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행복하다
길은정 / 자유문학사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용서하게 하며, 베풀게 됐다"]

내 삶의 순간에 어느 한 부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있던가?
내 삶의 순간에 어느 한 부분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있던가?
모두가 소중하고, 행복인데... 앞길이 구만리라는 생각에, 지금 이 순간을 아무렇게나 보내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려운 혹은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바람이 분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며 옷깃을 여미는 적이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

길은정,
길은정씨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노래를 엄첨 못 부르는 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요즘말로 코드가 맞지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보다 10여년은 더 산 사람입니다. 내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취할 때에, 그는 밤 열시 넘어서 추억으로 가는 노래편 등에 나와 "소중한 사람"을 부릅니다. 어쩌면 기찻길처럼 평행선을 달릴 수가 있었을터인데...

음을 음미하지 못하고, 노랫말을 음미하는 내게는 70~80년대의 노래는 감미롭습니다. 그렇기에 내 유년시절에 불려진 누나 형님들의 노래를 찾아 듣곤 합니다. 김학래의 "내가", 노고리지의 "찻잔",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 등을 좋아합니다. 문득 길은정씨가 진행하는 "노래하나 추억둘"(-지금은 윤세원님이라는 분이 하고 계십니다)을 듣었습니다. 하루의 지친 일에 대해 말끔하게 피로는 풀어주는 그의 목소리는 말랑말랑한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그는 암에 걸려서,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했지만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방송에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는게 사실이냐?라고 묻는 편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건 내가 붙이지 못한 잊고 있었던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너무나 밝은 그의 목소리에, 정말 암에 걸린 사람이 맞나라고 의심을 했답니다. 그가 밤에 잠을 못 자고 이를 깨물며 밤을 지샜다는 걸, 이 세상에서 웃음소리를 듣을 수 없을 때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언니의 눈물이 그의 아픔을 말해 주는 듯 했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스쳤습니다. 그렇게 아파하면서 죽는 날 까지 방송에 나와 웃음을 읽지 않던 그가 대단하며 한편으로는 그의 삶이 궁금햇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길은정씨는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해볼 만한 건 거의 다 해봤다. 성공도, 실패도...
사랑도 해봤고, 결혼도 해봤고, 이혼도 해봤다.
아이도 낳아 봤고, 헤어짐도 겪었고, 공부도 해봤고, 상도 타봤고, 인기도 얻어봤고, 여행도 해봤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미국은 물론이고 몰디브제도까지도 가봤다.
말도 타봤고, 경비행기도 몰아 봤고, 스킨스쿠버 다이빙도 해봤고, 탁도 치고, 테니스도 치고, 컴퓨터 게임도 해봤고, 수영도 하고, 스키도 타봤다. 수상스키도 해보고, 노래도 해보고, 무용도 하고, 그림도 그렸고, 붓글씨도 썼다.
영어 공부도 하고, 일어 공부도 했다.
예쁜 옷도 많이 가져 봤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 봤고, 영화도 많이 봤고, 운전도 했다.
암에도 걸려 보고, 수술도 해보고, 장애인도 되어 보고, 내 여성도 잃어 봤다.
이제는 여기 하와이에 와 살면서 글도 쓰고 있으니 이만하면 됐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겐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 있는 걸까?
늘 죽음을 꿈꾸면서도 오늘도 나는 화분에 물을 주고, 새잎이 돋아나는 게 사랑스러워 한참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한다.
"Are you storyteller(당신 이야기 작가예요)?"
내게 잠깐 말을 붙였던 로보르라는 미국인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72쪽)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삶의 체험적 깊이와 넓이가 어디까지인가를 짐작하기에는 내겐 바다만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파도를 겹겹히 넘으면서 그가 느낀 감정은,

"내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쥐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사람'이다(172쪽)"

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밀어닥친 파도는 하늘이 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건낸 삶의 피로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많은 고통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측은지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하루하루가 힘든 동포를 보면서, 하와이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일상의 무게에 눌린 그들을 보며 그는 "미국 생활에 지쳐있는 보이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210쪽)"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이. 하지만 사람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결코 놓지 않았던 이. 한 사람의 마음에 차지 않을 듯한 두 감정이 공존을 하는데, 그의 마음이 두려움을 이기고 따스함을 드러냈다는 점에 대해서, 어쩌면 그는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아름다움 꽃을 피울 수가 있었던 건, 천성적인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깊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가져봅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를 보내고 나서야 그의 깊이를 가늠하는 내 모습입니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그러지 않은가 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스함을, 아무리 힘겨움이 밀려와도 용기를 잃지 않고 맞써 나아가야겠습니다.

