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가론 - 1900-1960, 열화당미술신서 62
육명심 지음 / 열화당 / 1987년 4월
평점 :
절판



["사진 없는 사진작가론"]

앗제는 현실에 숨어있는 시의 세계를 찾아낸다(?)

옥외, "뒷골목이거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만 골라서" 찍은 사진인데... 지은이는 이를 보고, 작가와 대상간의 내면적 공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작가와 대상간의 체험적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울림이 있다고 합니다.

사진이 내게로 왔을 때에는, 작가 대신에 내가 서서 마주봅니다. 즉 내 눈높이가 작가의 그친 삶의 체험적 경험의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단순한 거리에 불과합니다. 지은이는 앗제의 삶이라는 풍경을 통해, 사진이라는 프리즘을 읽어냅니다. 하지만 사진이 내게로 올때에, 작가는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작가가 불쑥 나타나 내 사진은 이렇다고 말하게 되면, 사진은 내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것이 됩니다. 최민식씨의 사진을 보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없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그를 평가할 뿐입니다. 지은이는 사진작가와 사진에 대한 연관성을 쉽게 놓치는 않고 있습니다. 이는 나와 지은이의 시선이 조금 엇나가는 듯합니다.

지은이가 말하는 작가와 대상간의 체험적 깊이는, 작품으로 형상화 되어 나왔을 때에는 작가 대신에 내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최민식씨의 사진에서 느낀 울림은, 앗제의 「드라공 가의 골목 입구」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책이 나에게 걸오는 말들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암시^^)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앗세를 읽어갑니다.

가끔씩 느끼는 것이지만, 창조적인 글쓰기에 대해서 부러움을 갖을 때가 있습니다. 혈액형처럼 혹은 내향/외향의 성격으로 단순하게 구분지어지는 것이 아닌, 얼굴만큼이난 다양하게 한 명 한 명 작가론을 풀어내는 지은이의 논리정연함에 나는 압도당합니다. 서른명이 넘는 사진작가를 나름대로 특성을 정리해내는 지은이의 시선이 마냥 부럽습니다. 하지만 책의 편집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의 편집에서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이론의 무장화"라는 점입니다. 작가론을 펼치는 지은이의 글발은 자칭 위대해보이지만 사진작가의 사진은 두 세 장이 전부입니다. 나는 사진을 느끼는 대신에 처음 듣는 사진작가의 이름과 뜻 모를 이론을 주저리주러리 읽어갑니다. 먼저 사진을 충분히 보고 나름대로의 시선을 정리한 다음, 지은이가 들려주는 작가론을 보아도 될 터인데... 내 머리 속에는 낯선 사진작가 이름만큼이나 낯선 이론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사진 없는 사진작가론,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충분히 사진을 본 다음에 다시 읽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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