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이들과 동화수업을 하다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나누어 보게 되었다. 짐작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다섯 배는 더 많았다. 급식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주는 아이, 선도랍시고 마구 이름 적는 형아,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고 때리는 선생님 …….

 

얘기를 마친 다음에 아이들에게 자기가 쓴 것들 가운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나누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들 가운데 옳지 않은 것을 찾아서 바람직한 가치관을 세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없어요!’라고 한다.

 

“선생님이 시험 못 쳤다고 때리는 게 싫다며? 선생님이 성적이 나쁜 아이들을 때리는 게 옳을까? 옳지 않을까?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맞을 까닭이 있나?”

“그래도 공부 못 하는 애들은 때려야죠. 안 때리면 더 안 하잖아요.”

“그래도 니가 맞는 건 싫다며?”

“그럼요, 내가 맞는 건 싫죠.”

“…….”

 

싫은 것은 있으나 옳지 않다는 가치 판단은 없는 아이들……. 결국은 어른들의 책임이겠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의도 나한테 피해만 없으면 별 상관 없다는, 그러나 내가 피해를 입으면 싫다는 식의 모습들을 아이들은 그대로 배우고 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울려면 세상의 모든 일을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고, 싫고를 넘어서서 정의와 불의가 존재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진리.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빈정댄다.

“그런 원칙대로 살면야 좋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현실과 이상은 다른 거라구.”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을 누가 가르쳤을까? 누가 현실은 이상과는 다른 거라고 얘기했을까? 이상이 없는 현실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것인지, 현실이 없는 이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안다면 현실과 이상을 나누는 일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옳은 것은 옳은 것으로, 그른 것은 그른 것으로 존재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옳은 것을 택했을 때 당당하고, 그른 것을 택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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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다. 거리를 나서면 원숙한 가을바람이 머리칼을 기분 좋게 간지럽힌다. 이 갑갑한 도시의 한 가운데까지 불어와서 대지가 살아있음을 일깨워 주고 더불어, 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바람... 세심하고 너그러운 그 바람에 오감을 열고 있노라면 ‘가을은 바람의 계절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을이란 계절을 이야기하면 빠뜨리지 않는 정의가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좋은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책’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오해들 때문이겠다.

 

  인간은 책의 친구가 되기 위해 책을 창조했지, 책의 노예가 되기 위해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책을 ‘우러러’보는 지 갑갑하다. 나도 직업 때문에 어쩔 수없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면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남의 생각’인 책에 파묻혀서 그것들을 들어주느라고 내 생각을 제대로 풍부하게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고민이다.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들을 걱정해야 하듯이, 나처럼 남의 생각 읽는 재미에만 빠져 사는 사람 역시 문제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떠올릴 때, ‘많이 읽기’, ‘빨리 읽기’를 염두에 두고 하는 소리일 거이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는 자기의 생각과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독서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광고, 평론가, 그 어떤 누가 권해도 자기에게 맞지 않고 재미없는 책은 덮어 버린다. 그리곤 능청스레, ‘재미없다’를 연발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꼭 맞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그 재미에 푹 빠져 든다. 그리고 그 감동을 오래오래 느끼기 위해 한동안 다른 책을 잡지 않는다. 정말 책의 친구가 될 만한지 않나.

 

  그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공자의 저 유명한 말이 딱 어울린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 하니라

 

  가을이다. 내가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 기꺼이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 해 보자. 그게 책 읽기라면 좋은 책 한 권 드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아쉽지 않나, 저 바람...

  오늘만은 책을 덮고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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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창비아동문고 161
이상권 글, 장양선 그림 / 창비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얘들아, 너희들 치와와, 시츄, 시베리안허스키 같은 강아지들 좋아하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강아지 한 마리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동물을 좋아해서, 다른 책은 읽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동물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곤 하지? 