이 책은 길은정씨가 대장암 수술을 하고 하와이에 잠시 머물면서, 자기의 일생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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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5-05-1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것처럼 사는게 중요하겠죠.
브라이언 트레이시도 목표를 설정할 때 내 생이 단 6개월 남았을 때 무엇을 하겠냐고 물으라 하더군요. 가장 소중하고 하고 싶던 것을 가장 먼저하려고 하다보면 허접한 일들은 점차 뒤로 밀리겠죠.
 
세계사진가론 - 1900-1960, 열화당미술신서 62
육명심 지음 / 열화당 / 1987년 4월
평점 :
절판



["사진 없는 사진작가론"]

앗제는 현실에 숨어있는 시의 세계를 찾아낸다(?)

옥외, "뒷골목이거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만 골라서" 찍은 사진인데... 지은이는 이를 보고, 작가와 대상간의 내면적 공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작가와 대상간의 체험적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울림이 있다고 합니다.

사진이 내게로 왔을 때에는, 작가 대신에 내가 서서 마주봅니다. 즉 내 눈높이가 작가의 그친 삶의 체험적 경험의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단순한 거리에 불과합니다. 지은이는 앗제의 삶이라는 풍경을 통해, 사진이라는 프리즘을 읽어냅니다. 하지만 사진이 내게로 올때에, 작가는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작가가 불쑥 나타나 내 사진은 이렇다고 말하게 되면, 사진은 내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것이 됩니다. 최민식씨의 사진을 보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없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그를 평가할 뿐입니다. 지은이는 사진작가와 사진에 대한 연관성을 쉽게 놓치는 않고 있습니다. 이는 나와 지은이의 시선이 조금 엇나가는 듯합니다.

지은이가 말하는 작가와 대상간의 체험적 깊이는, 작품으로 형상화 되어 나왔을 때에는 작가 대신에 내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최민식씨의 사진에서 느낀 울림은, 앗제의 「드라공 가의 골목 입구」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책이 나에게 걸오는 말들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암시^^)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앗세를 읽어갑니다.

가끔씩 느끼는 것이지만, 창조적인 글쓰기에 대해서 부러움을 갖을 때가 있습니다. 혈액형처럼 혹은 내향/외향의 성격으로 단순하게 구분지어지는 것이 아닌, 얼굴만큼이난 다양하게 한 명 한 명 작가론을 풀어내는 지은이의 논리정연함에 나는 압도당합니다. 서른명이 넘는 사진작가를 나름대로 특성을 정리해내는 지은이의 시선이 마냥 부럽습니다. 하지만 책의 편집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의 편집에서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이론의 무장화"라는 점입니다. 작가론을 펼치는 지은이의 글발은 자칭 위대해보이지만 사진작가의 사진은 두 세 장이 전부입니다. 나는 사진을 느끼는 대신에 처음 듣는 사진작가의 이름과 뜻 모를 이론을 주저리주러리 읽어갑니다. 먼저 사진을 충분히 보고 나름대로의 시선을 정리한 다음, 지은이가 들려주는 작가론을 보아도 될 터인데... 내 머리 속에는 낯선 사진작가 이름만큼이나 낯선 이론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사진 없는 사진작가론,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충분히 사진을 본 다음에 다시 읽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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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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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명화란 무엇일까? 명화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묻은 둔체, 예전부터 명화라고 불려지는 서구의, 어느 특정 시대의 작품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지은이는 파헤치고 있습니다. 지은이의 단순한 호기심이, 특정한 시대에 명화로 불려지는 작품에 대한 비밀을 살작 벗겨내고 있습니다.

지은이 역시 그림을 그리는 입자에서, 자기가 해 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놀랍도록 정확하면서, 어떻게 빨리 그릴 수가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나는 그림에 대해 깊은 조예가 없고, 그림이라는 것도 그리면 지렁이가 몇 마리 기어가는 정도 뿐이니 한 작품에 대한 노고를 쉬이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훌륭하게 불려지는 작품이면, 무엇이가 이유가 있겠지라며 고개를 끄떡일뿐입니다.

