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자연의 제 당길심이 무섭도록 크고 그 內奧의 세계에 흐르는 生命의 律呂가 주는 황홀은 더더욱 깊다는 것을 從心之年이 넘어서야 눈치채게 되었다. 이곳 生家 夕佳軒에 寓居를 정하고 나서 거기 기대고만 있는 나를 추스르다 보니 4년 터울의 내 시집이 2년 만에 나오게 되었다. 그만큼 편수가 늘어난 것이 사뭇 조심스럽다. 충실한 시의 일생이고자 하는 나의 생각이 잘 마무리될 수 있기를 늘 다짐하고있다. 이번에도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서둘러주신 책만드는집 김영재 시인의 배려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己丑 한여름
夕佳軒에서
鄭鎮圭

되새 떼들의 하늘


오늘 석양 무렵 그곳으로 떼 지어 날으는 되새 떼들의하늘을 햇살 남은 쪽으로 몇 장 모사해두었네 밑그림으로 남기어두었네 그걸로 무사히 당도할 것 같네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날개붓이여, 새들의 운필이여 붓 한 자루 겨우 얻었네 秘標하날 얻어두었네 한 하늘에 대한 여러 개의 질문과 응답을 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지덕지할 일인가 오늘 서쪽 하늘에 되새 떼들이 긋고 간 飛白이여, 되새 떼들의 書體여, 자유의 격식이여 몇 장 밑그림으로 모사해두었네 가슴팍에 바짝 당겨 넣은 새들의 발톱이 하늘 찢지 않으려고, 흠내지 않으려고 제 가슴 찢고 가는 그게 飛白이라네 하얀 피라네

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 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는 걸 벌써 다 알고 있는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 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滿開로 본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 한다 박태기 꽃 진자주

비 오는 날


빗속에서 저 맨몸 빗줄기들 자연분만된 줄로만 알고 있었더니 빗줄기 속에서 비가 비로소 몸을 얻고 있음을 여기와 보았다 비 젖고 섰는 큰 느티나무를 비가 와서 만든 줄알았더니 느티나물 만나서 비가 비로소 느티나물 크게 적시게 되었음을 알았다 느티나무에게 잘 모시겠다고 큰절했다 이 늦봄 새벽, 사랑이 와서 초록 풀밭 아득히 적시는 빗소리를 귀 열고 있었더니 맨몸 적시고 있었더니 오래전에 있었던 초록 풀밭이 비로소 사랑을 몸 부리고 있음을 알고 큰절했다 노박이로 비 맞고 은하 건너온 칠석날 까치 두마리도 아침 뜨락에 와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두어 번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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