티가 열리면 가장자리 안락의자에 앉는다. (...) 미투 운동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관심이 있다. (…) 소설 집필은 몇 년전 그만두었고 시는 느긋하게 쓰고 있다. 이제 퓰리처상과 부커상에 노벨상까지 받았으니까. 그녀는 너무나 대단한 대가가 되어 가까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화장실에서 백발을 벗고있고 당신은 립스틱을 바르는 동안, 당신은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줍게 미소 짓는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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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안경


돋보기 안경을 새로 맞춰 썼더니 당신의 얼굴 날내 나게 화안하다

보이던 부처님이 어디 가셨다 괜한 짓 했다

옛날국수 가게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했더니 빨래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부드러운 빠듯함


이 大雪중에 운문사 뜨락 그 소나무는 어쩌고 있을까 가지 끝까지 닿아내린 하늘 활짝 펴들고 있는, 고요히 팽팽한 그 소나무는 지금 어쩌고 있을까 버팅기지 않고 積雪의 무게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 안고 있으리라 그런 사이엔 부드러운 빠듯함이 있다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운문사 뜨락 그 소나무 한 번도 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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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의 창작 작품들이 마땅히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찬사둘 거의 받지 못했던 반면, 그녀의 동시대 여성 작가 다수는 페미니즘 소설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꽤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손택 세대의 작가들은 1970년대에 발표한 소설들을 통해 케이트 밀릿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개념과 손택의 "성차별주의적 세뇌" 개념을 조명하며 여성을 순종적인 얼간이로보는 밀러와 메일러의 생각에 반대했다. (밀릿과 손택의 두 개념은 젊은 여성들이 문제 많은 사회제도에 굴복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여성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회화 과정을 주제로 삼았다. 토니 모리슨, 앨릭스 케이츠 슐먼, 에리카 종, 리타 메이 브라운, 마거릿 애트우드, 매릴린 프렌치는 - P221

여성의 온전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사고방식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묘사했다.
1970년대의 페미니즘 소설은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모욕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들은 생리의 시작을 둘러싼 비밀주의, 클리토리스 자위 행위의 은밀한 발견, 이성애관계 내에서 맺는 (일반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첫 성경험, 성에관한 이중 잣대가 주입하는 굴욕감, 사랑과 남성의 보호에 대한과대평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만연한 페티시즘, 그리고 성희롱, 불법 낙태, 가정 내 학대, 강간 등을 묘사한다. 이성애, 결혼 제도, 핵가족이 소녀와 성인 여성의 삶을 시들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P222

토니모리슨의 감동적인 첫 소설 「가장 푸른 눈』(1970)에 나오는 열한 살 난 피콜라 브리드러브보다 더 가슴 아픈 강간 피해자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근친 강간을 당하기 전부터 이미) 백인의 미적 기준을 내면화함으로써 파멸해가는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다고 확신하는 한편 푸른 눈의 백인 배우 셜리 템플의 사진에 매료되어 있던 피콜라는 "[자신이]못생겼다는 사실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쓰면서 "푸르고 예쁜눈"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자란다. 그녀의 어머니 브리드러브 부인 역시 "인간의 생각의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중 하나", (백인이 규정한) 육체적 아름다움이 미덕이라는 생각에 오염되어 있다. 극장에 갔다가 임신하게 된 그녀는 백인 배우 진 할로와 "거의 똑같이" 머리를 곱슬곱슬 만 상태였는데, 그때 사탕을 깨물어먹다가 입안에서 치아 한 개가 뽑혀져 - P222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그냥 못생긴 상태로 지내기로 마음을 굳히며" 결국 "머리카락은 예쁘지만, 맙소사, 외모는 못생긴" 딸을 낳았다.
토니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일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 첫 소설을 썼다. 그녀는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흑인은 지상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인이 지닌 인간성의 질과 존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심했던 부모의 손에 성장한다.
"그러니 나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인 가정에서" "어린아이가 감당할 몫 이상으로 백인에 대한 경멸감을 품고 자라난 셈이었다."52 이런 생각은 언젠가 집주인이 그녀의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불을 질렀을 때 더 심해진 것이 틀림없는데, 물론 열심히 일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불을 끄고 이사 가기를 거부했다. - P223

마거릿 애트우드는 『신탁받은 여자』에서 동시대 작가들이 동화, 로맨스 영화, 할리우드 아이돌, 포르노그래피에 가했던 공격을 확장한다. 애트우드의 이 유머러스한 메타 픽션은 여자 곡예사를 굶겨 거식증에 걸리게 하는 데 궁극적으로 실패한 이야기들과 깡마른 여자 주인공들을 정조준한다. 깡마르고 폭압적인 (딸을 위한다고 케이크를 얼릴 때 설사약을 넣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여자 주인공 존 포스터는 자신이 매트로포비아, 즉어머니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알게 되고, 이 공포증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일로 이어진 - P231

다. 맨 처음 존의 "출렁거리는 넓적다리"와 "불거져 나온 지방덩어리"는 어린이 무도 발표회에서 그녀가 나비 역할을 못 하도록 방해한다. 그녀는 "둥근 좀약처럼 생긴 사람과 누가 결혼하고 싶어할까?"라며 초조해한다. 하지만 열다섯이 된 그녀는모든 사람이 111킬로그램 나가는 그녀의 몸을 보고 시선을 돌리면 "시무룩한 쾌감을 느낀다." 몸통 둘레 치수 때문인지 그녀는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남자들의 괴롭힘으로부터도 보호받는다. 그녀는 높은 줄 위를 능숙하게 걷는 과시욕 강한 핑크색타이즈를 입고, 반짝이는 작은 왕관을 쓰고, 새틴 슬리퍼를 신고, 아주 작은 핑크색 우산을 들고 있는) ‘패트 레이디‘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지만, 우리가 읽고 쓰는 것도 우리다.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체중 감량을 하고 난 뒤 존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여러 차례 이어나가는데 그들은 모두 매혹적인 바이런풍 남자들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모두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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