지은이는 15세기 초순에 광학(거울-렌즈)를 써서 생생한 투영법을 구사하였다고 주장을 합니다. 광학을 썻?때문에 빛에 대한 그림이 유난히 빛나게 됩니다. 이런 광학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정물화, 인물화(-초상화)에 지은이의 분석이 이루어지 듯이, 일정한 창문에 들어오는 구도로 한정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화가는 많은 창문(86쪽)을 드리웁니다. 하지만 많은 창문은 입체적인 관점이 아닌 평면적인 나열이라는 한계를 지닙니다. 또한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미세한 초점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 정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학이 지닌 장점은 놀랍도록 정확한 묘사와 빠른 스케치, 한 모델을 두고 여러명의 모델로 우려내기 등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호크니(-지은이), 광학을 써서 그림 그리기


화가들 역시 밥벌이에 대해 자유롭수 없다는 가정을 하면서, 지은이는 이들이 기술적인 장치를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잔의 작품(191쪽)을 통해 인간의 눈이 지닌 특성을 이해시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렌즈 기법을 통해 그림보다, 눈돌리기로 그린 "세잔"의 그림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광학을 쓴 그림, 한 모델 여러번 우려먹기


"세잔의 혁신은 그림의 대상이 자신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관해 스스로 품은 의혹을그림 속에 집어넣었다는 데 있다. 그는 시점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물을 복수의 시점에서, 때로는 모순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두 눈을 지닌 인간의 시야다(두 눈, 두 시점, 따라서 의혹은 필연적이다).(191쪽)"

『명화의 비밀』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지은이 부단한 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로인하여 그림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나만 안다는 우월감이 괜히 기분좋게 만듭니다.*^^* 그리고 문득 나도 지은이처럼 그림을 그려볼까라는 조그마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분명 명화로 불려지는, 특정 시대의 작품이 광학으로 그려졌다고 하여,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덧붙임 : 제가 읽은 부분은 「시각적 증거」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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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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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시가 머에요.
메타포.
메타포가 메어요?
.
.
.
시를 듣으니, 단어들이 움직였어요.

여기에서 시인과 어설픈 비평가는 갈린다. 시인은 단어의 나열에서 어떤 울림을 느꼈고, 난 단어의 나열에 불과한, 국어책을 읽어가듯 내려갔을 뿐. 10년 동안 배우고 배운 "시"란 문제를 여기에서, 어느 학자가 알몸으로 뛰쳐나오듯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지만, "유레카~~"라고 외칩니다. 이 작품 상당히 재미나는군요^^

난 시인과 나처럼 어설픈 비평가가 나눈 이야기를 듣고, 그 설레임을 여기에 잠시 적어둡니다. 그리고 설레임이 파도물에 씻겨 가기 앞서 다시 책을 펼칩니다. 셀레임이 사라질까봐 몇 자 적었고 다시 설레임이 사라질까봐 긴 이야기를 적지 못하고 급하게 책을 펼칩니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우체부 소년.
무더운 여름날, 하지만 늦게 새잎을 돋운 꽃씨는 이제 고개를 내밉니다. 세상의 봄빛보다 여름볕의 따가움속에 고갤 내민 순간, 소나기가 지나갑니다. 소.나.기.가.내.린.다.

네루다. 아마도 그는 내게 김나주의 입을 통해 왔고, 히메네스를 통해 안착했습니다. 김남주를 통해 어깨너머로 들려 왔을 때 네루다는 '민중'이라는 함성과 같이 울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히메네스는 열일곱 순전에 빠진 사춘기 소년으로, 여자 친구의 어머니를 꼬셔주는(?) 친구로서, 예술에 대한 이데아로서, 고향 떠난 이웃집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至難)한 고통의 곁에 머무는 친구로서 곁에 있어줍니다.

