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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천국에서 지옥까지 ㅣ 삶과 전설 10
헤이젤 로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문득, 철학이란 어쩌면 '삶의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이, 내 생각이 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가를 변명하고 또 변명하는 가운데 하나의 틀로 만들어진게 철학이 아닐끼 싶은 재미있는 생각...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따라가면서 써낸 이 책은 삶, 사랑, 철학... 갖가지 생각을 잠시도 쉬지않고 떠오르게 만들었다.
실존주의라는 철학이 세계대전이라는 불안하기 짝이없는 시대를 외적 조건으로 해서. 미친듯이 불안한 자아를 가진 천재가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생의 변명이었구나는 생각에 이르면서 이때까지 배워왔던 철학들이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것이 조금 이해가 된다. 나는 그들처럼 열등감에 시달리지도, 그들처럼 욕망하지도, 그들처럼 인정받고 싶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이니, 한 마디로 변명하기엔 귀찮고 차라리 남들의 오해가 더 편하니, 어떻게 그 논리들이 와 닿을 수 있을까?
사르트르가 실존을 내세우게 된 것은 그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시작이 아닐었을까? 그러나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그 시작이 좀 달랐을 것이다. 그녀는 억압적 시대에 여성이라는 자신의 외적조건이 아마 실존을 고민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둘 다 살짝 맛이 간 제 멋대로의 인간들이지만 그 대책없는 순진함을 포장하는 그들의 천재적 두뇌와 혓바닥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사람들이 쉽게 열광하는 영웅들일 수록 자기자신조차 완벽하게 속이는 변명들을 앞 뒤 맞춰 해 낸다. 삶이란게 원래 한 두릅에 엮이는 굴비처럼 그렇게 일목요연해질 수 없는게 아닌가. 그런데 삶의 모든 궤적을 글로, 말로, 이론으로 설명해내는 그들은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멋져보였을까? 그러다 보니 욕도 많이 얻어먹는게 당연할 테고...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투덜대며 억울해했겠지만 그건 그들이 사람들에게 심어준 환상의 결과이니, 책임져야지, 어쩌겠는가.
그들은 행복했을까? 어떻게 보면 늘 불안함과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으니 불행할 것 같지만, 또 어찌 보면 둘 다 자기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으니 행복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들의 삶이 말과는 달랐다고 실망하기도 하는데, 인간이 다 그렇지, 뭐 별거 있는가. 제 아무리 잘나고 제 아무리 완벽해보여도 그건 포장일 뿐이지 정말 내용물은 모두가 거기서 거기까지인 인간이 아니던가.
참,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그들의 사랑을 특별취급하는 게 좀 우스웠다. 사랑이 어디 정의한다고 되는 것이던가? 구속받지도 구속하지도 않고 싶은 욕망, 늘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은 욕망, 그러면서도 안정된 관계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욕망... 그게 어디 그들만의 생각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욕망을 자기 식으로 해소하며 사는데 그들은 그 행동에 갖다붙인 말들이 좀 많았던 사람들일 뿐이다.
두 사람은 원래 말들을 좋아해서 그 말들에 질식당하지 않고 말들 사이를 유영하며 잘 살아 냈는데 그들에 인생에 끼인 사람들이 좀 안돼 보이긴 한다. 자기 인생의 변명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 옆엔 가지 않는게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주위 사람들을 모두 자기 드라마의 조연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갑자기 내 인생이 즐거워졌다. 삶은 결국 '누가 더 멋진 변명을 내 놓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행복하게 사느냐'의 문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