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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날들 ㅣ 창비시선 151
박해석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기쁜 마음으로
- 박해석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한 잔 포도주처럼 찰찰 넘치게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금만 틈을 벌려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나이 어릴 적에는 바람직하게 산다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생과 헌신은 살을 떼어주고 피를 부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과다한 열정은 타인에 대해 쉽게 절망하고 내 삶을 빨리 지치고 포기하게 만들어버렸다.
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세상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 작은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 덕에 그래도 살만하다는 진실이 새삼스레 와닿은 한 해였다.
새해에는 좋은 이들과 그렇게 더불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