 

  너희들은 재미있는 동물이야기 읽어 본 적 있니? 아마 부모님들은 ‘시튼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 따위를 먼저 떠올릴 거야. 너희들도 별로 다를 것 같진 않은데...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사자나, 코끼리 같은 동물은 어떻게 생긴지 알아도 정작 우리 산과 들에 사는 동물들은 잘 모르고 있지?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이 책을 알려주고 싶어.

 

  이상권 선생님이 쓴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생태동화집’이라는 작은 제목이 덧붙여져 있는데, 어때? 제목부터 솔깃하지? 집오리가 하늘로 왜 날아가지?‘ ‘닐스의 신기한 여행’에 나오는 거위처럼 기러기들을 따라가는 건가? 아님, 오리 통구이가 되기 싫어서 도망가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니? 

 

   이 책에는 모두 여섯 가지 동물이야기가 들어있단다. 근데 책 주인공인 동물이니까 사자나, 호랑이, 아니면 적어도 여우쯤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땡!’

 이 주인공들은 족제비나 살쾡이, 다람쥐 같은 아주 작은 것들이지. 집오리처럼 흔하고, 심지어 들쥐처럼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 그래서 이야기까지 시시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땡!’

 

  아마 너흰 처음 잡는 순간부터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할 거야. 가슴 아프고, 웃기고, 어떤 이야긴 오싹할 정도로 무섭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스럽기까지 한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우리 집 뒷마당에서 일어난 일, 동네 저수지에서 일어난 일, 심지어는 내 방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있단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산과 들, 강에 살던 동물친구들이 어떻게 사라지게 됐는지 알게 돼. 그걸 알게 되면 한 동안은 마음이 아파서 울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란다. 그들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거야.

 

  몇 쪽에 그 답이 쓰여 있냐고? 정답은 쓰여있지 않아. 다만 가슴을 열고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누구나 그 방법을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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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많은 요리점 힘찬문고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민영 옮김, 이가경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너희들 혹시 병아리나, 개미 같은 것들을 괴롭히면서 놀아본 적 있니? 한번이라고 그런 기억이 있는 친구들은 지금 생각해 보렴. 개미들이나 병아리들이 너희들이 괴롭혀줘서 재미있었을지. 뭐? 장난이었다고?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은 폭력이지. 인디언들이 사냥감에게 죽을 자세가 되어있는 자만이 그를 사냥할 자격이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네. 그만큼 동물들에 대해서 똑같은 생명으로 대접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자신의 에너지로 삼기 위해 먹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겠지. 내가 먹는 사냥감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는데 하물며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동물들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것은 인간다운 게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우리 곁에는 재미삼아서 동물들을 죽이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 끔찍하지 않니? 그런 사람들이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지금은 좀 다른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때, 너도 한 번 읽어 볼래? 맛있는 과자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책이야. 제목을 보고 엉뚱한 기대는 하지 마. 

 

  두 사람이 사냥터를 헤매고 있어. ‘사슴의 누런 옆구리에 총을 팡팡 쏘아서 사슴이 픽 쓰러지는 걸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너무 오래 헤맨 탓에 사냥개들이 쓰러져 죽는 걸 보면서 ‘25만원 날렸다’ 말하지. 이 사람들이 어떤 성격인지 대충 짐작이 되지?

 

  그러다가 산 속에서 음식점을 발견하지. 배가 고픈 두 사람은 근사한 저녁을 기대하면서 그 곳에 들어가. 근데 이상하게 손님들에게 하는 주문이 너무 까다로워. 머리를 단정히 하고 신발에 묻은 흙을 털라고 하는 것부터 모자와 외투를 벗고 들어오라는 건 이해가 되는데, 항아리 안에 든 크림을 얼굴과 손발에 고루 바르라고 하는데서는 좀 의아해지지. 그러다가 15분만 기다리면 요리가 된다면서 소금을 머리에 뿌리라고 하는데서 뭔가 깨닫게 되는 거야. 이 음식점은 바로 찾아온 손님들을 요리로 만드는 곳이었던 거야.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 

  근데 우리가 궁금해야 할 것들이 그것만은 아닐 거야. 개고기를 먹는 게 우리의 고유한 문화이기 때문에 좋은 것인지, 통닭집 앞에 그려진 닭들과 돈까스 포장지에 그려진 돼지들의 행복한 표정은 진실인지, 인간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인지...