17살에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시인은, 예술가의 시를 표절하고, 시를 시로 알지 못하고 머리로 생각한 여인의 어머니 모습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습니다. 17살 사랑에 빠진 시인에서는 사랑을, 여인의 어머니에서는 걱정과 연민, 시인에서는 예술과 삶의 느긋함을... 시 한 편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과부는 종이를 한 장 꺼내 들었다. 분명히 토레 상표의 산수 공책 종이였다. 과부는 재판 속기록을 읽듯 그 종이를 읽으면서 탐정처럼 신랄하게 '벌거벗은'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벌것벗은' 당신은 그대 손만큼이나 단아합니다.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
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푸릅니다.
당신 머릿결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름날의 황금 성전처럼.
과부는 부르르 떨며 종이를 구겨 앞치마에 다시 쑤셔 넣으면서 결론지었다.
"네루다 씨, 즉 우체부 그 작자가 내 딸이 홀딱 벗은 걸 보았다고요." (80쪽)


나는 언제나 예술가.
시인은 대통령의 후보에 오르지만, 단일후보로서 민중의 열망을 지지합니다. 그리하여 야예덴이 대통령이 된 다음, 그를 위해서 하루에 한번 오는 우체부의 노고함과 직업에 대한 걱정도 잊은체 프랑스의 대사관으로 임명되어 떠납니다. 고향에 대한 그림움, 바닷가의 아름다움이 시공간을 넘어 그를 지배합니다. 시인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소리하나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시인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그 소리를 담아달려고...

시인이 그토록 바라던 노벨상이 받게 되고, 칠레는 남아메리카 어느 구석에 있는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문화적 민족임을 선포합니다. 삶의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던 시인에게, 개인적 믿음 앞에 사회적 현실은 무참히 짓밟아 버립니다. 야예던은 궁에서 쫓겨나고 시인은 힘겨움 보다 더 무거운 군의 총칼에 둘려 쌓여 생(生)을 마감합니다.

잔잔한 바닷가에 내린 소나기.
짧은 소설 속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담겨져있습니다. 열곱살의 청순함과 열정,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그를 둘러싼 주변환경-삶의 때를 겹겹히 쌓여, 순수함보다 노련함이 묻힌 어부와 과부, 삶의 청순함 속에 희망을 품은 시인, 꿈의 실현과 좌절 속에 놓인 야예덴, 노련함 보다 더 무서운 총칼의 위협.

한 줄기 소나기가 온몸을 적십니다. 미처 생각을 가다듬기 앞서 온몸을 젹셔 놓고 저만치 가버린 소나기는 무엇하나 내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의 소나기와는 조금 어긋난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시인의 시에 대한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에 대한 집착이 삶의 집착 혹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애써 지우는 듯하네요.

시에 대한 집착보다, 상투적인 담배를 물든가 푸른 바다를 나는 갈매기를 통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 혹은 모래 사장에 글을 새기며, 파도가 지울지언정 내 가슴의 추억은 그 무엇으로도 지을 수 없다는 식의, 소나기를 훌쩍 맡고 커버린 자화상의 글쓰기였다면... 이 작품을 읽으면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는건 내가 느낀 엉뚱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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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 창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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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인 해부는 내 몫..."]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라...
적어도 그랬다. 이미 '밀즈(c. w 밀즈)'를 통해 미국의 실체를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내게, 지은이가 들려주는 전생과 시장이라는 단어는 밀즈의 후예가 아닐까라는 거미줄을 쳤다.

지은이는 이라크 침략 전쟁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리고 이라크 침략 전쟁의 우두머리인 미국 대통령이 부시와 그의 작패들인 무리들을...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이후 미국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련의 정책이 발표되었다. 2003년 5월 27일 럼스펠드는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장려하고 시장제도를 선호하는 인사로 구성된 체제를 수립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9월 19일 이라크점령군 통수권자인 브리며(Bremer)행정관은 '명령39조'를 통해 2백개에 달하는 이라크 국유기업을 사유화하며, 외국기업이 이에 대해 100%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국은 2004년 1월 31일 처음으로 세개의 외국은행에 영업권을 내주었다. 과도통치위원회는 광산, 은행 등 모든 이라크산업체가 외국자본에 매각되면 외국자본은 이윤의 전부를 외국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언론은 이것을 새로운 '골드러시'라고 칭송하였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새로운 '자본주의 드림'이라고 불렀다.(49쪽)"

