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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가려워 - 들이 아빠의 아토피 육아기
김충희 지음 / 청년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일상’이란 말에는 무의미함과 나른함이 공존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말보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말에 더 가까운 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 삶이 잠겨서 떠가는 듯한 느낌……. 그러나 예술가는 그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을 길어 올린다.
만화 가운데도 그러한 작품들이 많다. 연인들의 ‘뻔하고도 뻔한’ 만남과 헤어짐, 청소년기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하루하루,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들…….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한 번쯤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그 일상 속에서 그들은 자기만의 세상과 철학을 발견한다.
‘들이 아빠의 아토피 육아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아빠, 가려워’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을 키우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책을 여는 순간,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특히 아토피를 가진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가 자기 이야기라고 무릎을 치며 공감했을 일상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엄마, 아빠에게 늘 ‘가여워.(가려워)’란 말을 달고 사는 딸아이는 처음엔 그냥 예쁜 ‘내 새끼’였다. 그러나 부모는 그 아이를 통해서, 그 아이의 병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그 세상엔 병과 싸우는 다른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있고, 병들어가는 환경이 있고,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이 부른 재앙들이 있다.
환경파괴가 가져온 재앙은 가장 무자비한 폭력이다. 그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모든 생명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이미 그러하지만, 더 지독한 진실은 그 폭력이 가장 어리고, 가장 여린 생명체를 먼저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말이 그 진실을 고스란히 옮겨낸다.
“나에게 아토피는 지구의 피부입니다. 세계의 많은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고 소외된 인간 삶의 존엄성과 자연을 복원하라는 준엄한 채찍질입니다. 우주에 맞닿은 아이들의 피부에 이러한 교훈이 고스란히 닿아 있습니다. 사람과 지구는 함께 가렵습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무기’라는 말에 거친 이미지의 그림과 교훈조의 건전가요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당신이 이 만화책을 덮으며 만나는 세상과 진실에 눈 돌리지 않는다면 그 말은 여전히 당신에게서부터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