 

   어휴, 생각해 볼 거리들이 너무 많지? 그래도 생각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란 사실을 잊지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면 아마 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찾아 낸 답은 햄버거 보다, 컴퓨터 게임보다, 100점짜리 시험지 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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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2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몇해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새록새록 납니다. 아주 독특한 사고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책이에요. 님의 리뷰 또한 퍽 신선합니다.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해리포터7 2006-09-2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님..저도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하는데요..이책은 제목만 들었는데 읽어보고 싶네요..님의 리뷰또한 독특한 형식이어서 좋아요^^

씩씩하니 2006-10-1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어떻게 세상을 보며 어떤 삶을 꾸려나가시는 분인지...다 느껴져요.,.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제목 읽구 뜬금없이 '책먹는 여우'가 생각나요,,왜일까여???
 
오늘 재수 똥 튀겼네 사계절 중학년문고 3
송언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한텐 ‘삼색마삭줄’이라고 부르는 예쁜 화초가 하나 있어. 여름 내내 이 놈이 얼마나 쑥 쑥 잘 자라는지 참말 신기하더라. 그래서 드나들며 늘 볼 수 있는 신발장 위에다 잎이 늘어지게 올려놓았단다. 근데 엊저녁에 신발을 꺼내고 문을 닫다가 그만 이 녀석을 치어 버린 거야. 새로 올라오던 여린 순이 그만 꺾여 버렸지.

 

  이를 어째... 위험한 곳에 아무 생각 없이 놓아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신나게 잘 크고 있던 그 여린 순에게 죄스럽기도 하고 정말 넋을 놓고 화분을 들고 한참 서 있었단다.

  다시 베란다로 옮겨서 물을 주면서 몇 번이나 잘려나간 곳을 만져보았지.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날마다 온 정성으로 용서를 빌면 얘들도 나를 한번쯤 봐주겠지? 아마 용서받을 때까진 마음이 아플 것 같애.

  너희들도 그런 맘 알지? 말 못하는 것들과도 마음이 통하는 느낌...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이 바로 그거야.

 

  ‘오늘 재수 똥 튀겼네’  푸하하. 제목이 너무 웃기지 않니? 근데 실려있는  다섯 개의 동화  하나하나가 모두 봄날 꽃길 사이를 걷고 있을 때 등 뒤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같은 느낌이야.

 그 가운데 ‘병태와 콩 이야기’란 이야기 하나만 해 줄까?

 

  선생님이 실험을 했어. 물을 준 콩과 물을 주지 않은 콩이 어떻게 될까를 알아보는 실험이지. 근데 병태는 그 순간에 콩나물을 키우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떠올려. 말 못하는 것들도 사랑으로 대하면 마음을 안다고. 물을 주지 않는 콩이 말라 죽는 게 너무 안타까운 병태는 선생님 몰래 물을 주었어. 당연히 다음 주 창가에는 두 화분 모두 앙증맞은 싹이 올라와 웃고 있었지. 선생님은 ‘이건 말도 안돼.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먼’하면서 고개를 흔들어.

병태가 들켰을까? 선생님은 자연실험을 망쳐버린 병태를 혼내셨을까?

궁금하면 한 번 읽어보렴.

 

  맨 처음 이야기인 ‘제비야 제비야’나 ‘줄무늬 다람쥐’는 글 쓴 선생님이 아이들과 직접 겪은 이야기래. 그래서인지 더 마음에 와 닿아.

 아직도 솔깃하게 당기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해줄게. 귀 좀 대봐.

 “글씨는 무지 크고, 그림은 디게 많고, 무지 얇은 책이야. 멋지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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