전쟁이 행해진 다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가장 극명하게 들어낸 준 부분이 아니라 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경기가 어려우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속설은 이미 증명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정책분석가들은 아주 편하게 이 모든 것을 미국의 실수라고만 말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베끼는 미국 안팎의 주류 언론인이나 학자들은 그 주장을 온세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81쪽)"

우리에게 미국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와 현상의 본질에 대해 얼만 접근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북한에 대한 김정일의 독재는 코흘리개 아이들도 알지만 미국의 대통령의 세계 패권에 대한 헤게모니는 얼만간의 지식을 습득한 고학생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독재를 언론을 통해 보여진 이미지를 굳히지만 스스로에 대한 감찰을 하지 않기에, 굴뚝 청소부를 하고 나온 청소부처럼,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얼굴만 보고 웃고 있습니다. 이미지의 허상이란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2000년 대선 당시 부시는 상대인 고어를 향해 '계급전쟁'을 선동하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칼럼니스트 다우드(Maureen Dowd)는 부시를 '계급대통령'이라고 명명하면서 계급적 출신기반이 부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부자집 아들로 사립학교만 다니면서 세상에 자기 같은 사람들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부시가 어떻게 불평등의 바람직하지 않은 면을 교정하려고 노력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고는, 부시는 자기가 속한 계급이 이길 수 있도록 자신의 적을 향해 계급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부시행정부는 이라크하고만 전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중산층과 가난한 자들과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213쪽)"

우리안의 파시즘이란 말을 어느 지은이가 썼습니다. 부시는 '계급 대통령'이라 비난을 합니다. 이는 나 아닌 다른이가 아닌 우리에게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계급적 층위로 나누기만 하는 것이 아닌 사회구조 속에 숨어 있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찾아내야 합니다. 사회에 대한 아무런 체험이 없이도 단 몇 글자 더 외워 판사가 되오 판단을 내리는 기계적 지식인과 상위 상위하면서, 서울의 중심에서 꼭대기에 올라 교육을 받고 정치에 입문한 그네들과 부시가 다르다는 것은, 없음이 다름일뿐입니다. 우리 안의 잣대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부시는 악의 축이 될 수 있고, 우리의 면죄를 받을 수 있으며.... 혹은 부시마저 당연함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에서 내 눈이 어디에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은이의 눈은 나라대 나라로 보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이 책에서 살짝 비켜가고 있습니다.

전쟁 , 그 다음 혹은 그 이전에 벌어지는 군수 복합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깊이 논하지 않고, 모범국가, 민주주의 최고의 실현국가, 나를 따르라 국가 등의 이미지를 업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언론에 의해 조작되었다. 즉 언론은 철저하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으며(-정부와 언론과의 야합이 맺어져 있다. 혹은 언론은 알아서 기는 정책-자본주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 언론은 CNN이 걸프전 당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뒤로 던져도 맞는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 미국의 군사방위시스템이 110%끌어 올리고, 세계에 대해 선전포고를 부시 대신에 해 주었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을 빌리서,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 무기구입 압력을 넣는다는 식의 글쓰기입니다.(-하지만 패트이어트 미사일의 적중률은 무기구입이 끝난 뒤에, 신문에 자그마한 기사만 정정보도를 올렸다.)

즉, 지은이의 시선은 항상 한발짝 물러서 있다. IMF처럼, IMF의 구조조정의 실체에 대한 접근보다도, 구체적 실체없는 추상적 이미지 접근으로 머물러 서 있다. IMF의 구조적 실권자와 실체는 무엇이며, 근래의 진로 소주에 해나 매각에서 보여지듯이 수 백억의 차익을 그냥 날로 먹듯이 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쟁과 사회』에서 한국전쟁이 피해자에게 무엇이였냐는 접근 방식과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지은이의 글쓰기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권력의 본질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느낄 수가 있다. 리영희씨의 독한 글쓰기나 밀즈의 미 행정부에 대한 해부, 혹은 브레진스키의 넓은 시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미국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전쟁과 시장, 즉 전쟁과 시장의 연관관계 그리고 이를 움직이는 실체와 그들의 헤게모니는 무엇인가에 대해, 앞으로 벌어질 지구촌의 양상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대응 방안은 어떤 전략이 가능한가 등은 이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인지 다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이 없다하더군요. 국맛이 싱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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