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
이문재
처음으로
둥지를 트는 까치 부부처럼
큰 바다로 나갔다가
모천으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봄여름 함께 잘 살다가
제 가지에서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팔순 생신상 받으시고
생전 처음이라는 외할아버지처럼
저 멀리 초겨울 첫눈에게 눈짓하는
춘삼월 마지막 눈발처럼
시집 [혼자의 넓이] 중에서
방진복을 입고 근무하는 오늘. 움직이기만 하면 동작보다 먼저 소리가 서걱서걱 존재감을 드러냈고, 흘러내리는 페이스 쉴드, 귀를 쪼이는 마스크, 한참 지나면 나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 듯 내려온 신발 싸개는 자꾸만 발에 밟힙니다. 머리도 아프고 움직일 때마다 눈치 없는 팥죽 땀은 쏟아져 내립니다. 이런 날들을 한결같이 지내온 방역의 최전선에 서 있는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K- 방역, 우리가 선진국이라 믿고 있던 그들이 선진국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준 K-방역의 주인공인 당신들 고맙습니다. 당신들 덕분입니다. 처음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춘삼월이 문밖에 있습니다. ˝초발심˝ 을 망각하기에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처음으로‘ 그 시작을 놓쳐버리기에 실패를 거듭하겠지요. 시는 쉽고 쏙쏙 들어오는데 행간의 의미는 넓고도 깊네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고단한 하루였습니다. 이제 막 달에 걸음을 뗀 우주인처럼 입었던 방진복 때문이겠지요. 바이러스를 씻어버리려고 퇴근하자마자 씻고 책꽂이 한편에 놓인 [혼자의 넓이]에서 무수한 혼자들과 여럿을 만나며 길고 고단한 오늘 하루를 접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요. 고단한 세상의 모든 이들이여 잠시나마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