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수평선이 될 때가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수평선 밖으로 뛰어내릴 때가 있다

밤이 지나지 않고 새벽이 올 때
어머니를 땅에 묻고 산을 내려올 때

스스로 사랑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모든 증오일 때

사람들은 때때로
수평선 밖으로 뛰어내린다

이별에게


내 너를 위해 더듬이를 잘라야겠느냐
내 너를 위해 저녁해를 따라가야겠느냐
모래내 성당의 종소리는 들리는데
개연꽃 피는 밤에 가을달은 밝은데
가슴마다 짓이겨진 꽃잎이 되어
꽃잎 위에 홀로 앉은 벌레가 되어
내 너를 위해 눈물마저 버려야겠느냐
내 너를 위해 날개마저 꺾어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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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용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이사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까치들이 따라간다
울지도 않고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울지도 않고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손바닥만한 언 땅에 묻어주었으나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물 위를 걸으며 


물속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물 속에 빠져
한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무릎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무릎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무릎을 꿇고
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
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꿇고
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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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이 루이스를 하나의 분신으로, 그의친구들과 연인들의 낭만적 생활의 희생자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루이스는 어린 아내로 인해 참혹하게 괴로워했는데, 셸리처럽 자유연애의 신봉자였던 그의 아내가 손턴 헌트의 아이들을임신했기 때문이다. 루이스 자신도 레이와 손턴 헌트를 통해 고드윈, 셸리,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다. 아내인 아그네스에게 보여준 루이스의 관용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줌으로써 그녀의 간통 행위를 용서했다) 때문에 루이스는 당시의 법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루이스는 여성 작가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후원자이고 사랑스러운 동료였지만 (그는 엘리엇이 글을 쓰도록 독려했고, 출판과 관련한 세세한 일을 처리했고, 자주 아팠던 그녀를 간호했고, 작품의 배경 조사를 도왔다)엘리엇이 루이스와 불법으로 동거했기 때문에 사회적 징벌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진실이다. - P797

루이스와 엘리엇은 바이런, 채프먼, 셸리, 헌트에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거부한다. 이런 루이스와 엘리엇은 칼라일이 ‘바이런을 덮고, 괴테를 펼쳐라‘ 하고 권고하며 해결하려 했던 관습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양면성을 예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엇은 가장 뛰어난 괴테의 전기 작가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칼라일의 충고를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의상철학』의 저자인 칼라일이 보기에 자신이 타락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고, 바이런의 난교 윤리와 괴테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원칙이 모두 자신에게 문학적인 맥락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런 판단은 엘리엇이 자신을 한여자인 동시에 암암리에 여성 혐오자로도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엘리엇이 낭만주의에 양가적 반응을 보인 것은 빅토리아적이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전통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798

상호적이면서 상반되는 두 인물인 여성적인 래티머와 거세하는 버사는 삶에서 자유를 강탈해간 그들 자신의 한 측면으로서 서로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래티머의 초월적 신통력과 버사의 정열적 욕망 사이의 투쟁은 일레인 쇼월터가 말한 매기의 ‘여성적인‘ 정열과 톰 털리버의 ‘남성적인‘ 억압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런 투쟁과 갈등은 또한 『미들마치』의 결혼관계에서도 (엘리엇이 이런 결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성을 약화시키고 폄하하는 태도를 내면화했다는 죄책감을 극화할 때조차) 나타난다.
따라서 엘리엇에게 의식의 타락 상태와 여성의 내밀한 상처는 자기혐오로 인한 무력감과 관련된 주제일 뿐 아니라 속박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혐오는 여성이 자신의 탁월성 때문에 (말하지는 않을지라도) 불가피하게 얻는 인식과 모순되는 가부장적인 가치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요컨대 엘리엇은 그녀의 에세이 「마거릿 풀러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19세기여성과 여성의 권리』는 남자들의 불의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 P803

있다는 점보다는) 어떻게 여성의 예속이 여성의 정신과 영혼을 모독하고 약화시키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칭송받을 만하다고말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소설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에서엘리엇은 ‘여성이 지닌 가장 유해한 형태의 어리석음‘을 강력하게 공격한다. 엘리엇이 여자 주인공들에게 내리는 징벌, 빈번한병의 발작, 빈번하게 드러나는 비판적이면서도 자상한 어조, 그녀의 남자같은 필명,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성과 동일시되지 않으려는 엘리엇의 강한 바람을 암시한다.
젠더의 한계를 비상할 정도로 초월한 작가로서 엘리엇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중요한 소설에서 여성적 체념의 신조와 복종의 서약에 자주 의지한다. 그런 신조와 서약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던 엘리엇 자신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 P804

