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시가 머에요. 메타포. 메타포가 메어요? . . . 시를 듣으니, 단어들이 움직였어요.
여기에서 시인과 어설픈 비평가는 갈린다. 시인은 단어의 나열에서 어떤 울림을 느꼈고, 난 단어의 나열에 불과한, 국어책을 읽어가듯 내려갔을 뿐. 10년 동안 배우고 배운 "시"란 문제를 여기에서, 어느 학자가 알몸으로 뛰쳐나오듯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지만, "유레카~~"라고 외칩니다. 이 작품 상당히 재미나는군요^^
난 시인과 나처럼 어설픈 비평가가 나눈 이야기를 듣고, 그 설레임을 여기에 잠시 적어둡니다. 그리고 설레임이 파도물에 씻겨 가기 앞서 다시 책을 펼칩니다. 셀레임이 사라질까봐 몇 자 적었고 다시 설레임이 사라질까봐 긴 이야기를 적지 못하고 급하게 책을 펼칩니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우체부 소년. 무더운 여름날, 하지만 늦게 새잎을 돋운 꽃씨는 이제 고개를 내밉니다. 세상의 봄빛보다 여름볕의 따가움속에 고갤 내민 순간, 소나기가 지나갑니다. 소.나.기.가.내.린.다.
네루다. 아마도 그는 내게 김나주의 입을 통해 왔고, 히메네스를 통해 안착했습니다. 김남주를 통해 어깨너머로 들려 왔을 때 네루다는 '민중'이라는 함성과 같이 울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히메네스는 열일곱 순전에 빠진 사춘기 소년으로, 여자 친구의 어머니를 꼬셔주는(?) 친구로서, 예술에 대한 이데아로서, 고향 떠난 이웃집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至難)한 고통의 곁에 머무는 친구로서 곁에 있어줍니다.
17살에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시인은, 예술가의 시를 표절하고, 시를 시로 알지 못하고 머리로 생각한 여인의 어머니 모습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습니다. 17살 사랑에 빠진 시인에서는 사랑을, 여인의 어머니에서는 걱정과 연민, 시인에서는 예술과 삶의 느긋함을... 시 한 편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과부는 종이를 한 장 꺼내 들었다. 분명히 토레 상표의 산수 공책 종이였다. 과부는 재판 속기록을 읽듯 그 종이를 읽으면서 탐정처럼 신랄하게 '벌거벗은'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벌것벗은' 당신은 그대 손만큼이나 단아합니다.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
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푸릅니다.
당신 머릿결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름날의 황금 성전처럼. 과부는 부르르 떨며 종이를 구겨 앞치마에 다시 쑤셔 넣으면서 결론지었다. "네루다 씨, 즉 우체부 그 작자가 내 딸이 홀딱 벗은 걸 보았다고요." (80쪽)
나는 언제나 예술가. 시인은 대통령의 후보에 오르지만, 단일후보로서 민중의 열망을 지지합니다. 그리하여 야예덴이 대통령이 된 다음, 그를 위해서 하루에 한번 오는 우체부의 노고함과 직업에 대한 걱정도 잊은체 프랑스의 대사관으로 임명되어 떠납니다. 고향에 대한 그림움, 바닷가의 아름다움이 시공간을 넘어 그를 지배합니다. 시인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소리하나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시인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그 소리를 담아달려고...
시인이 그토록 바라던 노벨상이 받게 되고, 칠레는 남아메리카 어느 구석에 있는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문화적 민족임을 선포합니다. 삶의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던 시인에게, 개인적 믿음 앞에 사회적 현실은 무참히 짓밟아 버립니다. 야예던은 궁에서 쫓겨나고 시인은 힘겨움 보다 더 무거운 군의 총칼에 둘려 쌓여 생(生)을 마감합니다.
잔잔한 바닷가에 내린 소나기. 짧은 소설 속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담겨져있습니다. 열곱살의 청순함과 열정,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그를 둘러싼 주변환경-삶의 때를 겹겹히 쌓여, 순수함보다 노련함이 묻힌 어부와 과부, 삶의 청순함 속에 희망을 품은 시인, 꿈의 실현과 좌절 속에 놓인 야예덴, 노련함 보다 더 무서운 총칼의 위협.
한 줄기 소나기가 온몸을 적십니다. 미처 생각을 가다듬기 앞서 온몸을 젹셔 놓고 저만치 가버린 소나기는 무엇하나 내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의 소나기와는 조금 어긋난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시인의 시에 대한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에 대한 집착이 삶의 집착 혹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애써 지우는 듯하네요.
시에 대한 집착보다, 상투적인 담배를 물든가 푸른 바다를 나는 갈매기를 통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 혹은 모래 사장에 글을 새기며, 파도가 지울지언정 내 가슴의 추억은 그 무엇으로도 지을 수 없다는 식의, 소나기를 훌쩍 맡고 커버린 자화상의 글쓰기였다면... 이 작품을 읽으면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는건 내가 느낀 엉뚱한 상상*^^* |