따라서 엘리엇은 ‘나의 책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소리쳤던 것이다. [편지 5] 버지니아 울프도 엘리엇에 대해 ‘오랫동안 그녀는 차라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엘리엇이 ‘영원히 여성적인‘ 고귀함을 찬미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은 거부함으로써 두통에 시달렸으며, 두통 때문에 괴테의 마카리에 같은 유형, 즉 작가에게는 결코 기분 좋지않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은 타락의 신화와 여성적 악의 신화에 양가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로써 그런 신화를 영속시켜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엘리엇 자신이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은 전 생애 동안 이런 내면화의 - P804

징후들(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계속된 죄책감,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공언, 여성의 반페미니즘, 여성의 예속보다 다른 형태의 불의 전체가 더 중요한 자기 예술의 주제라는 자기 변명 같은 주장, 격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루이스에게 극도로 의존했던 모습,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호의적인 비평조차 읽을 수 없었던 무능력)을 보여준다. 엘리엇은 스펜서, 조잇, 프루드와 마치니 같은 저명한 사상가들의 지적 동아리에서 단지 명목상으로만 여자였을 뿐, 자신이 그토록 맹렬하게 비판했던 해나 모어 부인이 바로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P805

엘리엇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유리하게 이용해 공적인 태도 뒤에 가려져 있는 사적인 연약성을 폭로하며 남성적 신화를 반박하는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면 엘리엇의 이런 방식을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베일로 가린 여성의 얼굴을 통해 가부장이 성공적으로 다루었던 악은 과연 어떤 종류의 악인가? 만약 민첩하고 확실한 본능과 정직하고 순수한 눈을 가진 가모장이 그 가부장을 흘깃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 그들을 손쉽게 추방한다면어떻게 될까?  - P817

실비아 플라스, 루이스 보건, 메이 사턴처럼 엘리엇은 여성괴물들을 바라보고 그 괴물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돌려본다! 그것은 나의 얼굴
얼어붙은 분노는 내가 탐색해야 하는 것-
오, 비밀스럽고, 자기 봉쇄적이며, 약탈당한 곳!
이것은 내가 메두사에게 감사해야 할 선물. - P821

엘리엇의 예술이 함축하는 것, 즉 여성의 힘이 자기혐오로 전복되어 여성의 창조성을 추악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한 메이 사턴은 이 시에 ‘메두사 뮤즈‘라는 제목을 붙였다. 엘리엇이자신의 비밀 중에서도 자기 봉쇄적이고 약탈당한 부분을 탐색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벗겨진 베일은 엘리엇이 우리를 설득시키고자 했던 만큼 그렇게까지 특이하지도 않다. 움직이는 판넬벽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궨덜린 할레스를 괴롭힌 죽은 얼굴과 같이, 실제로 「벗겨진 베일」은 엘리엇의 성숙기 주요소설에 영향을 드리웠다. 할 수만 있었다면 엘리엇도 매기 털리버와 로저먼드 빈시처럼 여성 고딕의 유산을 거부했겠지만. - P821

그리하여 오래된 태피스트리가 벽을 장식했다.
고귀한 귀부인들이 솜씨 좋은 베틀을 경멸하기 이전에.
아라크네는, 그때, 아테네 여신과 겨루었고,
그녀의 작품은 최상의 것으로 판정받았다.
용감한 행위는 책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명성은 싸움터에서 전해졌고,
유순한 동료는 그곳에 베틀을 가져와 일을 시작했다.
노동을 공유하는 동안에는 명성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웅들과 그녀의 섞여 짜인 이름이 뒤섞였다.
이제 여자들은 더는 그런 칭송을 열망하지 않으며,
이제 우리는 농노제도를 정당하게 찬양한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은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으며,
얼마 안 되는 우리의 재능은 발휘되지 못하거나 방해받는다.
-앤 핀치

어둡고 차가운 거미집,
유리즌 같은 영혼의 슬픔에서 뻗어나와
모든 고통받은 것을 뒤덮은
태아 상태의 여자.
누구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으리, 불의 날개로도.

끈은 너무 꼬이고, 그물망은 너무 엉켜 있어
마치 사람의 뇌와 같다.

모두 그것을 종교의 그물망이라 불렀다.
ㅡ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악에 대한 열망, 악에 대한 기원이 다시 와서ㅡ그 사이에서 내가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게 될 때까지 ㅡ그 밖의 모든 것을 희미하게 지워냈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단지 나의 소망이 나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조지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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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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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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